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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에 이어 '서울 속의 미국', 용산 드래곤힐에 다녀왔다. 드래곤힐에서 일하고 있는 절친 후배 덕에 드래곤힐 곳곳의 이색 풍경을 잘 구경하고 왔다. 첫 번째 방문했을 때와 지난 주말 2번째 방문했을 때 느끼고 보고 했던 풍경들을 정리해본다.

드래곤힐을 둘러보면 '일반인 출입 제한' 지역이라는 점이 명징하게 다가온다.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낮고 조금은 낡은 담벼락, 철조망으로 뒤엉킨 좁은 출입구, 간간이 지나다니는 군부대용 트럭과 민간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 'Restricted Area(제한구역)' 간판. 한 눈에 봐도 이곳이 여느 곳과는 다른 심상찮은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드래곤힐 출입심사대. 이곳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허가를 받으며, 드래곤힐의 출입증이 있는 사람의 인솔아래 민간인의 출입도 가능하다.
▲ 드래곤힐 출입심사 드래곤힐 출입심사대. 이곳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허가를 받으며, 드래곤힐의 출입증이 있는 사람의 인솔아래 민간인의 출입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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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 작은 미국 '드래곤힐'

빡빡한 신원확인 절차를 끝마치고 엇갈린 게이트 문을 나서면 한국 속 작은 미국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바로 드래곤힐 호텔. 주한 미국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해 군무관, 기타 군 관련 업무들로 한국을 방문한 관계자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최대 400여 명이 머물 수 있는 객실을 구비하고 있다. 서울의 주요 호텔 투숙 비의 약 1/3 가량인 저렴한 비용 덕분에 매년 95% 이상의 투숙율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좋다.

이곳은 계급이 낮은 군인일수록 더 많은 할인 폭과 혜택이 부여돼 활발한 시설 사용이 장려되고 있다. 군인복지 시설의 초기 건립취지가 계급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보다 많은 군인들이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기에, 이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논리이지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사는 나로서는 이들의 합리적인 사고가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드래곤힐호텔 외부 전경. 이곳은 한국내 위치한 영토이나 미국현지법이 적용돼 건물들도 대게 5~6층 정도의 낮은 층수로 지어졌다.
▲ 드래곤힐호텔 외경 드래곤힐호텔 외부 전경. 이곳은 한국내 위치한 영토이나 미국현지법이 적용돼 건물들도 대게 5~6층 정도의 낮은 층수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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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의한,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의 '그들이 사는 세상'

호텔 내부로 들어서니 화려한 조명,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흥겨운 음악으로 한껏 기분을 내고 있어 새해 연휴 특유의 설렘이 묻어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는 군복을 입은 주한 미군들이 대부분이며, 간혹 가족단위의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여느 호텔과 다를 것 없는 이곳의 구석구석을 살피고자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프론트 옆에는 '코스모진 여행사'라는 곳에서 아예 데스크를 두고 외국인들의 국내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주한미군과 가족들, 군 관계자들이 몰린 외국인 밀집 지역인만큼 이들의 관광일정을 짜주는 외국인 전문여행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의 관점으로 국내를 관광한다면 어떤 곳이 가장 흥미 있게 느껴질까.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주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주로 주말에는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유적지 투어를 하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가족 단위로 스키장이나 온천 같은 주말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또 한국 전통 생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관광과 더불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활용한 DMZ, 판문점투어를 비롯해 가벼운 건강검진, 성형, 피부관리 등의 의료관광 상품도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 좋지 않은데, 외국인들이 주말여행으로 우리나라에서 달러를 쓰고 있다니 왠지 기분은 좋아졌다.

일반 여행사와 달리 방한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아웃바운드 여행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내데스크 앞에 외국인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 드래곤힐호텔 내 입점한 코스모진 여행사 안내데스크 일반 여행사와 달리 방한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아웃바운드 여행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내데스크 앞에 외국인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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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나니 살짝 배가 고팠다. 지하로 내려가보니 피자헛, 서브웨이 등 익숙한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이 보였다. 드래곤힐에서 맛보는 피자는 어떨까. 주문을 위해 계산대로 다가서자 금발의 훈남 점원이 표를 들고 오란다. 표? 어떤 표? 점원의 손길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이 돌리자 가게 한켠에 자리 잡은 번호표 기계가 보였다. 지하식당을 이용하기 위해선 꼭 표를 뽑아야 한단다.

번호표를 들고 드디어 주문!하려다 또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프렌차이즈 메뉴들이야 비슷하겠거니 별 생각없이 계산대 앞에 섰는데 온통 낯선 메뉴들뿐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고구마피자나 해산물피자처럼 이미 만들어진 피자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토핑들을 선택해 본인의 입맛에 맞는 피자를 주문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왔다는 토핑만도 수십 가지다. 주한 미군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미국본사에서 운영하는 직영점으로 재료나 토핑, 메뉴, 독특한 주문방식 등도 철저히 미국 현지의 경영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당연히 메뉴판도 다 영어다.

드래곤힐 내부에 위치한 스타벅스. 낯선 곳에서 만난 반가움에 촬영한 스타벅스 드래곤힐점 외경
▲ 드래곤힐 내부에 위치한 스타벅스 드래곤힐 내부에 위치한 스타벅스. 낯선 곳에서 만난 반가움에 촬영한 스타벅스 드래곤힐점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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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도 다양성이

Main Post로 나가 조금 헤매다 보니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스타벅스.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었지만 아까 피자를 주문하면서 느꼈던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이 곳에서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작은 기대를 갖고 들어가보았다. 흘깃 메뉴를 살펴보는데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왠지 모를 실망감마저 들었다. 핫초코를 주문했다. 잠깐, 좀 전에 환전한 달러가 남아 있던가. 얼추 short 사이즈는 마실 수 있겠다. 자신만만하게 short 사이즈의 핫초코를 주문했다. 이게 왠일? 이곳은 Tall 사이즈부터 Grande, Venti 사이즈의 음료만 주문이 가능하며, Short 사이즈의 음료는 판매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섬주섬 지갑을 뒤지지만 준비해간 달러가 부족했다. 점원에게 혹시 원화도 받는지 물었다. 가능하다고 한다. Tall 사이즈 핫초코를 주문하고 거스름돈을 받는데 원화 동전이 아닌 달러동전으로 거슬러준다. 원화와 달러가 모두 통용되지만 거스름돈은 달러로만 내주는 것이 법규라고 한다.

다시 흥미진진해졌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가 혼재한 이곳은 양파껍질을 벗기듯, 머물면 머물수록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료를 기다리며 바리스타 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료는 카라멜마끼야또 Grande 사이즈이며, 메뉴나 음료의 재료들은 국내 여느 스타벅스와 동일하지만 패스츄리와 같은 베이커리는 주한미군들의 입맛에 맞추고자 드래곤힐 호텔에서 직접 공수한다고 한다. (기존 스타벅스의  베이커리는 조선호텔에서 공급받고 있다.) 또 일반 스타벅스가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하는데 반해 이곳은 주한미군들의 출퇴근 시간(오전 9시~ 오후 6시)을 반영해 평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요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8시까지 운영된다.

피자를 주문하며 느꼈던 문화적 차이를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기존의 만들어진 피자메뉴를 고르는 것에만 익숙했던 내가 갖가지 토핑을 골라 피자를 주문하면서 느꼈던 당혹감을,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하면서도 또 한번 느꼈다. 단순히 핫초쿄라는 메뉴를 주문했던 필자와는 달리 대부분의 외국인 손님들은 좀 더 세분화시켜, 가령 '두유를 넣어주고 디카페인으로 해주세요' '저지방 우유로 투 샷으로 해주세요' 혹은 '감미료 추가해주세요', '시럽은 2번 부탁해요' 등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료로 주문하고 있었다.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작은 차이지만 각자의 취향과 선택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 문화의 일면을 체험했다.

한국 땅인데 미국법 적용

이 곳에서 통용되는 모든 법은 미국 현지법이다. 한국 땅에 자리잡았다고 하나 이곳에 생활하는 거주민 대부분이 미국 국적의 주한 미군관계자와 가족들이므로 건축, 교통, 방범 등 기타 크고 작은 생활규범들에 모두 미국 현지 법이 적용된다. 교통법을 예로 든다면, 한국에서는 사거리 교차로 지점에서 직진하는 차량과 좌·우회전하는 차량이 동시에 맞닿은 상황이라면 단연 직진 우선주의로 주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좌·우회전하는 차량이 먼저 커브를 돌아 이동하면 그 다음 직진 차량이 움직이는 미국 현지 교통법에 의거해 주행하고 있다. 신호등 없이 횡단보도로만 표기된 이곳의 모든 도로에서도 미국식 현지 교통법에 의거해 무조건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하여 이곳의 평균 주행속도는 먼발치에서도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정지할 수 있는 1/40km의 표준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신문자판기. 빨간 색상과 이색적인 외형이 사뭇 귀엽다.
▲ 신문자판기 한국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신문자판기. 빨간 색상과 이색적인 외형이 사뭇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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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자판기 등 익숙하지만 낯선

가끔 무심히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거리 풍경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곳을 돌아보며 느낀 내 감정이 딱 그랬다. 한국 안에 위치했지만,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5층 이하의 낮은 건물외경부터 곳곳에서 놓여있는 작은 신문자판기와 커다란 우체통, 귀여운 루돌프 지붕과 검은색 소방차가 인상적인 소방서 건물까지. 마치 내가 한국이 아닌 미국 땅을 밟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골목을 돌아 Shoth Post 부근으로 진입하니 큼직한 상점들 몇 곳이 눈에 띄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의·식·주 생활을 접해보라 했던가. 마트로 들어서자 영문간판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려 하니, 입구에서 제지한다. 이곳은 허가 카드가 있는 사람에 한해 출입이 가능하며 물건을 살 때도 이 카드가 있어야 구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지나는 주한미군에게 동행을 부탁해 가까스로 입장했다.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한때는 한국인들의 '사재기'를 막기 위해 허가카드가 있는 사람에 한해 엄격하게 규제했지만 지금은 관리가 느슨한 편이라 이처럼 동행이 있는 경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이곳은 저렴하게 PX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마트이기에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것이며, 필자와 같은 방문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마트도 있었다.

마트 내부에는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일반 마트에서 구하기 힘든 대용량 제품들이 많았고, 모두 외국 브랜드의 제품들이었다. 이곳은 미 8군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제품들로 채워져 국내 제품들은 반입이 엄격히 금지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과자며 음료, 잡지, 술 모두 국산 브랜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트 옆에 위치한 구두 수선가게나 이발소, 미용실, 세탁소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군인들이 주로 주둔하고 있는 지역인만큼 구두 방 선반에는 군화나 사우디화(Desrt Boots)가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세탁소에는 세탁 후 말끔해진 군복들이 진열돼있었다. 이용가격은 대체적으로 1.5배가량 비쌌다. 이곳의 임대료가 비싼 편이라 전반적으로 이용요금이 비싸다는 것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인들은 종교에 상관없이 부활절을 명절처럼 지낸다고 한다. 우리도 교회에서 삶은 달걀을 선물하고 부활을 축하하곤 하지만, 미국인들은 달걀을 형상화한 큰 초콜릿이나 토끼 모양의 초콜릿 등을 부활절 선물로 가족과 친지, 친구, 연인들에게 선물하며 부활절을 축하한단다. 드래곤힐 내부에서 본 토끼 모양의 초콜릿이 눈에 띄어 하나 사 갖고 왔다.

부활절을 앞두고 상점 이곳저곳에는 귀여운 토끼인형과 함께 부활절 초코릿을 판매하고 있었다.
▲ 부활절 토끼 초코릿 부활절을 앞두고 상점 이곳저곳에는 귀여운 토끼인형과 함께 부활절 초코릿을 판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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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유학, 이민, 해외 발령, 사업상의 이유 등 한국을 찾은 이유는 모두 제 각각이지만,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 그들만의 마을을 구성해 살아가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반포동 '서래 마을', 이촌동 '리틀도쿄', 연희동 '화교촌'과 같은 지역도 있지만 필자가 방문한 이곳, 용산 미군기지 내 드래곤힐은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으로 여느 외국인 밀집지역과는 달리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필자 역시 담장 안 이곳 생활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주변의 설익은 추측들로 막연한 환상만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모습을 엿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북적거리고 다이내믹한 서울. 드래곤힐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뿐 아니라 서울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 모두 즐겁고 따듯한 봄, 그리고 행복한 부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미국식으로 인사하자면 "Happy Easter~"

덧붙이는 글 | 본 취재기사는 드래곤힐 담당자(드래곤힐 세일즈마케팅부 마이클 홍보이사 : 010-8922-5717)와 논의결과 취재 및 기사게재에 대한 허가를 받은 내용입니다.



태그:#드래곤힐, #부활절, #드래곤호텔, #외국인,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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