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재 1일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희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워낭소리> 제작자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

▲ 고영재 1일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희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워낭소리> 제작자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 ⓒ 임순혜

"한독협(한국독립영화협회)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나오지도 않은 감사 결과를 가지고 왜 아무 상관도 없는 한독협을 걸고넘어지는 겁니까? 한독협의 명예를 훼손하지 마십시오!"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에 마련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긴급 기자회견장. 조희문 위원장이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 선정과 관련해 해명을 하는 도중 <워낭소리> 제작자 고영재 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며 거세게 항의했다.

조 위원장이 새로 선정된 미디어센터 운영자 결정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졌음을 강조하면서 기존 운영 주체인 한독협에 문제가 있어 배제됐다는 논리를 펼치자 고영재 사무총장이 발끈한 것이었다.

"왜 아무 상관없는 단체 명예 훼손하나"

영진위의 위탁 형식으로 '미디액트'가 운영해 왔던 영상미디어센터는 시민들의 교육 공간으로 유용하게 활용돼 왔으나, 최근 8년 간 운영해온 미디액트가 새 운영사업자 공모에서 탈락하고 설립된 지 보름도 안 된 단체가 선정되면서 논란을 빚어왔다.

비슷한 시기에 결정된 독립영화관 운영사업자 선정과 맞물려 영화계 안팎에서 선정 과정의 공정성 등을 제기하는 반발이 거세게 일자, 영진위 측이 이날 긴급하게 자리를 마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한 적극 해명에 나선 것이다.   

조 위원장은 "배경 설명을 위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면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사업자로 지난 8년 간 한독협을 지정 위탁해 운영해 왔으나 최근 감사원 감사를 통해 부적절한 보조금 사용이 지적돼 이를 환수했고, 따라서 한독협과 연관된 사람들은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고영재 사무총장이 '영진위가 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에 지원한 것도 아니고, 기존 운영자들의 활동에 아무 관여도 안 한 한독협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고 사무총장은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한독협이 참여를 했거나 선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영진위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게 한 일이 없는데도 한독협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비겁하다"면서 "조 위원장이 운영사업자 선정이 결국 한독협을 배제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확인해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뒤 안 맞는 영진위의 자가당착 해명

 1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사업자 선정 논란과 관련해 해명하고 있는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과 실무 관계자

1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사업자 선정 논란과 관련해 해명하고 있는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과 실무 관계자 ⓒ 성하훈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이 공모제를 통해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사결과에 대한 의혹과 더불어 편향성을 띤 의도성 있는 선정임이 다분해 보인다.

경험 없거나 역량이 미흡한 단체가 선정했고, 축구해설가 출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등 관련성도 적은 인물이 대표를 맡고 있는 데다, 기존에 검증된 단체들이 밀려나는 것은 심사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시각이다.

이런 의혹이 확산되면서 마련된 1일 영진위의 기자회견도 속 시원한 답변보다는 의혹만 더 키운 모습이었다.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독협을 끌어들인 영진위 입장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조희문 위원장의 해명은 기자들의 실소를 자아낼 만큼 앞뒤가 안 맞는 자가당착이 많았다.

조 위원장이 밝힌 영진위 입장의 핵심은 '영상미디어센터를 8년간 위탁 운영해온 한독협은 자격이 없기에 공모에 참여한 단체는 모두 신생단체'라는 것. 따라서 기존 운영해 왔던 사람들을 밀어낸 것이 아니고 공모에 응한 신생단체들 중 적법한 심사에 따라 새 운영사업자 선정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존 운영을 맡아왔던 미디액트는 그동안 영진위 감사에서 별다른 문제를 지적받지 않고 모범적 운영을 보여 왔으며 한독협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미디어센터를 운영해 왔다. 이러한 성과는 전혀 무시된 채 단지 한독협 회원들이 중심이 됐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배제시킨 영진위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영재 사무총장은 "운영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면서 2009년 12월로 위탁 계약이 종료됐으나 영진위 측의 요청으로 2010년 1월 말까지로 재계약했다"면서, "공간을 놀리면 안 되니까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한 달 정도만 관리할 것을 차라리 영진위 직원들을 파견해서 관리하지 문제 많다고 주장하는 단체랑 재계약을 한 것 자체가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며 영진위 입장을 비판했다.

쌓아놓은 성과는 외면하고 드러난 문제만 인정해 영진위가 사업자를 선정했다는 지적이 잇달았으나 조희문 위원장은 "공모에 지원한 단체들은 모두 신생단체들이고 심사는 공정했다"는 주장만 계속 되풀이 했다. 이어 앞으로 운영과 결과를 보고 나서 평가해 달라고 주문했다.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나

항의시위 1일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진위의 운영사업자 선정 결과에 항의하고 있는 수강생들

▲ 항의시위 1일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진위의 운영사업자 선정 결과에 항의하고 있는 수강생들 ⓒ 성하훈


이번 논란이 단순하게 보면 영화관련 기관의 운영사업자 선정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보일 수 있으나, 최근 빚어지고 있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문화예술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마치 모종의 시나리오에 따라 모든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계에 좌파 적출 이념 공세가 거셌던 지난해 상당수 영화인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영화진흥위원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다음 목표는 독립영화일 것이라 예상했다. 에둘러서 중심에 접근하듯 주요 기관들부터 정리한 다음,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어떤 조처가 있을 것이라 여기는 분위기였고 그 선상에서 볼 때 독립영화 진영이 다음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영화인들의 일반적인 관측이기도 했다.

한 영화인은 당시 영화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좌파적출 공세를 우려하면서 "아마도 공세를 펴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어떤 근거를 가지고 흠집을 내는 방법으로 정당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진행되고 있던 감사원의 감사가 그런 목적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 보고 있었다. "영화인들의 기업 수준으로 자금이나 회계 관리를 못하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감사원이 집중적으로 파헤치면 여러 문제점들이 나올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좌파 적출을 외치는 쪽에서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또한 탄압의 목적을 가리기 위해 도덕적인 문제를 걸고넘어지며 당위성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외형적 포장을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영화 진영을 옥죄면서 지속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좌파적출 공세의 시나리오의 흐름과 방향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감사원의 감사에서 일부 영화단체들의 자금 운용 문제가 지적됐고, 영진위는 아직 감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1일 기자회견에서 이를 활용했다. 이들 단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 선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능은 살리되 인적 청산' 문건 내용 착실히 실천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 영화계 좌파 적출을 주장한 문건을 만든 '한국문화미래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 영화계 좌파 적출을 주장한 문건을 만든 '한국문화미래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 성하훈

당시 뉴라이트 계열 '한국문화미래포럼'이 국회 관련 상임위 한나라당 의원에게 보낸 '문화 예술계의 현안과 과제'라는 문건에는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 한국종합예술학교와 좌파 문화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하며 각종 지원금과 사업의 편중화가 심화된 영화진흥위원회, 좌파 영화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지역 영상 위원회 등을 청산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

문건은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FTA반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등에 이들 단체와 연관된 영화인들이 나서고 있다'는 것으로 '기능은 살리되 인적 청산은 분명하게'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후 문화단체들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강도 높게 진행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이 물러났으며, 부산국제영화제도 혹독한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영진위도 조희문 위원장 체제가 새로 들어섰다.

그런데, 조희문 위원장은 문건 작성 단체인 '한국문화미래포럼'의 주요 인사이며, 최근 기존 사업자를 물리치고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사업자로 선정된 ㈔시민영상문화기구 장원재 이사장(축구평론가) 또한 뉴라이트 계열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영상미디어센터 소장직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진 홍익대 김종국 교수 역시 한국문화미래포럼 핵심인물이며, 새로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최공재 이사장은 과거 영화인들의 반발이 컸던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기능은 살리되 인적 청산은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앞서 문건의 내용이 착실히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교수 시절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영화운동의 근저에는 외세배격 등의 주장이 있었고 이는 이북의 선전이념과 닿아 있다"며 "독립영화가 이념적이고 운동성만이 지나치게 강조된 데다 미학적으로 과대 포장 됐기에 이제는 걸러져야 한다"면서 독립영화 감독들의 성향과 작품 방향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그가 독립영화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해 온 부분들이 최근 일련의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다.

다음 대상은 '시네마테크'?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에 항의하는 수강생들이 항의 시위.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가던 조희문 위원장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운영자 선정에 항의하는 수강생들이 항의 시위.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가던 조희문 위원장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성하훈


이에 대해 조희문 위원장은 그런 흐름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교수와 평론가로서 개인의 위치와 영진위 책임자로서 위치는 다르며 편중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데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그때 평가를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껏 겉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때의 입장과 지금 위치의 입장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영진위 위원장으로서 영화의 발전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 조희문 위원장이 당시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센터 운영자인 '미디액트가 좌파의 온상'이라 한 적이 있는데, 이번 결과를 보니 교수시절 습관이 다시 나온 것 같다"며 조 위원장의 결백 주장을 일축했다.

한 영화제작자는 "이미 예상했던 수순인데 유치할 정도로 생각보다 너무 수가 낮고 막무가내이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더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지만 독립영화 진영에 대한 탄압이 심각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영화전용관을 맡게 된 최공재 이사장이나 미디어센터의 감종국 교수 등이 더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영화평론가 백건영씨는 앞으로의 흐름에 대해 "영화계 우파세력들이 주도하는 좌파 적출 움직임이 2009년에는 간을 봤다면 2010년에는 본격적인 맛을 볼 것"이라며 "다음 대상은 곧 예정된 시네마테크 공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그는 "영진위가 인디포럼이나 인권영화제 예산을 다 없애는 방식을 보였듯이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끊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아직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는 살아남아 있는데, 향후 이들 영화제들에 대한 공세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과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영화에 대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독립영화인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이다.

독립영화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미디어센터 조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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