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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22일 전례없는 재표결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으키며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야당의원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22일 전례없는 재표결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으키며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야당의원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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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이 타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왜 이러나?"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 전체를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렇습니다. 통치 행위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그 어려움을 피해 가서는 안 됩니다. 싫든 좋든 전체 국민을 끌어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국가 발전입니다.

국가 발전은 한 순간에 100m 점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국민이 1cm 아니 1mm 함께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발전을 무시하고 100m 점프만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뛰어오르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도태시키고 말입니다.

소위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도 그렇습니다. 국민 60~70%가 반대하는 법을 저렇게 무리하게 통과시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범인(凡人)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언론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보수 언론 조중동(朝中東)이 방송국 운영에 참여할 수 있고, 삼성 현대 LG 등 재벌들이 방송국을 장악해서 자본의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 때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는 제 소리를 낼 수 없게 됩니다.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다수이지만 소수의 자본 권력 앞에 맥을 추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고 합니다.

사실이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는 조중동 등 보수 성향의 신문을 읽을 때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신문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적지 않을 테고 또 그들도 개성이 두드러진 하나의 인격체들일 텐데, 어떻게 신문에 실리는 기사의 논조가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요! 글의 통일성으로 따져볼 때 북한의 노동신문보다 더 완벽합니다. 저들이 방송국을 장악하고 내보낼 프로를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오늘날을 매스컴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언론을 '제4권부'라 일컫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것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사회라는 말이겠지요. 방송을 장악하면 국민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판 의식을 없앨 수도 있고 또 이목을 다른 데로 돌려 사회의 흐름에 무관심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오락 코미디 프로를 쉼 없이 내보내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법 날치기,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앞장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저지하려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을 한나라당 이은재 정옥임 의원등이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저지하려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을 한나라당 이은재 정옥임 의원등이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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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있었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사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입니다. 40여 년 전, 군사독재 시절 유정회 회원들을 앞세운 법의 날치기 통과를 연상케 합니다. 아니 군사문화에 젖은 거수기 정객들보다 더 하다 싶은 광경이었습니다. 인의 장막을 만들어 반대하는 의원들의 접근을 막은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들만이 법률안을 낭독하고 방망이를 쳐대는 것이 과연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입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토론의 장에서 제 값을 발휘하게 됩니다. 소수의 의견도 최대한 존중해가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런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을 걸어잠그고 희희낙락하며 그들만의 축제를 즐겼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날치기 통과가 자기들의 당에 자충수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날치기 통과 뒤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머지 않아 자기들에게 통한(痛恨)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입니다.

의장석을 에워싸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사람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목에 힘줄을 세우고 부릅뜬 눈으로 야당 멱살을 잡고 있는 그에게서 인생의 허망함을 발견한 것은 내가 못난 탓일까요? 아니 정녕 그들은 저런 의회 민주주의 파괴에 행동대원으로 활약(?)하기 위해서 그 엄혹하던 시절 젊음을 민주화 운동의 제단에 받쳤던 걸까요?

의사봉을 두드려대는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악역을 즐겁게 감당했습니다. 그에게서 국민을 위하는 정치철학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는 과거 방송사 앵커로 있을 때나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나 아니 국회 2인자인 국회부의장 자리에 앉아서도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앵무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처신이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지만 좇는 해바라기 성향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비시 괴뢰 정부에 협조하며 기회주의적이고도 이율배반적인 보도 태도를 보인 프랑스 기자들이 잘못에 대한 정당한 징치(懲治)를 받았듯이, 우리의 언론계 출신 정치인들도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를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역시 박근혜? 아버지 오류 되밟아서야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정현 의원과 얘기를 나누다 나경원 의원의 인사를 받고 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정현 의원과 얘기를 나누다 나경원 의원의 인사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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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의 태도도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는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되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야당과의 합의 통과를 주장했습니다. 독재자의 딸답지 않게 객관적 시각을 가진 정치인으로 국민에게 비쳤습니다. '역시 박근혜'란 말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그녀도 돌변했습니다. 아무런 정황 설명 없이 미디어 악법에 찬성 표를 던지려 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60여 명의 우중(愚衆)  정치인들도 우르르 그녀를 따라 표를 던지고 좋아했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딸이라고 함께 나무라는 것은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잘못을 딸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까지 용납되는 풍토는 더욱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아버지의 오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자기 당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당의 요구도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있을 터이니 대화를 통해서 합의 통과해야 한다고 했으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찬성에 표를 던진 것은 마치 쥐가 새끼들을 몰고 강으로 뛰어드는 것 같아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재벌들의 금력(金力),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權力) 이들이 힘을 합해 만들어내려고 하는 언력(言力)이 아무리 강고하다고 해도 진정한 국민들의 힘 앞에는 맥을 출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아니 반드시 국민의 힘으로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절차에서 그리고 결과에서 제 값을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어기고 또 대리 투표까지 하면서 불법으로 통과시킨 이 법이 국민 앞에 당당히 역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 정말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깨닫기를 강하게 권면합니다. 국민을 위해서 아니 정부 여당을 위해서도, 퇴임 후 이명박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 더욱 강권합니다.


태그:#미디어법, #불법 통과, #조중동, #언론인 출신 정치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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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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