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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는 무엇을 위해 만드는 것일까? 신도시의 본질이 부동산 투기, 건설회사의 이익을 위해 왜곡되지 않았는가? 신도시 건설은 진짜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도시건설이 맞는가?

 

신도시 또는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가난해서 다른 곳으로 추방되는 생존권 박탈의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본다. 혹시 이 지역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은 건물의 위압에 눌려 무시되고 유린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의 도시에는 왜 역사를 찾기 어려울까? 그 이유는 바로 기존 도시가 다 허물어져 흔적도 없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지역이 되어도 좋다는 동의를 모두가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의 도시가 피난민촌이 아니라면, 역사의 흐름을 잇는 계속적인 도시의 발전을 위해 수백 년이 지나도 점점 더 아름다운 주거환경으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피난민의 심리는 10년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를 허물고 신도시를 만들며 부동산 투기 잔치를 하는 동안 우리는 피난민 신세를 면치 못한다.

 

4대강을 따라 자연 그대로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모텔과 음식점으로 풍경이 채워진다면, 이것은 각각 성과 음식에 굶주린 피난민을 위한 임시 수용소 밖에 되지 않는다.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 건물의 옥상마다 붙어있는 조잡한 장식은 이곳이 부동산 피난민 수용소라고 알리는 깃발에 가깝다. 설마 이것을 가지고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고 하지는 않겠지?

 

한국의 신도시는 거대기업의 부동산 건설 잔치상

 

<사고와 진리에서 태어나는 도시>의 저자인 떼오도르 폴 김과 이메일로 장문의 인터뷰를 가졌다. 오늘은 세번째 이야기로 그는 그동안 한국의 도시가 옛 수도인 한양의 문맥을 찾아 그 시대의 고유문화와 역사를 간직하여 발전하지 못했고, 안정된 사회적 질서와 체계, 휴머니즘의 정신과 사고, 합리적인 이론과 사상을 바탕으로 도시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하고 좋아지는 삶의 발전, 공공생활의 사회적 장소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신도시 건설에 대해 그는 도시의 본질적 개념을 무시한 콘크리트 괴물들의 집합장소와 같으며, 인간의 삶이 망각된,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기는 커녕 투기심리를 조성하여 기업들의 배를 채우는 인간 사육장의 아파트촌을 만들면서 다들 신도시, 혁신도시라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신도시 건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도시건설이 아니라, 자연을 훼손하여 거대한 기업의 부동산 건설 잔치 상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으며, 따라서 신도시 건설은 이 땅에서 가능한 빨리 사라질수록 도시의 발전이 정상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세종시에 대해 언급하며, "대도시로의 인구급증의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지방도시, 읍, 면 등의 소도시에 대도시와 같은 수준의 주거환경, 사회복지, 교육, 문화시설, 산업시설 등이 갖추어진다면 누가 물가 비싼 대도시로 가서 살겠는가?"라고 핵심을 지적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반드시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강 살리기 사업이 되어야 할 것이며, 강을 따라 전국에 관광테마도시 등의 무작위로 부동산 투기사업을 벌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옛 도시의 문맥을 찾아 시대의 고유문화와 역사를 간직하여 발전하기

 

- 한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유럽의 역사 도시처럼 고대, 중세, 근세 그리고 현대의 흐름을 잇는 계속적인 도시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도시와 건축의 개념은 기원전 유럽에서 탄생하여 중세, 르네상스, 근세를 거쳐 오늘날 지구상 전 세계의 주요도시를 형성하는데 기초를 이루었다. 한국의 경우는 19세기 조선 후기의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치로 14세기의 중세와 16세기 근대까지 일어난 사상, 문학, 예술 부흥의 르네상스와 18세기 중엽에 일어났던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 경제 구조 변혁을 가져온 산업혁명의 문명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 이후 36년간 일제 군국주의의 압제로 인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말살되었기에 18세기 근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서양의 도시학적 개념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고립되어 단절되어 모든 것이 멈춰져버렸다.

 

게다가 1950년 6.25 전쟁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옛 수도인 한양의 문맥을 찾아 그 시대의 고유문화와 역사를 간직하여 발전하기보다는 가난함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방법만이 살 길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한국은 선진국의 안정된 사회적 질서와 체계, 휴머니즘의 정신과 사고, 합리적인 이론과 사상보다는 오랫동안 헐벗고 굶주렸던 가난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도시는 즉 건설이다'라는 현상을 거부하거나 부인할 수 없었다.

 

즉 정신적 문화와 사회체제의 안정보다는 가난하지 않은 부자가 되는 것, 더 많이 소유해야 하는 것의 물질적 변화를 더 절실하게 요구했던 것인데, 이것이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점점 더 아름다운 환경을 위해

 

- 그렇다면 미학적 또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도시는 어떤 존재인가?

"미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예술철학이다. 예술이 철학의 학문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예술은 '편리하고 유용하다'의 관점이 아닌 '아름답다'라는 언어로 정의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술이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취미, 취향, 유행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가치 기준에 의해 예술성이 표현되어야 한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도시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가에 있다. 장소라는 곳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예술의 판단범위와 기준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성 혹은 사회화라고 정의한다. 도시의 사회성은 어느 장소,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의 대화, 설문조사, 관찰, 분석 등의 연구를 통해 결정된다.

 

즉 수백 년이 지나도 점점 더 아름다운 주거환경으로 발전 할 것인지 아니면 다 허물어져 흔적도 없이 새로운 형태의 지역이 될지, 혹시 이 지역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은 건물의 위압에 눌려 무시되고 유린되고 있는지 아니면 가난해서 다른 곳으로 추방되는 생존권 박탈의 경우가 있는지, 토끼장의 고층건물에 갇혀 사회단절의 소외감과 심리적 압박감으로 정신과 심리에 문제가 있는지를 검증하여 결정한다.

 

따라서 도시의 예술성은 단지 외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아름답게 형성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욕망의 결과가 예술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하고 좋아지는 삶의 발전, 공공생활의 사회적 장소로 추구되어야 한다."

 

신도시 건설은 가능한 빨리 사라질수록 도시의 발전이 정상화된다

 

- 현재 한국에는 대형 건설사업이 정부 주도하에 진행 중인데 잘못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재 한국에 당면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문제의 건설은 바로 산발적 신도시 건설이다. 도시의 경계, 즉 도시의 영역인 국경의 개념 없이 높은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는 한국의 신도시 건설은 도시의 본질적 개념을 무시한 콘크리트 괴물들의 집합장소와 같다. 인간의 삶이 망각된,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기는 커녕 투기심리를 조성하여 기업들의 배를 채우는 인간 사육장의 아파트촌을 만들면서 다들 신도시, 혁신도시라 말하고 있다.

 

신도시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어 17세기 식민지 정책에 의해 미국과 캐나다의 많은 신도시가 건설되어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유럽은 19세기 이후 현대에 접어들어 정치적 의도가 아닌 경제적 의도에 의해 독일,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 건설되었다. 특히 영국은 2차대전 이후 전쟁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된 도시의 재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유럽사회에서 신도시의 건설은 1970년 이후부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신도시의 건설이 마치 현대사회에 필요불가결의 조건으로 착각하듯 온 국토 전체가 신도시 건설을 열광하고 있다. 

 

유럽에서 40년 전에 완전 중단했던 신도시 건설을 놓고 한국은 마치 현 시대의 건설유행, 건설 붐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신도시의 개념과 본질이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 건설회사의 이익을 위해 완전히 왜곡된 것이다. 한국의 신도시 건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도시건설이 아니라 자연을 훼손하여 거대한 기업의 부동산 건설 잔치 상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신도시 건설은 이 땅에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가능한 빨리 사라질수록 도시의 발전이 정상화된다."

 

읍, 면, 소도시에 대도시와 같은 주거환경, 사회복지, 교육, 문화시설, 산업시설을

 

- 그렇다면 세종시 건설, 4대강 개발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는가?

"노무현 정권의 선거공약으로 건설 중인 행정복합도시 건설은 그 건설자체의 당위성을 상실한, 도시의 본질과 개념이 부재된 심각한 건설사업이다. 공주와 대전의 상징적 역사의 도시 사이에 약 7200ha(72km²)의 대 자연의 생태계를 마구 훼손하여 황무지를 만들고 그 위에 중앙행정, 문화교류, 도시행정, 대학, 연구소 등의 시설을 건설한다고 대도시의 인구가 분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역의 크고 작은 읍, 면, 소도시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지역경제가 죽어버리거나 텅 비어 아무도 살지 않는 심각한 현상이 벌어진다. 세종시 건설은 목적론이 검증 되지 않은 무지의 정책에 불과하다. 

 

대도시로의 인구급증의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지방도시, 읍, 면 등의 소도시에 대도시와 같은 수준의 주거환경, 사회복지, 교육, 문화시설, 산업시설 등이 갖추어진다면 누가 물가 비싼 대도시로 가서 살겠는가? 근본적인 도시건설의 본질과 목적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치적 의도에 의해 추진되는 이 세종시 건설은 자연의 국토만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당장 중단 되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목표와 구상에는 충분한 목적론이 있다.  4대강 사업이 미래의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건설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보존하고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생태학적 조건을 엄수하여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종합계획이  환경, 생태학, 지질학, 수리학, 산림학자등에 의해 분석, 검토되지 않는다면 자연 생태계의 파괴라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게 되므로, 4년이 아니라 10년을 바라보고 좀더 세분화되고 정교한 시각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 판단한다.

 

예를 들어 폭 20미터의 약 20 km 길이의 프랑스의 작은 강의 수로를 개발하는데 까지 약 6년이 지나야 자연 생태계가 겨우 안정되었고, 강 주변의 풀과 나무가 자라 훌륭한 경치를 가진 수로가 되기 까지는 최소한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의 핵심은 4대강 수중보 건설이 문제가 아니다. 4대강을 살리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강을 따라 전국에 유럽형 도시, 전원도시, 생태도시, 관광테마도시 등의 이름을 붙여 무작위로 부동산 투기사업을 벌린다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반드시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강 살리기 사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고와 진리에서 태어나는 도시 - 파괴된 도시를 살리는 인문학적 상상력

떼오도르 폴 김 지음, 시대의창(2009)


태그:#떼오도르 폴 김, #도시, #부동산, #세종시,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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