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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07년 12월28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07년 12월28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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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1인 특별사면이 확정됐다. 이 전 회장은 지난 8월 배임과 조세포탈 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불과 4개월 만에 특별사면을 받게 됐다.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사면'이란 강한 비판 속에서도 사면을 지지하는 이들의 말은 한결같다.

이명박 대통령 :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반드시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건희 전 회장의 활동이 꼭 필요하다.",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결심하게 됐다."
법무부 : "이건희 IOC 위원의 자격 회복을 도와 적극적인 유치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 "이 전 회장에 대한 정부의 특별사면·복권은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반영된 것."
김진선 강원도지사 : "이 전 회장은 겨울올림픽 유치는 물론 국가 브랜드 제고 및 국제 외교 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것."
뉴라이트전국연합 : "사면권 남용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스포츠 외교와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옳다."

즉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란 '국익'과 '국민의 염원'을 위해 전 국제올림픽위원(IOC)인 이 전 회장의 활동이 필요하고 따라서 그를 사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올림픽 유치'란 것은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근본가치'보다도 우선하게 된다.

스포츠 이벤트에 얽힌 신화를 넘어서야

그렇다면 '올림픽 유치'란 정말로, 그렇게나 중요한 것일까?

특별사면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법치'와 '민주주의'가 언급된다. 하지만 '올림픽 유치' 자체에 대한 의문제기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사면에 찬성하는 이들이나 반대하는 이들이나 머릿속엔 "올림픽 유치=경제성장=좋은 것"이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사회에서 거의 신화처럼 굳어져 있다. 그러하기에 올림픽 유치란 포장된 대의를 내세우며 법치를 뭉개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며, 그런 사면엔 반대하면서도 올림픽 유치 자체에 대한 의문제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을 새롭게 던져야 한다. "올림픽은 당연히 중요하다"란 전제에 "올림픽은 과연 누구에게 중요한가?"란 질문을.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논문 '스포츠메가이벤트와 경제효과: 그 진실과 허구의 재구성'에서 "유치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집단은 지역주민이 아닌 토건 및 개발업자 등 기득권층에 한정될 뿐"이라며 '올림픽 유치=경제성장=좋은 것'이란 신화적 믿음에 일침을 놓는다. "스포츠이벤트에 대한 긍정적 믿음들은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올림픽 유치에 대한 긍정의 목소리에만 익숙한 우리의 귀엔 정 교수의 주장이 껄끄럽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특별사면과 같은 기가 막힌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스포츠이벤트에 대한 신화 역시 넘어서야 한다.

정 교수는 오랫동안 <프레시안> 기고와 논문, 저술을 통해 그 신화에 줄곧 '맞짱'을 떠온 지식인이다. 그와의 마주침을 통해 이번 특별사면에 얽힌 새로운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 유치는 정말 국익인가? 진정 국민들의 열망인가? 절차야 어찌됐든 이 전 회장은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탤 것인가?

이건희의 올림픽 유치활동?... 오히려 국위 손상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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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지난 15일자 <프레시안> 기고(세기의 '반칙왕'이 올림픽을 유치한다고?)를 통해 이 전 회장의 사면 사유인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기여"에 부정적 견해를 내놨다. "거대 다국적 기업의 CEO로서는 세계적 반칙왕"인 이 전 회장은 "부패 집단으로서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하는 IOC의 노력에 누가 될 뿐"이란 것이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공판 진행 중에 IOC 위원직에 대한 직무 정지를 IOC에 요청했다. 스스로 자격 정지를 요청한 것인데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일단 IOC에서의 퇴출을 면하고 시간을 벌기 위한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솔트레이크시티의 뇌물 공세 스캔들이 폭로된 이후 IOC의 윤리 규정이 강화되고 윤리위원회가 신설됐는데 따라서 이 전 회장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재판 결과에 따라 IOC에서 당장 퇴출이 논의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정희준 교수의 이 기고문에 따르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부패한 비리 집단' IOC를 비난하는 기사에서 이 전 회장을 포함한 몇몇 인사들을 지목하며 "평화와 인권을 중시한다는 조직에 왜 '범죄자 사진 대장(rogues' gallery)'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필요한지 미스터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이 전 회장이 나선다고 올림픽 유치에,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국위 손상이다. 그리고 이 전 회장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올림픽 유치 활동에 나섰다가 두 번 다 실패하지 않았는가. 지금 상황에서 나선다고 도대체 뭐가 더 나아지겠는가."
(2009.12.15. <프레시안> 기고 '세기의 '반칙왕'이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중)

올림픽 유치의 경제효과, 부풀려진 기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 전 회장을 특별사면하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스포츠이벤트 개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효과적 선전도구는 이른바 '경제 효과'다.

정 교수는 자신의 논문 '스포츠메가이벤트와 경제효과: 그 진실과 허구의 재구성'을 통해 "(스포츠이벤트의) '경제 효과'는 그 산출방식과 특히 그 해석에서 상당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산하 연구원이나 각 지역자치단체의 부설 연구원의 용역 연구 결과는 현실성 및 적정 수준을 넘어선 수치의 극대화 및 해석의 오남용 등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언론은 이를 그대로 전하고 사람들은 이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도 부가가치까지 포함해 최대 22조 원의 경제파급효과와 22만 명의 고용창출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이는 "뻥튀기장수의 뺨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턱을 날려 버리는 뻥튀기"(<프레시안> 2007년 4월10일자 기고 '평창동계올림픽, 일단 정지!')일 뿐이다.

올림픽 개최로 경제가 흔들릴 정도의 피해를 입었던 몬트리올, 아테네, 시드니, 나가노. 그리고 2002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한 달 간격으로 치르며 경제발전을 달성해 세계적 도시로 도약하겠다던 부산이 처한 반대의 현실. 이 실례들은 '올림픽 유치=경제성장'이란 믿음이 '거짓'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희준 교수는 자신의 논문 '스포츠메가이벤트와 경제효과: 그 진실과 허구의 재구성'에서
2002년 영국 스포츠학자인 스지만스키(Szymanski)의 말을 언급했다. 스지만스키는 <월드이코노믹스>지에 실린 '월드컵의 경제효과'라는 논문에서 "월드컵의 거시경제적 효과는 없다"고 결론내리며 "국가는 스포츠이벤트 유치에 나서면서 갖은 경제적 효과를 '창조(inventing)'하는 나쁜 버릇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의 관료, 개발업자, 경제성장주의자들은 이렇게 "효과를 과장하는 방식으로 스포츠이벤트 개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회개최를 위한 공적 재원, 즉 세금의 사용을 합리화"(정희준 논문 '스포츠메가이벤트와 경제효과: 그 진실과 허구의 재구성') 시킨다.

이에 대한 정 교수의 일침이 따갑다.

"물론 일회성 국제이벤트가 가져다주는 장점은 많이 있겠지만 이를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홍보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이런 업적위주 행정이 시민들의 불편을 전제한다면 더욱 그렇다. 과잉투자가 요구되고 투자대비 효과도 불확실한 이벤트를 유치해 한 지역을 전시체제화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2007.04.10. <프레시안> 기고 중)

스포츠이벤트 유치, 배부른 자는 따로 있다

지난 12월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램프에서 열린 '2009 서울 스노우잼' 개막식에서 스노보더들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염원하며 'Where is Next Olympic?', 'PyeongChang is Ready'의 글귀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내려오고 있다.
 지난 12월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램프에서 열린 '2009 서울 스노우잼' 개막식에서 스노보더들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염원하며 'Where is Next Olympic?', 'PyeongChang is Ready'의 글귀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내려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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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별사면을 이뤄낸 이들이 말하는 "국가적 관점" "국익" "국민적 기대와 염원"에서의 국가란 무엇이며, 국익이란 무엇이고 또 국민이란 무엇일까. 평창올림픽 유치는 진정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일까.

정 교수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올림픽의 혜택은 철저하게 계급 차별적일 뿐"(정희준 논문 '스포츠메가이벤트와 경제효과: 그 진실과 허구의 재구성')이란 것이다. "혜택의 계급 차별"이란 '1988년 서울올림픽: 도심정비사업으로 72만 명의 시민 강제철거, 2008년 베이징올림픽: 150만 명이 넘는 시민 추방' 등에서 보듯 '올림픽 박해'의 문제만이 아니다. 스포츠이벤트 유치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집단은 지역주민이 아닌 토건 및 개발업자 등 기득권층에 한정될 뿐이다.

정 교수는 2007년 7월18일 <프레시안> 기고 '평창 올림픽, 죽지도 않고 또 오려고?'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며 시작된 많은 시설물과 기반조성 사업에는 많은 토건자본과 투기자본들이 참여하고 있다, 반면 올림픽을 유치하면 모든 고생을 도맡게 될 강원도민에게 돌아갈 '건더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정작 주민들에겐 '고생길'이자 '세금길'이 되기 십상"이다.

올림픽은 과연 누구의 배를 불릴 것인지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평창의 땅값만 봐도 알 수 있다. 정 교수는 지난 4월28일 <프레시안> 기고 '올림픽이 뭐길래…"이번엔 어디에 몸을 던질래?"'에서 "유치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던 2007년 무려 11%가 뛰었던 이곳의 땅을 사들인 사람의 80~90%가 외지인"이었으며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유치위 관계자들 상당수도 땅을 매입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정 교수는 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의 알펜시아 프로젝트가 "태영건설의 최대 역점사업이고, 또 그 태영의 소유주는 김 지사와 함께 평창올림픽 유치의 쌍두마차인 윤세영 강원도민회장"(<프레시안> 2007년 8월3일자 기고 '"아! '제발' 올림픽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인 점도 지적하고 있다.

결국 "3선 임기를 마치며 '용꿈'을 꾸고 있다는 김진선 지사의 중앙정계 진출을 돕기 위해, 윤세영 도민회장이 투자금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땅투기꾼들의 함박웃음을 위해, 거주민보다는 외국인들이 대접받는 사실상의 '빚잔치' 올림픽을 위해 강원도민들은 허벌나게 뛰어야 한다."(4월28일자 <프레시안> 기고 '올림픽이 뭐길래…"이번엔 어디에 몸을 던질래?"') 이렇듯 "(스포츠이벤트) 유치의 장막 뒤에는 항상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는 것"(2007년 7월18일자 <프레시안> 기고 '평창 올림픽, 죽지도 않고 또 오려고?')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강력히 주장하는 인사 대부분이 '전과자'라는 점도 볼썽사납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 "전과자"들이 하나가 되어 주장하고 있는 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당위"이다.

그들은 왜 그리도 평창 올림픽 유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런 '대의'를 내세우며 '대통령 위의 재벌총수' 이건희의 구제에 나선 것일까? 그리고 왜 이 전 회장은 IOC활동 및 올림픽 유치활동에 욕심을 내고 있는 걸까? 단지 나라를 사랑하고 스포츠를 아끼기 때문에?


태그:#이건희 특별사면, #평창동계올림픽, #평창겨울올림픽, #정희준 , #정희준 어퍼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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