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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풍 변주곡으로 축배를! .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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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

'친구'란 낱말은 인디언 말로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숨은 의미를 알게 된 뒤로 나는 누군가를 사귈 때 정말로 그의 슬픔을 내 등에 옮길 수 있을 것인가를 헤아리게 된다. 그리고 함부로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내게 친구란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처럼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사랑한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모임에 속하면 나를 구속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고집스럽게 모임 하나 들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10년 전에 우연히 중학교 동창회를 주선하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남학생 5반, 여학생 2반으로 남녀공학이라 많은 남학생들을 두고 내가 주선하기는 무척 망설여지는 일이었지만 소중한 친구들이 다른 세상으로 가기 전에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없는 용기를 냈었다.

그리고 나서 여학생들의 원의에 따라 여학생만의 모임을 따로 만들었다. 모든 여학생들에게 개방했지만 마지막에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만 16명이 오붓하게 남았다. 이것이 내가 속한 유일한 모임이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세상을 곱게 살아온, 소중하고 아름다운, 보석같은 친구들이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그토록 구속을 싫어했던 내가 이제는 모임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이야기하는 친구들
▲ 오손도손 정답게 이야기하는 친구들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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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을 항상 밖에서 갖곤 하는데 3월 모임은 우리 집에서 하겠다고 했다. 이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솜씨는 없지만 내 집에서 내 고운 친구들에게 내 손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오래 전, 남북 이산가족이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눈물의 상봉을 했었다. 그때 기자가 남녘의 한 가족에게 "50년 만에 그리고 그리던 가족을 만났는데 지금 가장 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잠시의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가 곧바로 쏟아낸 말은 "집에 데려가서 따뜻한 밥을 해먹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울먹였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은 지금도 가슴에 살아남아서 눈물솟게 한다. 지금은 외식문화가 팽배해서 귀한 자식 돌잔치도, 심지어 집들이도 밖에서 다 치르고 집으로는 차를 마시러 간다고 한다. 내가 이런 외식문화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대접할 때 집에서 정성을 다하고 나면 참 행복하다. 그리고 그런 날은 몸이 피곤한데도 쉬 잠들지 못한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때면 나는 늘 현관에 서서 장미꽃을 한 송이씩 나누어주곤 했다. 그것은 우리 집을 방문해줘서 고맙다는 사랑의 인사를 담은 나만의 이벤트였다. 이번에도 우리 집에 찾아올 친구들을 위해 장미를 사러 꽃집엘 들렀다. 입구에 놓인 색색의 바이올렛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 앞을 지나쳐 장미꽃을 보았다. 그러나 장미는 더 이상 나를 잡지 못했다. 바이올렛 꽃분을 사들고 와서 현관에 놓아두었다. 그리곤 오는 순서대로 찜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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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 집으로 시집갈 꽃분들 .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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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호의보다 한 사람의 친구로부터 받는 이해심이 더욱 유익하므로 현명한 친구는 보물처럼 다루라고 했다. 우리가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친구, 편안한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은 꽃들은 곱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꽃을 보며 환하게 웃는 친구들의 모습은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내가 훗날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내게 남을 유일한 자산은 아마도 곱고, 아름답고 소중한 내 친구들이리라.


태그:#친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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