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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에서 '해괴한' 결정으로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자 민주당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4시 의원총회를 열어 헌재의 결정을 맹비난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번 결정은 헌재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법률안 통과 절차가 위헌·위법인데 어떻게 결과는 유효하다고 판단 내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민들도 도대체 헌재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어떻게 국민 법 감정과 완전히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들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헌재 결정이 '쿠데타를 하면 절차는 잘못됐지만, 권력을 장악했다면 유효하다'는 결론과 뭐가 다르냐"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헌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에서 법만 통과시키면, 절차가 위법해도 결과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명백한 정치적, 당파적 결정인데 국회의원들도 저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헌재 결정으로 절차적 위법성 드러났다"... 김형오 의장 사퇴 요구

 

이어진 의원들의 발언에서도 헌재를 향한 격한 비판이 쏟아졌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조종을 울린 것"(우윤근), "도둑이 가택에 침입해 물건 훔쳐간 것은 맞는데 무죄라는 거냐"(전병헌),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이 대한민국 국치일이라면, 2009년 10월 29일은 헌재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헌치일"(박주선) 등이다.

 

민주당은 다시 '미디어법 투쟁'에 나설 태세다. 비록 헌재가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국회의원 표결심사권한 침해 ▲무권투표·대리투표로 인한 위법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등 신문법과 방송법 입법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점이 결정문에 나와 있으므로 법 개정안(혹은 폐지안)을 다시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조배숙 의원은 "헌재에서도 미디어법이 위헌이라는 점을 인정한 만큼 빨리 이 법안에 대한 폐지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당에 요구했다.

 

민주당은 또 김형오 국회의장의 사퇴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22일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직후 김 의장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헌재 결정문으로 입법 절차상 문제가 드러난 만큼 김 의장이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당시 김 의장을 대신해 본회의 사회를 본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동반 사퇴도 요구할 예정이다.

 

이날 헌재 판결로 민주당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10·28 재보선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헌재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원총회에서는 향후 대응전략을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의원직 사퇴서' 처리 문제가 가장 논란이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이후 전원 사퇴서를 써서 정세균 대표에게 위임했다. 이와 별도로 정 대표와 천정배, 최문순 의원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접 사퇴서를 제출하고 의원회관에서 철수했다.

 

울분을 참지 못한 민주당 장세환 의원도 이날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장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정권의 시녀를 자임했다"며 "오늘은 사법정의가 무너지고 사법양심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한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헌재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정세균·최문순·천정배·장세환, 국회로 돌아오라"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헌재 판결로 다시 미디어법 투쟁을 벌여야 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당 대표를 포함한 현역의원 4명이 국회를 떠나게 된다면 동력이 약화될 것은 뻔한 이치다. 당내 중진들을 중심으로 "의원직 사퇴서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무효청구는 기각됐지만) 헌재 결정으로 언론악법은 사실상 무효라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에 우리는 원내에서 이를 폐지하는데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며 "(정 대표 등 4명의 사퇴서에 대해) 우리가 사퇴서 반려요구 권고결의안이라도 내서 반려받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호소했다.

 

민주당 시니어그룹 멤버인 김영진 의원도 "헌재는 한나라당 손을 들어줬지만, 재보선을 통해 국민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며 "의원들이 당 대표에게 제출한 사퇴서는 반려하고, 의원총회 결의로 4명의 사퇴의사 철회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중진인 원혜영, 박병석 의원도 사퇴서 반려를 위한 의원총회 결의가 필요하다고 힘을 실었다.

 

반면 일부 의원들은 "진정성이 왜곡될 수 있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국민들의 눈에 '쇼'로 비칠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다. 이종걸 의원은 "사퇴서 반려 결의를 하자는 것은 천정배, 최문순의 개인 결정에 대한 큰 실례가 되고, 국민들이 정치생명을 건 진정성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며 "헌재 판결로 상황이 종료된 만큼 다음 순서로 나가자"고 말하며 사퇴서 반려 결의 주장을 반박했다.

 

강창일 의원도 "지금 당장 모두의 사퇴서 반려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며 "먼저 오늘 사퇴서를 낸 장세환 의원을 당 지도부가 만나서 설득하는 게 순서"라고 말하며 신중한 대응을 요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원내대표가 수습에 나섰다. 그는 "당장 우리가 국회를 버리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국회 안팎에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이종걸 의원 등을 설득했다.

 

결국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정 대표와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의 원내 복귀를 요청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사퇴의사 철회를 요구했지만, 네 사람이 당장 국회로 돌아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태그:#민주당, #헌법재판소, #미디어법, #최문순, #천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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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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