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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건. 이는 세계문화유산 8건, 세계자연유산 1건, 세계기록유산 7건, 세계무형유산 8건 등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우리나라 세계유산의 숫자입니다. 세계유산은 고인돌, 조선왕릉, 해인사 장경판전,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판소리 등 익히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가치와 보존실태 등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기획연재기사 '세계유산 즐겨찾기'는 세계유산목록에 오른 각각의 유산들과 관련한 궁금증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볼 계획입니다. 세계가 인정한 소중한 유산들을 우리들이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연재기사는 최육상, 김준희 두 시민기자가 함께 진행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핑매는 ‘돌을 던지다’는 뜻으로, 마고할미가 치마에 돌을 싸가지고 가다 치마폭이 터져 그냥 던져 놓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길이 7m에 무게가 200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전남 화순 ‘핑매바위’ 핑매는 ‘돌을 던지다’는 뜻으로, 마고할미가 치마에 돌을 싸가지고 가다 치마폭이 터져 그냥 던져 놓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길이 7m에 무게가 200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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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은 수천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이어온 살아 있는 인류역사의 유산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고고학계의 석학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주저 없이 '고인돌'을 꼽는다.

또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던 1998년 당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장이던 거석기념물 전문가 '장 피엘 모앙' 박사는 우리의 고인돌을 직접 본 뒤 "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나라 고인돌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국내외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는 것일까? 지난 1월 8일(화순)과 1월 9일(고창) 그리고 1월 26일(강화) 3일에 걸친 고인돌 답사기를 2차례에 나눠 싣는다.

1월 8일 전남 화순, 200톤 '핑매바위'의 전설을 듣다

1월 8일 금요일 오전 8시 20분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전남 광주에서 갈아 탄 버스는 오후 1시가 다 되어 갈 무렵 화순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계획에 없던 화순 5일장을 둘러보며 눈을 호사시킨 뒤 전라도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뜨끈한 내장국밥으로 세계유산 답사의 첫 끼니를 장식했다.

눈과 입이 즐거웠으니 이제 고인돌을 만나 몸을 들썩일 차례. 택시를 타고 취재를 약속한 동북아지석묘연구소로 향했다. 이영문 소장(목포대 고고학 교수)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도 직접 차를 몰아 고인돌공원으로 안내했다. 모르고 보면 그저 큼직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을 고인돌이 울쑥불쑥 그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고인돌은 건축, 토목, 수학, 기하학 등 여러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로서 단순히 무덤 기능만 한 게 아니라 여러 지방에 전해지는 바위신앙처럼 숭배와 기원의 대상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인돌은 막대한 노동력이 뒷받침돼야 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 지역에 정착하며 식량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던 공동체사회라야 가능합니다."

이 소장은 “고인돌의 자연 환경을 훼손시키는 개발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영문 소장 이 소장은 “고인돌의 자연 환경을 훼손시키는 개발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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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장의 설명에 습관처럼 머리는 끄덕였지만, 무게 200톤 정도로 추정된다는 거대한 '핑매바위' 앞에 서보니 어떻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주변 채석장에서 돌을 떼어낸 흔적을 분명히 목격했음에도 산 속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고인돌들을 사람의 힘으로 세웠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세계유산에 지정된 화순의 고인돌은 596개에 이른다. 이 고인돌들이 가치를 지니게 된 데에는 이 소장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이 소장은 1995년 능주목(지금의 화순군 능주면, 도곡면, 도암면, 이양면, 청풍면, 춘양면, 한천면을 포함하는 지역) 조사 때 처음으로 화순의 고인돌을 정리해 뒤늦게나마 고창, 강화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목록에 올렸다.

"화순 고인돌의 특징은 수천 년간 계곡 사이사이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냈기에 환경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고 거대한 덮개돌과 채석장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고인돌의 가치는 외국인들에게 '환상과 신비의 자연'을 꾸밈없이 전해줄 때 빛을 발합니다."

12개 면과 1개 읍 그리고 인구 7만5천 여명으로 구성된 조그만 화순군의 입장에서 볼 때 고인돌은 관광자원으로서 분명히 가치가 있다. 또한 화순의 고인돌들은 괴바위, 마당바위, 관청바위, 달바위, 감태바위 등 여러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어 호기심을 잔뜩 자극했다. 관광명소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4시간여 동안 이어진 만남에서 이 소장은 끊임없이 "자연보존의 파수꾼인 고인돌의 원형 보존"을 강조했다. 이 소장은 "고인돌 이야기들을 적극 홍보하고 활용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한다"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고인돌의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는 등의 개발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화순의 고인돌을 만나러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또한 고인돌공원 주변에는 변변한 휴식 장소도 없었다. 그러나 고인돌을 쉽게 만나도록 길을 넓히고 건물을 짓는 것은 사람을 위하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자연과 공존하는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인돌과의 만남은 천명 같은 것으로 여생을 고인돌과 함께 할 것"이라는 이 소장의 다짐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1월 9일 전북 고창, 고인돌의 군무에 취하다

1월 9일 아침식사를 푸짐하게 때운 뒤 11시 15분 광주터미널에서 전북 고창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시간여를 달리니 산으로 둘러싸인 고창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창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 여 떨어진 고인돌박물관에 도착하자, 취재를 약속했던 신동천 문화관광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줬다.

박물관은 잘 단장돼 있었다. 풍부한 사진들과 각종 영상 자료들을 비롯해 정성껏 복원한 여러 재료들은 청동기시대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도왔다. 추운 날씨임에도 가족과 연인, 단체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죽은 자가 남겨 놓은 유산이 수천 년을 거슬러 산 자의 눈과 귀 그리고 머리를 일깨우는 역사가 되는 놀라운 현장이었다.

고창의 고인돌은 낮은 산등성이를 차지하며 약 1.8km에 걸쳐 줄 지어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 고창 고인돌 유적지 고창의 고인돌은 낮은 산등성이를 차지하며 약 1.8km에 걸쳐 줄 지어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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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약 500m 정도 떨어진 산자락에 늘어선 고인돌들은 잘 짜인 군무(群舞)처럼 느껴졌다. 선사 시대 엄청난 인구가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음을 쉽게 상상하게 했다. 숱한 고인돌들을 만드느라 들였을 노동력의 규모를 떠올릴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창 고인돌의 특징은 약 1.8km에 걸쳐 무려 447개가 무리지어 분포하고 있는 점입니다. 상석(덮개돌)의 거대화와 형식의 다양화도 빼놓을 수 없는데, 몸을 그대로 뉘여 장사를 지낸 '신립장(身立葬)'과 몸을 접어 장사지낸 '굴장(屈葬)' 그리고 뼈만 추린 뒤 나중에 묻은 '쇄골장(碎骨葬)' 등에 따라 고인돌의 크기와 형식이 다릅니다."

일명 ‘장독대 고인돌’로 불리는 이 고인돌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뒤뜰에 우뚝 서 있다.
▲ 신동천 문화관광해설사 일명 ‘장독대 고인돌’로 불리는 이 고인돌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뒤뜰에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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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찬찬이 살펴보니 이곳의 고인돌은 화순과는 달리 다소 낮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3열 횡대로 사열을 받듯 늘어선 고인돌들에서는 신분에 따랐거나 시대 순에 따랐을 조성원칙이 보이기도 했다.


"고창의 고인돌은 운곡댐 등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많이 발굴됐습니다. 모순되지만 고인돌은 개발과 보존의 개념이 서로 충돌하며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고인돌 분포 결과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하천과 계곡의 위치는 그대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창의 고인돌에는 동양 거석문화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신 해설사는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고창읍성 축제와 함께 고인돌 축제를 개최한다"며 "고인돌뿐만 아니라 주변에 백제 고분이 있는 것은 고창이 선사시대부터 살기 좋은 곳임을 증명한다"고 많이들 놀러오라며 웃었다.

"중양절은 하늘로 문이 열리는 날"이라는 신 해설사의 설명을 듣자니, 물을 경배하고 환경을 수호하는 고인돌이야 말로 자연과 통하는 선사시대의 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북 고창에서 만난 이들은 추운 겨울 날씨에도 “자녀들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고인돌을 찾아왔다”며 밝게 웃었다.
▲ ‘자녀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 전북 고창에서 만난 이들은 추운 겨울 날씨에도 “자녀들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고인돌을 찾아왔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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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2편 기사에서는 '강화 고인돌 답사기'에 더불어 세계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고인돌을 소개한다.


태그:#고인돌, #세계문화유산, #세계유산, #고창, 화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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