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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이 남아있다.
▲ 입암산성 남문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이 남아있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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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득 먹구름이 뒤덮더니 이내 사나운 소나기가 짙푸른 들판을 휩쓴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한참 요동치다가 성난 하늘도 서서히 누그러들기 시작하면서 잔뜩 낀 구름을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시킨다. 그러면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 하늘 위에는 햇님이 방끗 웃는다.
이때 성난 하늘에 숨죽였던 소년들도 언제 그랬나는 듯이 고개를 들고 남쪽 하늘을 바라본다. 바로 드넓은 들판 한 가운대에 하늘과 땅을 잇는 일곱빛깔 다리가  꿈인 양 떠오른다. 소년들은 탄성을 지른다.

"야, 무지개 떴다!"

그리고 소년들은 무지개가 있는 방향을 향에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다가 지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쉰다. 거친 숨소리로 한 아이가 묻는다.

"저기 무지개 너머에 있는 산이 무슨 산인지 아냐? 저게 입암산이야."

그러자 어떤 소년은 방장산이라고도 하고, 어떤 소년은 내장산이라고도 하고 어떤 소년은 노령산맥이라고도 한다.
무지개를 향해 무작정 달리던 소년들은 끝내 무지개가 있는 곳에 당도하지 못한 채 날이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날 밤 꿈 속에서 낮에 만났던 무지개를 다시 만난다.
호남평야에서 태어나고 10대 중반까지 자란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꿈을 꾸어왔다.
그 시절 나는 언젠가는 무지개 너머 저 곳에 가 보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나는 도회지로 나오고 성인이 되면서 어린 시절의 꿈도 퇴색되고, 순수했던 영혼도 혼탁해져 이런 꿈을 잊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고향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임을 어린시절  가 보고 싶어하던 무지개너머  그 쪽에서 한다는 전갈이 왔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설레였다.  50대 중반을 넘어서야 무지개 너머 그 곳으로 간다는 마음에일까.

드디어 지난 8월 9일 우리는 전남 장성군 북하면소재 남창계곡 안에 있는 전남대학교 수련원에 모였다.
남창계곡은 울창한 숲, 맑은 물에 산천어가 노닐고 새소리, 물소리가 선계에 들어선 것처럼 아름다운 계곡이다.  계곡 물이 깊지 않아서 물놀이에 위험하지도 않다.

남창계곡에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갔다
▲ 남창계곡 남창계곡에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갔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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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난 뒤 입암산성에 오르기 시작했다.
입암산성에 오르는 길은 전남대학교 수련원 옆 은선계곡을 따라 전남대학교가 조성한 삼나무 단지 숲체험길을 지나서 간다.

입암산성 오르는 길
 입암산성 오르는 길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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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성에 대해 안내 표지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이 성은 노령산맥의 높이 654m가 되는 천연의 요새지에 돌로 쌓은 포곡식(산 능선을 따라 쌓는 방식)산성으로 본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 조선시대에 수축 혹은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은 지형은 서쪽의 갓바위에서는 노령을 남.북으로 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있고 사방이 높고 중간은 넓어 외부에서 성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요새다.
역사적으로 고려 말 몽골에 항쟁할 때에 송군비장군이 이곳에서 몽골병을 물리친 것은 널리 알려져 있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농성한 윤진장군 등이 장렬히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
▲ 남문 성벽 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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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남문 성터가 나온다. 성곽은 일부나마 아직도 정교하게 남아 있다.

입암산성과 전봉준장군
 입암산성과 전봉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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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위에 오르니 몇 가지 안내판이 있다. 그 중 "입암산성과 전봉준장군"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띤다.
사단법인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입암 주민 일동의 명의로 된 이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곳 입암산성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공주 우금티에서 패한 녹두장군 전봉준과 그 일행이 후일을 기하기 위해 1894년 11월 29일 잠시 머문 곳이다. 당시의 입암산성은 별장 이춘선이 지키고 있었는데 전봉준 일행을 체포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백양사 청류암에 다시 하룻밤을 지낸 전봉준 일행에게 기별을 보내 관군의 추격을 피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불과 100여 년 전 혁명의 꿈이 오늘 새삼 가슴에 사무치는 까닭이 무엇인가? 후일을 기하던 녹두장군의 절망과 희망이 아려온다.

남문을 지나 0.8km 오르니 오솔길이 나오고 그 오솔길 양 옆으로 널직한 평지가 나온다.  산성 안쪽에 마을이 있었음직한 지형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표지판에 이곳에 선조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 내용이 있다. 약 200여 년 전에 이곳에 '성내리'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길가에는 어렸을 때 집 마당에서 보았던 '학독'도 있다. 이 '학독'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짐작할 수 있겠다.

선조들이 살던 마을터
▲ 성내마을터 선조들이 살던 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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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살았던 집터임을 알수있는 학독
▲ 학독 선조들이 살았던 집터임을 알수있는 학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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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조금 지나면 윤진 장군을 추모하는 비가 있다. 윤진 장군은 임진왜란때 이 성을 지키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장군이라고 전한다.

윤진장군 비석
 윤진장군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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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당도해 갓바위 방향으로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북문에서 갓바위 가는 길
 북문에서 갓바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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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에서 갓바위를 향해 0.8km 가까이 오르다 보니 산 정상이 보인다. 산 정상에 놓인 바위가 갓바위다.

갓바위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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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니 산 아래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듬성듬성 산들이 솟았다. 그 사이를 내(川)가 휘돌고 쭉쭉 뻗은 도로들이 살아 꿈틀거린다.  하늘과 맞닿은 저 너머는 바다다. 곰소항도 보인다.

멀리 솟은 봉우리가 두승산이다.
▲ 호남평야 멀리 솟은 봉우리가 두승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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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시내를 지나 멀리 솟은 두승산이 보인다.  저 두승산 아래 황토현에서 동학농민전쟁 때 동학농민군이 진을 치고 관군을 물리쳐 크게 이긴 곳이다. 그 아래 어디쯤인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보일 듯도 하다.
눈을 돌려보면 내장산 서래봉이 봉긋이 솟았다.
방향을 바꿔 바라보니 산이 겹겹이 둘러쳐진 노령산맥이 병풍처럼 쳐져 있다.

갓바위에서 바라본 내장산
 갓바위에서 바라본 내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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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히 쌓인 노령산맥
 첩첩히 쌓인 노령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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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 내려 보니 입암저수지가 구름 사이로 내리는 빛에 반짝이고 있다.

입암저수지
 입암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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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위에 앉아 호남평야를 굽어본다. 나를 유혹했던 어릴적 그 무지개는 이 곳에서 만들어졌을까? 아니면 더 먼 곳 그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아니면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고 역사는 무엇이며, 혁명은 또 무엇인가?
내가 쫓아야 할 무지개는 어디에 있으며, 인생은 무엇인가?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을 향해 가고 있지만 어리석은 나는 아직도 아는 것이 없어 숱한 질문만을 던지며 산성 아래로 내려왔다.

갓바위 위에 올라
 갓바위 위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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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입암산성, #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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