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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살아온 시간을 통틀어 손을 대지 않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투와 포커이고, 다른 하나는 복권을 사는 일입니다.

명절이나 장례와 같은 동네의 대소사에 사람들이 모이면 오래지않아 화투를 돌리고 아침까지 그 지루한 게임을 반복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함께할 '거리'가 이것뿐인가에 대해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 게임에 동참한 적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는 게임에 대한 룰을 알 리가 없고, 룰을 모르는 저는 자연스럽게 열외 될 수 있었습니다.

복권을 구입하는 일을 혐염(嫌厭)스럽게 여기게 된 것은 그것이 '요행을 바라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땀 흘리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도리일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저는 지금도 화투를 대체할 한국의 어른들을 위한 놀이문화가 개발되어야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복권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가 복권을 사지 않지만 그동안 복권을 사는 사람들에게 보냈던 개탄스러운 시선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탔다가 목격한 한 남자 때문입니다. 빈자리가 드문드문한 지하철에서 어떤 이는 일과에 지쳐 60도쯤으로 기울어진 몸으로 졸거나 아예 세 자리쯤의 좌석을 침대삼은 이도 있었고, 숨을 내뱉을 때마다 짙은 알코올 냄새가 풀풀 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의자 뒤로 90도 꺾은 채 코를 고는 이도 있었습니다. 밤 11시 40분의 대동소이한 지하철의 객실풍경 속에서 양복의 넥타이도 흩트리지 않은 채 꼿꼿이 앉아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릎 위의 슈터케이스에 놓인 손에 쥔 것을 응시하고 있는 그 남자가 독서를 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책이라고 여긴 그것에 제 시선의 초점을 맞추었을 때 그것이 복권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손에 쥔 2장의 복권이 그분이 기댄 중요한 미래의 희망임을 직감했습니다. 매일 바삐 살지만 그분의 월급으로는 빠듯한 현실을 벗어나는 꿈을 이룰 여력이 없었던 거지요. 그에게 복권을 사는 일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출구이며 일주일을 막연한 기대로 보낼 수 있는 비타민 같을 것이었을 겁니다.

생활이 아무리 팍팍해도 적어도 복권을 사는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경우는 없을 거란 생각입니다. 복권을 사는 자체가 미래에 대한 미련을 접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하철의 그 남자를 목격한 후부터 복권을 사는 행위는 '소시민의 삶의 애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2
서울 강서구의 공항동에 있는 지하철 5호선 송정역은 김포공항역 바로 전에 있는 역입니다. 그 일대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과거 점보기의 도입과 항공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김포공항이 계속 확장되면서 집이 수용된 이주민들이 그곳에 새롭게 터를 잡은 이주단지가 되었습니다. 집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용당하고 새롭게 삶터를 일구는 사람들의 땅이었지요.

김포공항을 지척에 둔 강서구의 송정동은 김포공항이 확장되면서 강제수용된 사람들이 이주한 곳이기도 합니다.
 김포공항을 지척에 둔 강서구의 송정동은 김포공항이 확장되면서 강제수용된 사람들이 이주한 곳이기도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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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땅속으로 오신 분들이 지상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김포나 강화로 흩어지는 지하철5호선 송정역
 지하철을 타고 땅속으로 오신 분들이 지상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김포나 강화로 흩어지는 지하철5호선 송정역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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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이었던 곳에 사람이 모이자 시장도 생겨나고 집창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상권이 죽었지만 집을 소유한 것이 바탕이 되어 일부는 예비 부유층이랄 수 있는 중산층이거나 여전히 여가나 문화적 욕구보다는 생계에 치중해야하는 서민들이 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송정역을 경계로 확연히 다른 또 다른 삶의 계층이 있습니다. 이 송정역에는 도로를 따라 시외버스 정류장이 늘어서 있습니다. 터미널이 없을 뿐이지만 시외버스터미널 구실을 하는 곳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김포와 강화 등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흩어지는 곳입니다. 자가용이 없는 이분들은 쾌적한 전원(田園)을 찾아 서울 밖으로 나간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과는 판이한 이유로 서울 밖에 집을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서울에 집을 얻기에는 전세나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서울 밖에서 잠자리를 해결하기위한 방편이지요.

그러므로 이분들은 생활비를 벌기위해 서울에 근로를 바치고 밤을 보내기위해 교외로 나가는 것입니다. 출퇴근을 위해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내는 사람들이지요. 빈민이거나 외국노동자들이 태반입니다. 이분들이 송정역의 슈퍼마켓에서 라면이나 담배를 사거나 국제전화카드나 복권을 삽니다.

ⓒ 이안수

#3
이철재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고 수십 년 평면이나 입체작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누가 봐도 집에 걸어두어서 어울릴만한 그림은 아닙니다. 입체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주병뚜껑을 모아 꼭지를 꼬아 학을 만들고 그것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만들었습니다. 수천 개의 소주병뚜껑의 집합체인 그 작품의 제목은 우아한 '앙드레 가든'이었지만 결코 우아하게 보이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림을 그려도, 조각을 해도 통 팔리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생계를 위해 팔릴만한 말랑말랑한 작품으로 방향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앙드레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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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그는 9월 20일에 막을 내린 헤이리 마음등불에서의 '예, 모여라! 사람을 만나다'전에 'ACT#3'라는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높이가 2m쯤은 되는 대형 사람 전신 동작을 드로잉한 그림 5점입니다. 액자 없이 전시장의 가장 외진 구석에 붙여서 전시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그 그림이 그려진 바탕은 캔버스천이 아니라 복권을 이어붙인 종이입니다. 그는 5천 원권 로또복권 1천여 장을 이어 붙여서 캔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액면가의 합이 5백만 원짜리 캔버스인 셈입니다. 그는 그 복권에 인두로 열을 가해 인물의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었습니다.

이 그림에 그려진 다섯 동작의 사내는 외국인입니다.
"10여 년전 종로를 걷다가 파고다 공원 앞에서 한 외국인이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을 들고 꼼짝 않고 서있는 거예요. 알고 보니 사람들이 몇 푼의 잔돈을 내고 그 사람에게 원하는 동작을 시키면 그 상태로 일정한 시간 동안 동상이 되어 꼼짝하지 않는 겁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제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간혹 그 외국인의 동작을 그립니다. 말하자면 관객은 가학(加虐)의 즐거움을 돈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외국인은 피학(被虐)의 고통을 참아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쉬운 동작을 시키기도 하지만 간혹은 아주 어려운 동작을 시켜서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옛날 학교에서 의자를 들고 머리위로 손을 올려 벌을 받던 기억이 났습니다."

앙드레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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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4
이철재 작가의 부인인 황경자 선생님은 송정역에서 5년째 슈퍼를 합니다. 이 작가는 작품을 하는 것으로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대신, 부인을 돕습니다. 그전에는 더 험한 일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으므로 다섯 평의 슈퍼일을 하는 지금은 한결 형편이 좋아진 셈입니다. 부인과 교대로 가게를 지키면서 복권을 팝니다. 서민과 빈민이 갈리는 이 지역은 특히 복권이 잘 팔립니다.

"부자는 복권을 사지 않습니다. 복권의 그 희귀한 확률에 운명을 걸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강남에서는 복권이 팔리지 않습니다."

당첨여부를 확인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복권을 버리고 갑니다. 이 작가는 바로 이 버려진 복권을 모아 붙여 작품을 하는 것입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 한 장이 하나의 희망이라면 ACT#3는 1천 개의 희망을 모아 그린 그림인 것입니다.

송정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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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현재 민족미술인협회 회원 등 현장미술을 하는 예술인들이 지난 1월에 일어난 용산철거현장화재사건인 용산참사현장에서 돌아가신 분의 가게였던 레아(Rhea )호프집 1층을 갤러리삼아 아직 미결로 남아있는 이 비극의 해결을 촉구하는 연속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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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이철재 작가는 지난 5월 22일 부터 참사현장에서 2주간의 개인전, '인생역전(人生逆展)을 가졌습니다. 그때도  전시장을 복권으로 둘렀습니다. 그 복권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입체작품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이루어지 않은 1만5천여 개의 인생역전(人生逆轉)의 희망으로 '인생역전(人生逆展)'을 엮었습니다.
현장참여작가들의 릴레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호프집 레아.
▲ 레아 현장참여작가들의 릴레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호프집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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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 레아의 1층에서 개인전  '인생역전人生逆展'을 가진 이철재작가
▲ 이철재자가 호프집 레아의 1층에서 개인전 '인생역전人生逆展'을 가진 이철재작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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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주로 패러디 작품을 했습니다. 수천 장의 복권을 다리미로 열을 가해(출력된 복권은 열을 가하면 검게 변합니다) 배경을 만들고 뭉크의 작품을 차용해서 절규의 입체작품을 만들었습니다. 500여 장의 복권을 이어 붙여 미국의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행복한 눈물'을, 또 다른 수백 장의 복권에는 참사 희생자 다섯 분의 초상을, 그리고 그분들의 발 모형을 입체로 만들어 흩어놓았었지요. 또한 '복어가 되려는 북어'의 입체도 일관된 그의 생각과 주장이 담긴 패러디였습니다. 로또의 대박(복어)을 바라는 기원(북어)이 형상화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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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에는 절규의 상반신 아래로 발처럼 드리워진 복권의 너덜거림이 마치 절규에서 흐르는 추깃물로 느껴져서 섬뜩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처럼 한번 보면 뇌리에 선명하게 박히는 강렬함이 있습니다. 복권과 '행복한 눈물'의 결합은 또 어떤가. 칼라복권위에 그려진 그녀의 눈가 눈물은 실현되지 않은 '욕망'이 녹아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이철재작가의 설치
▲ 절규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이철재작가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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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이철재작가의 설치
▲ 절규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이철재작가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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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이철재작가의 설치 그리고 다섯 희생자의 발. 절규하는 얼굴과 시즙屍汁처럼 흘러내리는 복권의 너울거림 그리고 팽개쳐진 희생자의 발이 용산참사의 상황을 절묘하게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 절규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이철재작가의 설치 그리고 다섯 희생자의 발. 절규하는 얼굴과 시즙屍汁처럼 흘러내리는 복권의 너울거림 그리고 팽개쳐진 희생자의 발이 용산참사의 상황을 절묘하게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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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에서 뽑아낸 이미지로, 이철재는 그 이미지를 다시 복권에 드로잉한 이미지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습니다.
▲ 행복한 눈물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에서 뽑아낸 이미지로, 이철재는 그 이미지를 다시 복권에 드로잉한 이미지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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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 모여라! 사람을 만나다'전이 끝난 마음등불에 작품철거를 돕기 위한 봉사를 오신 김종도 작가와 이철재 작가는 전시되었던 저의 작품을 운반해주기 위해 모티프원에 들르셨습니다. 저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두 분의 노고가 고맙기도 했지만 평소 진득하게 얘기를 붙여볼 기회가 쉽지 않았던 이철재 작가에게 얘기를 붙여볼 양으로 와인 한 잔씩을 따르고 저의 서재에 주저앉혔습니다.

낯선 곳에서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얼굴에 희색이 흘렀습니다.
"선생님 작품은 거두었습니까?"
제가 의례적인 말로 이 작가를 향해 서두를 열었습니다.
"팔렸습니다."
함께 하신 김종도 작가께서 대신 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누가 샀나요?"
"천호균 사장님께서 가져가셨습니다."
이번 전시에 설치작품을 하셨던 쌈지의 천호균 사장님께서 작품이 철거되는 현장에 들렸다가 이 작가의 ACT#3를 가져가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따끈따끈한 소식이 반가워 작가 당사자에게는 대놓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무심코 뱉고야말았습니다.
"사모님께서 많이 기뻐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습니다.
"이안수 선생님이 정확하게 읽으신 겁니다. 저의 작품이 드물게 팔리면 제 작품이 누군가에 의해 소장되어서가 아니라 처가 기뻐할 것에 제가 기쁩니다."

모티프원에서의 김종도작가와 이철재작가. 우연한 기회에 이철재작가에게 말 붙여 볼 기회가 왔습니다. 김종도화백은 헤이리인근에 집과 작업실을 두고 있어서 무시로 뵙지만 한강너머에 사는 이철재작가와는 대면이 쉽지않습니다.
▲ 김종도화백과 이철재작가 모티프원에서의 김종도작가와 이철재작가. 우연한 기회에 이철재작가에게 말 붙여 볼 기회가 왔습니다. 김종도화백은 헤이리인근에 집과 작업실을 두고 있어서 무시로 뵙지만 한강너머에 사는 이철재작가와는 대면이 쉽지않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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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아직 창고 같은 작업실도 마련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교대한 늦은 밤,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송정슈퍼에서 모아둔 복권을 이어붙이는 테이핑작업을 하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간 때에 집 거실에서 작업을 하곤 합니다. 출력된 복권을 캔버스 삼은 작업은 주로 다리미나 인두의 열을 이용해 검게 변색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좁은 거실에 다른 사람이 오가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을 고집스럽게 계속할 터이지만, 그도 송정슈퍼에서 복권을 사는 여러 소시민들처럼 그의 그림이 생활이 되는 방편일 수 있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소시민인 것입니다.

묵묵히 이철재작가를 보좌하고 있는 황경자사모님. 이 작가와는 5살의 차이가 나지만 나이보다 더 동안으로 보이는 부인입니다.
▲ 이철재 묵묵히 이철재작가를 보좌하고 있는 황경자사모님. 이 작가와는 5살의 차이가 나지만 나이보다 더 동안으로 보이는 부인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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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이철재,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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