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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많은 나와 카사

 

사실 나는 식탐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무수히 들으며 살고 있다. 당신은 먹는데 좀 초연하고 체중부터 줄이라고.

 

아내는 소식에다 채식주의자로 하루 두 끼만 든다. 그런데 나는 아무 것이나 잘 먹는데다가 하루 세 끼 꼬박 챙겨먹는다.

 

카사란 놈도 나와 마찬가지다. 그놈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한 끼 거르고는 못 산다.

 

특히 밥 때를 앞두고는 매끼 밥 달라고 몹시 보챈다. 그놈은 밥 때마다 아내가 거처하는 본채에서 보채다가 별 인기척이 없으면 아래채 내 글방 문 앞에 와서 밥을 달라고 "아응, 아응"거린다.

 

꼭 한국전쟁 직후 거지들이 한창 득시글거릴 때 밥 때마다 대문 앞에서 밥 좀 달라고 아우성치는 꼴이다. 내가 방문을 열고서 아직 밥시간이 안 되었다는 등, 이런저런 대꾸를 하면 머쓱해 하면서도 곧 다시 칭얼거리기 일쑤다.

 

오늘 아침은 밥 때가 되었는데도 카사란 놈이 보채지도 않을뿐더러 얼씬도 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일까? 아내에게 그새 카사 밥을 줬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놈이 간밤에 동네로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다가 늦잠을 자는 모양이라고 제 집 안을 살폈으나 거기에도 기척이 없다. 그놈이 가장 좋아하는 말로 카사를 불렀다.

 

"카사야, 맘마 먹자!"

 

이 말은 카사에게 가장 반가운 소리로 먼 거리에서도 용케 알아듣고는 언제 어디서나 부지런히 달려왔다. 나는 밥 주는 시간에 맞춰 제 집 앞에서 "카사야, 맘마 먹자!"를 사방으로 외쳤다. 몇 번을 큰 소리로 외쳐도 달려오지도 않을뿐더러 기척도 없다. 그동안 이런 일은 거의 없었던 터라 걱정이 되어 앞집 옆집 뒤꼍을 다니면서 "카사야, 맘마 먹자!" 거푸 외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동네라야 세 집뿐이지만.

 

아내에게 카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제 놈이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라고, 곧 제 배가 고프면 밥 달라고 보챌 테니 내버려 두라"고 했다. "손오공이 아무리 신통을 부려도 부처님 손 안이더라"는 말처럼 '제까짓 놈이 어디에서 배를 채우랴. 제 놈이 곧 배가 고파 돌아오거나 늦어도 간식 시간인 점심 때에는 돌아올 테지'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나는 아침밥을 먹은 뒤 글방으로 돌아와 곧 내 일에 빠졌다.

 

그런데 카사란 놈은 점심 때는 물론, 아내가 저녁 준비로 텃밭에서 상추를 솎을 해거름 때까지도 기척이 없었다. 아무래도 카사에게 뭔 일이 일어난 듯한 불안감에 앞길로, 제 놈이 쥐 사냥으로 자주 가는 동네 어귀 창고로 가 언저리를 살피며 "카사야!"를 외쳐도 끝내 기척이 없었다. 마침 이장인 옆집 노씨가 들에서 돌아오기에 물었다.

 

"이장님, 혹 우리 카사를 보았습니까?"

"아침나절 뒷산에서 보이던데요."

 

나는 반가운 마음에 뒷산을 오르며 "카사야!"를 부르짖었다. 마치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점순이 어머니가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말구 어딜 갔어"라고 무지렁이처럼 점순이를 요란하게 찾는 것처럼 뒷산을 오르며 "카사야!"를 고래고래 부르짖었다.

 

한참동안 카사를 부르짖으며 산길을 오르는데 저만치서 카사가 "야옹, 야옹"하면서 부스스한 몰골로 오는데 마치 산에서 밀애를 하다가 내려오는 점순이 꼴이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놈을 껴안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어디 갔었니?"

"뒷산에요."

"왜 이렇게 늦었니?"

"……"

 

이미 거세된 카사가 점순이처럼 뒷산에서 밀애를 했을 리는 없다.

 

카사의 슬픈 운명

 

나는 문득 교사 초년시절 그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1970년대 초반 서울 오산중학교에서 2학년 11반을 담임할 때, 어느 이른 가을날 아침 반장인 김 아무개 녀석이 조회시간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출석부가 깨끗했던 녀석이라 궁금해 하다가 아마 늦잠을 잤거나 어디가 아픈 모양이라고 미뤄 짐작하고는 집에다가 확인 전화를 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런데 4교시 내 수업시간까지 그 녀석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온 뒤 그제야 집으로 확인 전화를 했더니 그 녀석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예사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등교했다면서 3기분 등록금까지 손에 쥐어주었다고 했다. 평소 과묵하고 매사에 모범생이었던 그가 갑자기 증발하다니….

 

그날 하교시간 무렵 어머니는 마땅한 곳을 죄다 수소문했으나 종적을 알 수 없다고 핼쑥한 얼굴로 학교로 찾아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하루 사이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위안의 말씀을 드린 뒤,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 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날 늦은 밤까지도 귀가치 않은 모양으로 수화기 속에서 어머니는 애간장을 태웠다.

 

이튿날 2교시 후 느지막이 그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등교했다. 단단히 야단치려다가 반가운 마음이 앞서 아무 말 않고 교실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종례가 끝난 뒤 그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 어제 하루의 행방을 물었다.

 

그 녀석은 날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책을 통해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도 발명왕으로 성공한 에디슨 이야기를 읽었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몰래 가지고 집을 떠나 대기업가로 성공한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듣고서는 자기도 그를 본받고자 집을 떠나 어제 아침 마침 등록금도 손에 쥐었기에 그걸 여비로 하여 서울역에서 무작정 부산행 열차를 탔다고 했다.

 

낯선 부산역에 내려 역전에서 두리번거리는데, 경찰이 자기를 역전파출소로 데려간 뒤 집을 나온 사연을 물어 자초지종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사연을 다 듣고 난 경찰이 집에서 부모가 애타게 기다릴 테니 곧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밤 열차를 태워줘서 아침에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고 1박2일의 가출 이야기했다.

 

날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카사도 간밤에 문득 제 홀로 자립하고픈 마음에 뒷산으로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 야생으로 돌아가 생식을 하며 온종일 골똘히 앞으로 살아갈 생각다가 생식한 게 토해지는 등, 아무래도 자기는 야생으로 돌아갈 자신도 없고, 집에서 매끼 주는 밥이 매우 그립던 차에 내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반갑게 들려 다시 산을 내려온지도 모르겠다.

 

 

한 신문의 보도는 한 해 동안 가출 청소년이 전국에 20만 명에 이른다고 하고, 한 청소년 전문단체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중 ․고교생 절반 이상이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청소년만 그러하겠는가. 요즘은 세계 곳곳이 홈리스(노숙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둘러본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홈리스를 만났다. 비단 사람만 가출 충동을 느끼겠는가. 사육동물도 제 스스로 밥을 마련해 먹으며 제 마음대로 온 천하를 휘젓고 싶은 충동이 없겠는가.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온 카사가 눈물겹도록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으로, 제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의 운명, 묘생(猫生; 고양이의 삶)을 가여워하는 두 마음이 내내 오락가락했다.


태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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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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