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0년대 중후반, 국내실력파 아티스트들의 산실인 '동아기획'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푸른하늘'.

 

이 푸른하늘의 음반들은 당시 같은 동아기획에 선배였던 김현식, '빛과 소금', '신촌블루스', 지금도 활동 중인 '봄여름가을겨울' 등과 견주어도 그 기여도나 인기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았으나, 어쩐지 음악성만큼은 대중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래저래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면 우선 그들의 음악은 당시에 주류였던 블루스나 포크, 혹은 록음악적인 요소를 배제한 서정적인 발라드 일색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와 맞물려 음악의 사회성을 배제하고 어딘가 힘이 빠지는 노골적인 사랑노래만이 그들의 음반에 존재하지 않았냐는 의견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이제와 돌아보면 어디까지나 수용자 시각의 차이였지 절대적인 비교대상으로서 상대 평가되기엔 무리가 있었음을 전제하고 싶다.

 

또한 푸른하늘의 음악이 가지는 가치는 그렇게 간단하게 재단해서 말할 음악은 결코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음반의 재발견⑦ : 푸른하늘 2집 <눈물 나는 날에는>

 

물론 결과적으로 본다면 푸른하늘의 음악은 지금 들어봐도 노골적으로 머리에 각인되는 음악을 했던 밴드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음악은 '유영석'이란 걸출한 뮤지션의 원맨밴드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줬기에, 그들 음악 자체가 유영석 스타일에 편입되어 있음이 그 이유다.

 

실제로 1988년 푸른하늘 1기에 유영석(보컬, 신서사이저, 피아노), 이종석(보컬, 신서사이저), 박준섭(베이스), 전영준(기타)의 라인업은 1년만에 유영석, 박준섭, 송경호(드럼)로 변모했음도 사운드의 차이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유영석의 입지와 그만의 소리는 더욱 단단해졌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한 유영석이라는 뮤지션이 실제 자기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이후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특유의 서정성과 순수함이 내제된 진정한 출발점에 이 푸른하늘 2집 <눈물 나는 날에는>이 마치 거대한 탑처럼 뿌리박혀 있다.

 

1989년에 발매된 이 앨범에는 우리가 기억하는 그들의 초창기 최대 히트곡인 '눈물 나는 날에는' 외에도 푸른하늘 1집에서도 수록되었던 '겨울 바다'가 담겨 있으며, 8곡 트랙을 볼 때 전체적인 곡 분위기는 앞에 두 곡의 그것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이 음반에 실린 모든 것을 만들어낸 유영석의 보컬과 신서사이저 연주가 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송경호의 드럼과 박준섭의 베이스는 그의 음악에 주도권을 이양한 채 자연스럽게 항해하는 것으로 이 음반은 어느 정도 정의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청자는 유영석이 가지는 그의 온전한 감수성과 아울러 당시에 대중들이 공감했던 발라드 음악의 원형을 감지하게 된다. 악기의 편성이나 노래의 구성은 20년 전에 한국대중음악 환경을 고려해도 조금 단순하지 않은가 하는 평가도 그 공감과 원형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상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80년도 후반은 동아기획에 있어서도 한국대중음악에 있어서도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기다. 시기로 본다면 김현식 4집 <한국사람>과 봄여름가을겨울 1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비롯하여 발매 당시 많은 이들을 경악시켰던 천재 뮤지션 김현철 1집 <오랜만에>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구분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난 알아요> 이전까지 당시 가요계의 다양한 원형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쏟아졌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신서사이저 소리를 십분 발휘하여 사랑의 감성을 꾸준히 노래하던 이 푸른하늘 역시 그 역사의 순간에서 나름의 역할과 위치를 구축한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음악은 그렇게 순수한 감성만을 말했고, 그러한 발라드의 원형은 한국가요계를 양분했던 90년대 서태지가 일구어낸 댄스음악과의 대립에서 한 축으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발라드를 말하고, 감성을 노래하다

 

또한 이 푸른하늘 2집은 유영석이라는 뮤지션이 후에 자신의 솔로음반과 93년 푸른하늘 해체 이후 김기형과 함께 만든 '화이트'라는 그룹에서 보여주는 그만의 음악성을 증명하는 데 꽤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에 말마따나 화이트 1집 <W.H.I.T.E>는 그야말로 그의 음악성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음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음반에서 얻은 내공으로 누군가를 울음 짓게 하고 또 웃음 짓게 하는 그만의 능력은 그 후에 유영석의 음악을 규정하는 특유의 섬세함과 대중성으로 대변되는데, 사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특징은 그 후에도 그의 음악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성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성은 유영석의 음악 자체를 규정짓고, 바꿀 수 없는 확고한 그만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로 작용한다. 이는 심지어 그가 최근 '슈퍼주니어' 3집 <SORRY, SORRY>에서 작곡해준 'Shining Star'란 곡에서도 감지될 만큼 강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공통성은 때론 그의 음악이 대중들로 하여금 일종의 매너리즘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고, 후에 화이트 해체 이후 99년 그가 정시로와 함께 결성한 '화이트뱅크'라는 그룹의 실패 이유도 결국 그러한 점 때문이 아니었냐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결국 너무 강한 서로의 특이점 때문에 발생된 융합의 실패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영석은 푸른하늘, 화이트, 화이트뱅크를 통해 여러 밴드와 그룹을 전전했지만, 결국 그는 쭉 혼자서 음악을 해온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평가도 바로 여기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그들을 이끌며 연속적인 히트를 이끌어냈던 그의 음악적 능력이며, 변하지 않는 순수한 그의 음악적 태도다. 즉, 그의 음악적 목표는 늘 대중과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되어 있는 태도를 견지했기에 저런 평가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도 동시에 이곳에서 등장하며, 그러한 대립 속에서도 유영석의 음악은 지금도 뮤지션들과 대중들에게 꾸준히 회자되며 불리고 있다.

 

<오빠밴드>의 '유마에'를 위하여

 

 

조금은 다른 얘기이지만, 그런 그에게 MBC 예능 프로그램인 <오빠밴드>가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자신의 위주로 음악 전체를 이끌어가던 예전에 영광 못지않게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그 즐거운 소리의 완성은 그에게 분명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 들린 프로그램 종방소식은 프로그램 내에서의 '유마에' 입장에서도, 혹은 푸른하늘의 리더였던 뮤지션 '유영석'의 입장에서도 확실히 아쉽고도 아쉬운 이야기다.

 

하지만 얼마 전 발표된 그의 헌정음반 역시 스스로 과거와의 청산을 알리고 정리를 하는 일련의 작업이라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의 음악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푸른하늘 의 음악들도, 아쉬움은 접어두고 여전히 예전 그 풋풋한 감성을 얘기하며 그의 음악적 도착점은 한참 멀었다 말해준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아직 멈춰선 게 아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그의 출발점에 이 푸른하늘 2집 <눈물 나는 날에는>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태그:#음반의 재발견, #푸른하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