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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빛깔이 은은하게 도는 예복을 입은 참례자들이 대성전 앞마당에 도열해 서있습니다.
 옥색빛깔이 은은하게 도는 예복을 입은 참례자들이 대성전 앞마당에 도열해 서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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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탄생 2560주년을 맞아 대전 회덕향교에서는 지난 19일 오전 11시부터 추모 석전대제가 봉행되고 있었습니다. 30여분 전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건만 헛기침을 하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입구부터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 누구 하나도 성큼성큼 오르지 않고 계단 하나를 올라설 때마다 발을 보았다 다시 오르는 조용한 움직임입니다. 성현들 위패가 모셔진 대성전 앞마당에는 옥색빛깔이 은은하게 도는 예복을 입은 선비들이 도열해 있고, 대성전 안에서는 남녀집사들이 제물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회자(당상집례)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라 집사들이 차려진 제물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사회자(당상집례)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라 집사들이 차려진 제물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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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뿐만이 아니라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조상, 안향이나 정몽주 같은 성현들의 위패도 함께 있었습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뿐만이 아니라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조상, 안향이나 정몽주 같은 성현들의 위패도 함께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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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위시한 성현들께 제사형식으로 올리는 석전대제는 식순은 물론 참례자들의 소소한 행동거지 하나까지도 온전히 기록과 안내에 따르고 있으니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선비의 몸가짐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석전대제는 기록에 따르는 절제된 '예'

대성전(大成殿) 마루 동쪽에 서있는 당상집례(堂上執禮)라고 하는 분이 한문으로 된 홀기(기록문)를 읽어 주면 모든 절차와 행동이 그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물을 올리는 순서나 위치는 물론이고, 제물 중에 빠진 것이나 잘못 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까지도 꼼꼼하게 수록하고 있는 홀기를 사회자라고 할 수 있는 당상집례가 차례대로 읽으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나 참례자들은 그에 따르는 형식이었습니다.

대성전 앞마당 동쪽에 도열해 있는 헌관 중 초헌관은 여느 헌관들과는 달리 목이 긴 신발을 신은 것으로 봐 복장 하나하나에도 구분이 있나 봅니다.
 대성전 앞마당 동쪽에 도열해 있는 헌관 중 초헌관은 여느 헌관들과는 달리 목이 긴 신발을 신은 것으로 봐 복장 하나하나에도 구분이 있나 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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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라 절제된 예로 올리니 전국 방방곡곡 향교에서 봉행되는 석전제가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도 커다란 변질 없이 온전히 전승될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제물이 차려지고 참가자들이 도열을 하니 당상집례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라 알자(謁者, 안내자)가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과 분헌관(分獻官)을 정해진 위치로 안내하였습니다. 

참례자들을 대표하여 술잔을 올리게 되는 헌관(獻官)들과 참례자(參禮者) 모두가 네 번의 절을 올리고 나니 안내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대성전 우측에 마련된 대야에서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았습니다.

사회자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라 알자의 안내를 받은 헌관이 대성전 동쪽에 마련된 대야 물에서 손을 씻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라 알자의 안내를 받은 헌관이 대성전 동쪽에 마련된 대야 물에서 손을 씻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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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으로 몸을 정갈히 한 초헌관은 알자의 안내로 대성전 안에 모셔진 공자의 위패 앞으로 나가 분향을 하고 폐백을 드렸습니다.

계속하여 당상집례가 읽어 주는 홀기에 따라  알자의 안내로 초헌관은 공자의 위패(공부자대성위)에 올릴 술상 앞으로 가 꿇어앉아서 술잔을 올립니다. 이 과정에서 이어지는 하나하나의 행동 모두가 당상집례가 끊임없이 읽어 주는 홀기에 따르고 있으니 행동은 절제되고 마음가짐은 숙연해집니다.

축관이 축문(祝文)을 읽고,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과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관에 술잔을 올리고, 동서쪽으로 모셔진 제성현들의 위전에 분헌관들이 술잔을 올립니다.

축관이 구성지게 축문을 읽고 있습니다.
 축관이 구성지게 축문을 읽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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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헌관들이 술잔을 올리는 순서가 끝나니 알자의 인도로 초헌관이 음복하는 곳에서 석전에 올렸던 술과 포(脯)를 받아 음복을 하고, 헌관과 참례자 모두가 사배(四拜)를 올립니다.

대성전 서쪽에 마련 된 장소에서 축관이 읽었던 축문을 태우고, 참례자들 모두는 음식을 나누어 먹기 위해 차려진 음식상으로 향했습니다.

제사 음식과는 전혀 다른 석전 제물

처음으로 보는 석전제라 순서는 물론 분위기도 그랬지만 제상에 올려 진 제물들이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 음식과는 너무나 달라 많이 생경스러웠습니다.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음식들 거의가 조리된 음식이지만 석전제에 차려지는 음식들은 대부분이 날 것이었습니다. 고기는 날고기였고, 곡식이나 과실들도 생 것이었습니다.

공자 위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린 초헌관이 함께 모셔진 다른 성현 위에 술잔을 올리고 있습니다.
 공자 위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린 초헌관이 함께 모셔진 다른 성현 위에 술잔을 올리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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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서는 빠지지 않는 숟가락과 젓가락도 석전제 차림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제사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소금이 석전제상에는 바구니 채 올려져 있었습니다.

제사에서 익힌 음식을 올리고, 숟가락 젓가락을 올리는 것은 조상들을 살아생전의 예로 모시기 때문이지만, 석전제에 모셔지는 성현들은 신의 반열로 추모하니 숟가락이나 젓가락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생것에서 기를 흠향 할 수 있기에 날 것으로 올린다고 합니다.

석전제에 차려지는 음식들은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에 차려지는 음식과는 달리 대부분이 날것이었습니다.
 석전제에 차려지는 음식들은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에 차려지는 음식과는 달리 대부분이 날것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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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과 성현들을 가름하는 이러한 설명과는 달리 예전에는 제를 지낸 후 몫을 나누어 참례자들에게 배분하였는데, 익힌 음식은 오래지 않아 상하게 되니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 더더구나 고기 맛을 보기 어려운 참례자들을 배려하여 날 것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마음은 양반이 되고, 몸가짐은 선비가 돼

준비된 마음 없이 찾아갔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선비라도 된 듯 몸매 가짐을 조심하게 되니, 깊고 깊은 공자의 가르침은 차치하더라도 한번쯤은 경험하거나 참례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가을국향을 맡으며 찾아간 향교에서 시대의 선비들이 예로서 피워 올리는 향내에 젖어들다 보니 '에헴~' 거리며 쓰다듬을 긴 수염도 없고, 가을바람에 나풀거리며 날릴 도포자락도 없었지만 마음은 양반이 되고, 몸가짐은 선비가 되는 온고이지신의 시간이었습니다.


태그:#회덕향교, #석전대제, #향교, #독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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