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수시로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고 또한 그들의 죽음에 절로 눈물 한 방울이 나오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소식에서 민주화의 몰락을 지켜봐야 하는 슬픔의 눈물이 절로 나왔다면 최근 잇따라 일어난 두 배우의 죽음은 병 앞에서 강해지려 했던, 그러나 끝내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야했던 그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물이 절로 나왔다.

배우 장진영의 사망 소식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바다 건너 미국에서 한 배우의 부음이 전해졌다. 패트릭 스웨이지. 바로 <더티댄싱>과 <사랑과 영혼>을 통해 1980~90년대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배우다.

두 사람은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장진영은 위암, 패트릭 스웨이지는 췌장암과 싸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장진영은 결혼과 함께 화보 촬영을 계획했으며 패트릭 스웨이지는 TV시리즈 <더 비스트>에 출연하며 열정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열정으로 버티기엔 병마의 힘은 너무나 셌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두 사람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길 수밖에 없게 됐다.

당당하고 예쁘장했던 배우 장진영

장진영은 당찼다. 예쁘장한 얼굴 속에서도 당참이 엿보이는 배우로 기억됐다. 장진영이 암을 훌훌 털고 일어설 것이라 확신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장진영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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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나온 <소름>은 예쁘장한 모델 출신 배우로만 남을 줄 알았던 장진영을 진정한 '여우'로 거듭나게 한 작품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와 항상 멍이 들어 있는, 멍하니 담배를 피는 모습의 장진영은 분명 그간 보여줬던 예쁘장한 모습과 달랐다. 그해 청룡영화제는 누구나 예상했던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가 아닌 장진영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그 뒤로 <오버 더 레인보우> <국화꽃향기> <싱글즈> <청연>을 거치며 장진영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고 그것은 관객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예쁘다'하고 끝나는 여인이 아닌, 친해지면서 점점 마음까지도 '예쁘다'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 팬들은 그 모습을 장진영에게 본 것이다.

영화로는 유작이 된 2006년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장진영은 어떻게 보면 '악에 받친' 모습이었다. 캐릭터가 원래 억센 성격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전과 달리 악에 받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영화로 그해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던 날, 장진영은 울었다. 영화배우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고 그 때문에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을 힘들게 했다는 소감을 말하며 울었다. 그때 알았다. 그가 왜 그리 악에 받쳐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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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촬영하고 연기했던 영화 <청연>이 친일 논란에 휘말리면서 결국 참패한 것이 가슴 아팠을 것이다. '친일 논란' 속에 제대로 자신의 연기를 평가받지 못한 안타까움이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찍을 당시에 표출됐던 것이다.

연기에 욕심이 많았던 장진영, 하지만 실제로는 입양아들의 엄마 노릇을 하고 기부를 할 정도로 욕심이 없었던 장진영. 누구보다도 공감 가고 친근한 캐릭터를 맡았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이 단순히 한 배우의 죽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부드러우면서도 터프한 매력, 패트릭 스웨이지

장진영이 '친근함'을 줬다면 패트릭 스웨이지는 '환상'을 심어줬던 배우였다. 1980년대 말 <더티댄싱>에서 보여준 그의 근육질 몸매와 잘생긴 얼굴은 영화를 본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패트릭 스웨이지의 인기가 절정에 오른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랑과 영혼>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영혼이 되어서도 여인의 곁을 떠나지 않는 패트릭 스웨이지의 지고지순한 모습에 관객들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데미 무어의 큰 눈에 흐르던 눈물과 함께 패트릭 스웨이지의 미소는 한동안 뇌리에 깊숙히 박혀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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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폭풍속으로> <로드 하우스> 등에서 터프 가이로 변신하고 <시티 오브 조이>도 소개됐지만 팬들이 기억하는 것은 <사랑과 영혼>의 캐릭터 그 자체였다. 1996년 <투웡푸>에서 여장 남자로 변신해 놀라움을 준 이후로 패트릭 스웨이지의 신작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뜸하게 들렸다.

그 후 들려온 소식은 신작이 아니라 놀랍게도 암 발병 소식이었다. 췌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그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영화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병마는 패트릭 스웨이지를 진짜 '영혼'으로 만들어버렸다.

중년으로 넘어가고 병으로 지쳐버린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여전히 병과 싸우는 터프가이의 모습을 보여줬던 패트릭 스웨이지. 그의 이야기도 이제 과거형이 됐다.

암과 당당히 싸웠던 마지막 모습들

불과 보름 만에 우리와 함께했던 두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국적도 다르고 활동했던 시기도 다르기에 섣불리 두 사람을 같이 놓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암과 싸우면서도 삶의 열정을 잃지 않은 모습이 두 배우에게 보였기에 이들을 함께 놓은 것이다.

당당했던 여자 장진영, 부드러우면서도 터프한 매력이 있었던 패트릭 스웨이지. 씩씩하게 일어설 줄 알았던 두 배우는 이렇게 우리와 작별했다. 그래도 팬들은 여전히 두 배우를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배우로 남은 두 배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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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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