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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신문법·방송법·IPTV법 등 '미디어 3법'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 본회의는 오후 3시 35분께 열렸다. 김형오 국회의장을 대신해 의사봉을 잡은 이윤성 부의장이 개의를 선언한 뒤 야당 의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직권상정해 표결을 강행했다.

 

이윤성 부의장은 "장내가 소란하므로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며 "심사보고나 제안설명은 회의록으로 대체하고 질의와 토의도 실시하지 않겠다"며 '날치기 처리'의 서막을 열었다.

 

문제는 미디어 3법 중 가장 핵심법안인 방송법을 표결처리할 때 생겼다. 이 부의장이 방송법 개정안 표결을 선언한 지 5~6분이 지나서 "투표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45명만이 투표에 참석해 의결정족수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그러자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부결"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당시 찬성은 142명이었고, 기권은 3명이었다.

 

하지만 이 부의장은 "재석의원이 부족해 표결이 불성립되었기 때문에 다시 투표해 달라"며 재투표를 실시했다. 결국 150명의 찬성과 3명의 기권으로 방송법 개정안은 가결됐다.  

 

[2001년] 한나라당 의원 "정족수 안되면 내일 모레 하시죠?"

 

대리투표 의혹이 '사실확인의 문제'라면, 재투표 논란은 '해석의 문제'다.

 

국회법 중 '재투표'와 관련된 조항은 제114조 3항이 유일하다. "투표의 수가 명패의 수보다 많을 때에는 재투표를 한다, 다만, 투표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전자투표를 하다가 일어난 경우여서 이 조항을 적용시킬 수는 없다. 결국 과거의 의결정족수 미달사태 사례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2000년 이후 네 차례의 '의결정족수 미달 사태'가 일어났다. 2001년 6월 28일과 2003년 4월 30일, 6월 30일, 2007년 6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가 모자라 본회의 처리가 불발된 것이다.

 

먼저 2001년 6월 28일 본회의. 약사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데 의결정족수가 부족했다. 재석의원이 137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119명밖에 안된 것이다.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은 표결을 선포했지만 의결정족수 미달을 이유로 표결은 실시하지 않았다.

 

당시 이만섭 의장은 "지금 137명이라야 되는데 119명밖에 안된다"라며 "(이상수 총무를 부르며) 오늘 못하면 내일 모레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이에 이상수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오늘 못하면 할 수 없이 다음에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응답했다. 백승홍 한나라당 의원도 "남은 법안 먼저 처리하고 뒤에 하지요"라고 거들었다.   

 

결국 약사법 개정안 처리는 다음 본회의일인 2001년 6월 30일로 미뤄졌다.

 

다음은 2003년 4월 30일 본회의. 당시 최대 이슈였던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전원위원회가 열린 것을 계기로 '전원위원회 운영규칙안'의 필요성이 제기돼 본회의에 안건으로 올라왔다.

 

김태식 부의장이 '전원위원회 운영규칙안'을 표결에 붙였으나 의결정족수 137명에 27명이나 미달해 '표결불성립'이 선언됐다. 의원들이 의석에 앉아 있으면서도 재석버튼을 누르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전자투표의 경우 재석버튼을 누른 경우에만 출석의원으로 계산돼 찬성과 반대, 기권 등 의사표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식 부의장은 "이 안건에 대해서는 표결할 수 있는 정족수가 안되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겠다는 설명을 드리면서 표결이 성립되지 않은 것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2003년] 의결정족수 미달하자 박관용 의장 '산회' 선포

 

또 다른 사례는 2003년 6월 30일 본회의. 당시 본회의장에는 재적 과반수가 넘는 의원들이 있었지만 일부 의원들이 퇴장하는 바람에 의결정족수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은 "지금 재석하신 분 중 기권하실 분이 있으면 재석버튼을 눌러주시고 기권하기 바란다"며 "앉아 계신 분 중에서 재석버튼을 안 누른 분이 있어 지금 정족수가 안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의장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이 재석버튼을 누르지 않고 퇴장하자 "지금 현재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결정족수에 미달됐다"며 "따라서 이 표결은 불성립 표결이기 때문에 다음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박 의장은 '표결 불성립'을 선언한 직후 산회를 선포했다. 결국 관련안건 처리는 다음날(7월 1일) 오후 2시에 열릴 국회 본회의로 넘겨졌다. 

 

2007년 6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의결정족수 미달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처리할 안건은 '한미FTA 체결 특별대책위 활동기한 연장의 건'. 이용희 부의장이 투표 실시를 선언했지만 의결정족수가 모자랐다.

 

이용희 부의장은 "현재 재석의원수가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아직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이 계시면 회의장에 들어와서 투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계속 의결정족수 미달사태가 일어나자 이 부의장은 "더 기다려도 의결정족수가 충족되기는 곤란할 것 같다"며 "따라서 이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앞선 네 건의 사례에서 보듯 의결정족수가 미달할 경우 '표결 불성립'을 선언하더라도 다음 회의로 안건을 넘기거나 산회를 선포해왔다. 이윤성 부의장이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처럼 표결 불성립을 선언한 직후 바로 재투표를 실시하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국회법해설집> "안건 표결할 때 재적의원수 확인해야"

 

2008년도 <국회법해설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만약 의장이 표결 선포에 따라 표결을 실시하였으나 재석의원수가 의결정족수에 달하지 못한 경우에는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

 

한나라당은 이를 근거로 이윤성 부의장이 '표결 불성립'을 선언한 이후 재투표에 들어간 것은 적법한 절차였다고 주장한다.

 

조윤선 대변인은 23일 "일사부재의원칙은 일단 표결이 성립돼서 다시 한번 같은 사안을 표결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이번 사건은 재석의원이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표결 불성립'을 선언하고 다시 표결해 달라고 한 것"이라며 "이는 적법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적법성의 근거로 든 <국회법해설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의장은 안건을 표결할 때에 먼저 재석의원수를 확인하여야 하며, 만약 재석의원이 의결정족수에 미달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표결을 일시 보류하고 다른 안건을 심의

(2)회의의 중지를 선포하고 정족수에 달하는 것을 기다려서 속개하여 표결

(3)의결정족수가 충족될 가능성이 없을 때에는 산회를 선포"

 

앞서 언급한 네 건의 사례는 이 <국회법해설집>에서 제기한 내용을 잘 지킨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특히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의장은 안건을 표결할 때에 먼저 재적의원수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사편람>에도 '실무요령'으로 "안건 상정 후 표결에 대비하여 항상 의결정족수의 충족여부를 파악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윤성 부의장은 <국회법해설집>에 제시된 '의결정족수 미달시 대처방안'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그는 의결정족수에 3명이 모자라는 재석의원 145명을 확인하고도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특히 <국회선례집>에는 '투표 종료를 선포한 다음에는 다시 투표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방송법 개정안 첫 번째 표결 당시 한나라당 의원 일부가 이 부의장의 '표결 종료 선언'에 "종료하면 안된다, 좀 기다려야 한다"고 제기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전날 악역을 대신한 이 부의장의 '결정적 실수'가 미디어법 효력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민주당 "표결 종료 선언을 하지 않았어야 표결 불성립 가능"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표결 불성립이 되려면 표결 종료 선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며 "표결하고 결과가 다 나왔는데 발표 직전에 보니 의결종족수가 안돼서 표결이 안됐다고 한다면 그런 표결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 원내대표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식으로 이윤성 부의장이 급한 마음에 표결 종결 선언을 한 것이 결정적 하자였다"며 "더군다나 한 번 엎지러진 물을 주워 담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재투표를 했는데 이는 국회법에 규정된 일사부재의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종률 의원은 "방송법의 경우 표결에 필요한 절차가 모두 이루어졌다"며 "표결 종료 선포라는 요건까지 진행됐기 때문에 방송법 표결은 분명히 부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표결 불성립은 과반수 출석 여부를 확인한 결과 과반수 출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표결을 못해 산회를 선포한 경우나 성립할 수 있다"며 "방송법의 경우는 불성립이 아니라 부결된 경우"라고 말했다.


태그:#미디어법, #재투표, #이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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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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