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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제기한 언론법 권한쟁의 청구재판의 두 번째 공개변론이 22일 열렸다. 이번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 청구사건의 올바른 판결을 위해 헌법학자 3인의 릴레이기고를 싣는다. 두 번째는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기고다. <편집자말>

 

여야가 오랜 시간을 두고 다투어오던 미디어법 문제가 의회 내에서 정면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더니,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문제들이 지금도 수많은 논란과 쟁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디어법이라는 이름 아래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법률들의 개정 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신문법 개정과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결정이 내려진 뒤로 신문법 재개정 문제와 방송법 개정 문제는 여야간 중요한 쟁점사항의 하나였다.

 

이처럼 미디어법 문제가 중요 쟁점이 된 것은 미디어 발전방향에 대한 여야의 시각차가 큰 탓도 있지만, 언론기업들이 이번 법 개정으로 영향받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는 국민들 사이의 의견대립도 첨예하기 때문에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없지 않다.

 

특히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 문제에서 미디어융합이라는 전 세계적 추세와 신문기업의 활로를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주장과 언론독과점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 사이의 팽팽한 대립이다. 개정에 대한 찬반 또한 매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미디어법 개정 내용에 대한 찬반과 개정절차 문제의 구분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미디어법 개정의 내용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개정절차의 위법성 내지 위헌성의 문제이다. 설령 미디어법의 내용에 대한 반대의견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절차상의 문제가 심각할 경우에는 그 절차위반을 이유로 한 위헌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이 명백히 위헌적일 경우에는 이를 근거로 한 위헌판단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 내용상의 위헌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디어법의 국회통과 과정에서 빚어진 절차상의 혼란은 미디어관련 법률들의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 의결이 정상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논의는 미디어 관련 법률들의 개정절차상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개정법률의 내용에 관한 문제는 별도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뒤섞어 놓을 경우에는 자칫 논의의 초점이 흐려지고, 이는 불합리한 결론으로 이어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사부재의 원칙과 재투표 논란

 

현재 미디어법 개정절차와 관련해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재투표 논란이다. 국회의 의결과정에서 의사를 진행하던 부의장이 투표종료선언을 한 이후에 다시금 투표를 하도록 한 것은 재투표이며, 이는 국회의 의사진행과 관련하여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일사부재의 원칙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사부재의는 국회에서 일단 부결된 의안을 같은 회기 중에 다시 제출하여 심의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같은 의안을 동일 회기 중에 여러 차례 반복하여 제출할 경우에는 이미 확정된 국회의 결정을 번복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가 발생될 수 있으며, 원활한 의사진행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일사부재의는 의사진행의 능률성을 높이고, 동일의안을 반복적으로 제출함으로써 소수파가 국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회법 제92조는 이러한 맥락에서 "부결된 안건을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일사부재의 원칙을 도입하고 있다.

 

문제는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를 경우 국회에 제출된 안건이 부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제출된 안건이 부결되지 않은 경우에는 일사부재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은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는 미디어법 개정안이 부결된 것이 아니라 의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족수 미달로 의결 자체를 못한 경우라면 의결을 해서 부결된 것보다 더 강력한 반대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의결정족수라는 개념과 잘 맞지 않는다. 의결정족수란 말 그대로 의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참여자의 숫자이다. 즉, 의결정족수가 미달된 경우에는 의결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의결정족수 미달을 의결에 참여하여 기권한 것과는 달리 취급할 수밖에 없다.

 

 

대리투표·부정투표 문제와 그 해결 방법

 

반면에 대리투표, 부정투표의 문제는 재투표와 달리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국회의 의결이 정상적으로 성립되었다고 보기 위해서는 의결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해서 그 다수의 의사가 결집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예컨대 비서관이나 보좌관)이 투표를 대신 하거나 자신이 투표권을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의원들의 좌석에서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정상적인 의결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검토를 요하는 쟁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대리투표, 부정투표에 대한 사실관계의 확인이고, 둘째는 대리투표 또는 부정투표를 함으로써 의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당사자가 의결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며, 셋째는 과연 이러한 대리투표나 부정투표가 의결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의 문제이다.

 

첫째 문제는 앞으로의 헌법재판소 심리과정을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다행히 투표현장에 대한 방송자료 등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료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모든 사실을 완전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대리투표 내지 부정투표가 있었고, 그것이 의결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야당이 대리투표, 부정투표를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를 근거로 의결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헌법학자들도 있다. 설령 대리투표나 부정투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이를 근거로 의결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인정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안의 개정이라는 공적 절차의 유·무효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보다는 국민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가운데 절차의 객관성과 명확성,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대리투표, 부정투표에도 불구하고 의결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하기는 곤란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문제는 둘째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인데, 문제가 있는 의결을 무효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유효하지만 다툴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하지만 투표 자체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인정된다면 의결 자체의 무효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대리투표, 부정투표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 행위자에 대해서 일정한 법적 책임(예컨대 헌법 제64조 제2항과 국회법 제155조 이하에 따른 징계)을 묻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미디어법 문제의 헌법적 평가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기대

 

결국 국회가 정치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가 또다시 헌법재판소를 찾게 되었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미디어법의 장래가 큰 변화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정치는 정치의 역할을 해야 하고, 사법은 사법의 역할을 해야 한다. 아무리 헌법재판소가 정치권력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이라고 하지만 과도한 사법의 정치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미 공은 정치권에서 헌법재판소로 넘겨졌고, 이제 모든 국민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미디어법 개정내용에 대한 찬반입장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기대하는 바가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의 내용보다는 개정절차에 초점을 맞추어 판단해야 할 것이며, 설령 위헌판단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용상의 위헌을 확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차후에 국회 내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하여 같은 내용의 법개정을 시도할 가능성까지 봉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도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활동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러나 그때 그때의 다수 의사에 영향받기보다는 사법의 본질에 따라 공정한 판단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역사 속에서 정의로운 판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태그:#언론법 권한쟁의, #헌법재판소, #미디어법,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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