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목요일(18일) 오전 4시경 간암으로 고생하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아빠가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웠다. 5시경 아빠와 동생과 나는 외숙모 차를 타고 외할아버지가 계신 경상남도 거창으로 내려갔다(엄마는 전날 먼저 내려가 계셨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이날 3월 중순인데도 눈이 많이 내렸다(이 때문에 고속도로 곳곳에서 사고가 났다).
 
거창으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 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도 슬퍼하기보다 주변 풍경에 빠져있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9시가 넘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다들 울고 슬퍼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했다. 우리 엄마도 평상시 얼굴 그대로였다. 할아버지 사진이 있는 방에 가보았다. 주변에 꽃과  과일이 있고 초도 켜있고, 향도 피워져 있었다. 마치 제사상처럼….
 
직접 봤는데도 난 실감이 안 갔다. 사진 속에 할아버지가 계신데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촌동생과 내 동생은 이내 게임을 하면서 놀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울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계속 울고 슬퍼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빗나갔다. 처음에만 심각했을 뿐 이내 다들 웃고 떠들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분위기를 살피다가 곧 웃고 떠들며 동생들과 놀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의 관을 버스에 싣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갔다. 할아버지를 태우고 가는 영구차 안은 어제와 달리 무지 조용했다.
 

아빠와 외삼촌, 그리고 남자 어른들이 할아버지를 땅에 묻으러 가는 동안 할머니와 엄마, 이모 등 여자들은 집에 남아 이것저것 일을 하셨다. 집 분위기는 이내 시끌벅적해졌다. 우리는 다시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호두도 주우러 가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었다.
 
한참이 지나 남자 어른들이 집으로 들어오셨다. 어른들은 이것저것 정리한 뒤 모여 앉아  저녁식사와 함께 술을 드셨다. 어른들은 이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했다가 울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집에 와서도 그렇고 어른들은 울었다가 웃었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했다. 우는 거야 당연하지만 웃기는 왜 웃을까?   
 
곰곰 생각해 보다가 예전에 읽었던 장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자의 아내가 죽은 날. 장례식장에 그의 친구가 찾아왔다. 그런데 장자는 노래를 부르고 놀고 있었다. 친구가 놀라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장자는 말했다.
 
"내 아내는 고생을 했다네. 이제 편히 쉴 수 있으니 슬퍼하는 것을 그치기로 했다네."
 
장례식장에서 무조건 우는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편히 쉬고 계시겠지?

덧붙이는 글 | 이진선 기자는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태그:#장례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