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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요즘 통기타를 배우고 있는데요. 지인 집에 갔다가 클래식 기타가 있는 걸 보고 그 소리가 무척 청아해서 갖고 싶었습니다. 아직 클래식 기타를 구입할 여유나 능력은 안되지만 그냥 물건이나 구경한답시고 한 악기판매점에 갔습니다.

 

전에는 조명과 악기를 같이 판매했는데 그날 가보니 조명은 거의 없더군요. 들어가니 안쪽에서 색소폰 연주소리가 났습니다. 남성사장님이 색소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모습을 보아하니 40대 중반으로 희끗한 긴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모습이었습니다. 음악하시는 분들이 많이 추구하는 이 헤어스타일, 뭔지 바로 떠오를 겁니다.

 

속으로 "아, 원래 음악하시는 분이 악기도 판매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기타 가격 문의하니 우물쭈물...물건 파는 사장님 맞어?

 

클래식 기타가 걸려 있기에 얼마냐고 물어보니 속 시원히 대답 못하십니다. 머뭇머뭇 하시더니 계산기를 막 두들기고는 50만원이라고 하시더군요. 손님이 제품에 대해 물으면 제품의 특장점을 실감나게 늘어놓으며 판매를 유도하는 게 일반적인데 어찌 이 사장님은 그런 장사 소질은 없어 보였습니다. 음악인, 예술인으로써 모습은 다분해 보이는데 말이죠.

 

50만원! 너무 비싸다고 하니까 중고 클래식 기타가 있다고 합니다. 음악 전공하던 어떤 학생이 유학가면서 이곳에 30만원에 중고로 판매한 모양입니다. 창고에 있다고 해 3층으로 따라 올라가니 연습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겁니다. 드럼, 색소폰, 기타 등이 놓여 있었는데 그 중고 클래식 기타는 중고품으로 잘 보관해 놓은 게 아니라 이 사장님이 그동안 종종 그것으로 연습과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기타 딱히 판매 목적도 아니더군요.

 

원래 가격이 80만원인데 30만원 중고로 내 놨다고 하더군요. 기타는 오래 된 것일수록 더 맑은 소리가 난다구요. 길을 들여야하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엔 그저 낡은 중고 클래식기타로밖에 안보이는데 그렇게 비싸다니....

 

창고(음악연습실)에서 내려와 다시 가게로 들어가 기타 가격 문의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덧 2시간이 넘었습니다. 그 사장님, 아니 그 예술가의 인생을 대략 듣게 된 것인데요. 예술가로써의 애로사항 같은 것이죠.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지리산 뱀사골 살다 처음 도시로 나온 날, 차멀미 심해"

 

올해 40대 중반의 그 분은 지리산 뱀사골에서 나고 자랐다고 합니다. 군대갈 나이가 되면서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고 그때 세상에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문명의 혜택 없이 살아오다 처음 도시로 나오던 날, 인간 문명의 1호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를 처음 타면서 며칠동안 심하게 멀미를 했다는군요. 20여년 지난 지금도 종종 멀미가 난답니다.

 

자연 속에서 살다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무서운 것들이 참 많았지요. 가장 무서운 것들은 바로 사람이었다는 것. 지리산 뱀사골의 산짐승은 전혀 무섭지 않은데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속고 속이며 배신하고 폭행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면 너무너무 무서워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지금도 잘 적응 안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죠.

 

지금도 술마시고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 보면 정말 무섭답니다. 취객을 상대로 지갑을 훔치거나 몸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해한다는 그 자체가 지리산속에서 자란 그에게는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안 되는 것이죠. 친한 사람들끼리 사기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산골소녀 영자씨'가 떠오를 법도 합니다. 반인륜적인 범죄소식을 들을때마다 무서운 마음에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그.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직장생활이라고는 제대 이후 6개월 정도 공장에서 일한게 전부이고 20년 넘게 음악(악기)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음악, 미술, 글쟁이 등 예술 계통으로는 사실 먹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늦게 결혼해 이제 다섯 살, 네 살 된 자녀가 있는 그는 요즘 색소폰 연습에 푹 빠져있습니다. 전에는 기타에 푹 빠져 살았는데 요즘엔 이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본인 '베짱이' 비유, 천생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 할 운명

 

제가 볼 때도 그랬습니다. 악기 판매는 거의 뒷전인 것 같았습니다. 불황이다보니 악기도 잘 안나가구요. 시간만 되면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재즈)색소폰으로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을 자꾸 '베짱이'에 비유하더군요.

 

아이들은 점점 커 가는데 돈 버는 일 보다는 취미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죠. 물론 악기, 음악 관련해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리 큰 돈은 안 되는가 봅니다. 장사치 기질도 별로 없고 마음도 약하다보니 제자들이 무슨 악기를 살 때 원가나 공장도 가격 등으로 주는 때도 많다구요. 지리산 깊은 곳에서 나고 자라왔으니 세상에 대한 물욕도 없어 보입니다. 억척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간절한데 실천은 잘 못하고 있는 셈이죠.

 

통기타나 색소폰 들고 식당이든 레스토랑이든 어디든지 나가서 라이브 연주하는 등 직업적이던 아르바이트던 뭐든 해야 하는 시대라도 저는 감히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남 구시가지에서 그런 연주를 할 만한 식당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라이브 공연, 연주 등을 하려면 실내 공간, 분위기 등이 어울러져야 하는데 여건상 그의 고고한(?) 음악을 활용할 여건이 잘 안된다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생계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뱀사골 출신'

 

그런데 이분에게는 참 희한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어떤 책이든(신문, 인터넷 포함해) 두장 이상을 읽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용하면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 집중 안 되고 개미 소리라도 나면 또 집중안되고...오죽하면 운전면허 필기시험 준비하는데 형이 말로 문제를 몇 번 들려주고 시험 보니 문제가 똑같아서 합격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더 희한한건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수백페이지의 분량의 음표, 음계 등이 포함된 빡빡한 음악 이론 책은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잘 읽힌다고 하더군요.

 

이런 점으로 볼 때 그는 천생 음악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도 음악은 그의 운명 같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늘 현실적으로 걸리고 이를 해결하면서 음악과 함께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술쪽이 다 그렇죠 뭐.

 

어쩌다가 돈이 좀 들어오면 비싼 악기 사버리게 되는 어쩌면 마약, 도박처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 예술가의 세계. 그가 이런 이야기도 하더군요. 현실을 직시해 음악을 그만하고 다른 걸 해봐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정신 차리고 보면 새벽부터 가게에 나와 기타든, 색소폰이든 악기를 연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요.

 

'뱀사골 출신'의 그가 직장 생활이나 사업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기란 힘들 것 같습니다. 상하수직 관계의 직장생활이나 사람을 대하는 사업은 '뱀사골 출신' 이라는 자라온 특수한 특성한 힘들고 역시 음악쪽으로 뭔가를 하긴 해야합니다.

 

제가 종종 찾아가서 현실적인 부분을 자꾸 강조해야겠습니다. 그냥 '베짱이'가 아닌 '현실 베짱이'가 되도록 말이지요.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같이 올렸습니다. 


태그:#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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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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