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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놈, 짜장, 짱개…' 건설현장에서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을 낮춰 부르는 말들입니다. 아파트를 올리고 상가를 짓는 건축현장에는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현장에서 함께 망치 잡고 갈구리 돌리면서 일하지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하락시키는 주범으로 '짜장'이라고 불리는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지목 당하곤 합니다.

 

'일당쟁이' 건설노동자들은 여전히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IMF를 거치면서 생사의 기로에서 바닥을 경험했던 건설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질 줄 모릅니다. 10년이 넘도록 한 푼도 오르지 않고 있는 임금, 법으로 보장된 주5일제, 40시간 노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장시간 노동,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도급을 맡아야만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실질적인 강제노동….

 

이 모든 이유가 뗏놈들, 짜장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임금 깎이고 일자리 구하기 힘든 현실이 모두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해고된 이주노동자, 복직투쟁 나선 한국노동자

 

과연 그러할까요? 여기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가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 노동자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투쟁의 현장이 있습니다.

 

대한주택공사가 발주한 광명시 소화리 신촌지구 아파트 신축현장에서는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들과 한국 국적의 노동자들이 건설노동조합으로 함께 모여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들 10여 명의 형틀목수(폼을 이어 붙여 골조틀을 만드는 공정을 담당) 노동자들은 지난 2009년 4월 15일부터 6월 3일까지 건설회사의 부당한 해고와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40일 넘게 해고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아파트 현장에서는 한국 국적 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임금조차도 맞춰 먹기 힘든 조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법으로 금지된 불법적인 하도급 구조 아래에서 적정한 임금조차 가져갈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이 그나마 믿을 만한 곳이라고 건설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지난 1월 이미 한 차례의 투쟁을 통해 직접고용이라는 보다 좋은 조건으로 일해오던 조합원팀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서적인 반감이 있었음에도 "내 집안으로 들어온 들짐승은 잡아먹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을 동료로 받아들였고 함께 어려운 처지를 개선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건설노동조합이 어려워하는 약한 고리가 이주노동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강요된 저가 도급으로 인해 몇 만 원밖에 돌아가지 않는 일당을 보전해 달라는 요구를 하자마자 이주노동자를 '짜르고', 이에 항의하는 현장의 핵심간부들을 해고해 버렸습니다. 한국인이든 이주노동자든 따지지 않고 건설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힘들고 어려운 해고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반나절 일하고 그 다음날 해고되어 40일을 싸워 별명이 '반나절'인 지씨, 두 달 만에 일나왔다 5일 만에 해고된 황씨, 나이 어린 이주노동자라고 대놓고 무시당하던 임씨, 이주노동자를 감싸고 돈다는 동료들의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앞장서 싸움을 이끌어나가던 이 팀장… 참, 이 형님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새벽마다 차 안에서 불경소리를 듣곤 하였답니다. 이들은 모두 형이고 아우이고 삼촌이고 동지였습니다.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이주노동자까지 감싸주냐는 한국인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도, 강제추방을 운운하며 외사과(외국인 범죄를 전담하는 경찰부서)를 들이대며 노골적으로 건설회사를 편드는 경찰도, 현장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모두 내보내겠다는 회사의 협박도 이들의 질긴 투쟁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용역깡패들에게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원청회사 본사, 계열사를 쫓아다니고, 하청회사가 공사하는 건설현장, 심지어는 멀리 전라도 익산의 현장을 찾아다니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인시위, 집회, 매일 계속되는 출근투쟁과 퇴근 선전, 지방순회투쟁, 멀리 오산에서까지 달려온 경기이주공대위, 근처의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의 연대…. 질긴 투쟁의 끝이 보였습니다. 해고투쟁 41일째, 해고자들은 드디어 회사와 복직을 합의하고 그리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사실, 건설현장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등록이든 미등록이든(흔히 합법, 불법이라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없다면 건물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심지어 수도권의 아파트 현장에서는 70~80%가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건설현장에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불법적인 다단계하도급이 판을 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낮은 단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도급금액이라도 맞춰먹기 위해 임금이 싼 재중동포, 한족들을 데려다 쓰기 시작합니다. 한두 명씩 늘어나던 이주노동자들은 어느새 건설현장의 다수를 차지했고, 이제는 이주노동자들만으로 팀을 꾸려 일을 할 정도로까지 많아졌습니다.

 

당장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들여오고 낮은 도급단가를 맞추기 위해 같은 노동자들끼리 머리 박고 싸우는 동안 임금은 올라갈 줄 몰랐고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몇 년 사이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못난 놈들'끼리 서로 지지고 볶는 사이에 건설회사들만 '따박따박' 돈다발을 챙겨갔습니다.

 

사태를 부추긴 것은 정부였습니다. 공공기관인 주택공사만 한해 수조 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최저낙찰가 제도를 유지하고, 저임금 노동자만을 원하는 건설회사의 요구를 맞춰주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가 이제는 경제가 어렵다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은 채 살인적인 단속과 추방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고분양가-저임금구조'를 유지하려는 '실용'적인 정부의 정책이었습니다.

 

건설현장은 더럽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젊은 사람들 찾아보기 힘듭니다. 노동자들끼리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서로를 보듬어주지 않는 이상, 건설자본에 맞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라고 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건설현장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곳이 될 것입니다. 아파트 분양가가 억억 소리를 내며 올라가도 정작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은 한 푼 오르지 않는 모순된 상황이 이어질 것입니다. 힘 잘 쓰는 젊은 친구들이 건설현장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암울한 현상이 계속될 것입니다.

 

'국적'이라는 자본의 낙인

 

누구는 이번 투쟁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아름다운 연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연대라는 말로는 부족할 듯합니다. 자본이 낙인찍어 놓은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라는 경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함께 먹고살기 위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이주노동자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적의 차이를 넘어서서 건설'노동자'로서 요구하지 않는다면 건설현장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 아프도록 새겨야 합니다.

 

이주노동자와 한번 싸워 봤다고 건설현장이 당장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끼리 미워하지는 말자는 것, 서로 경쟁하고 질시했던 이주노동자들이 사실은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건설현장을 변화시켜내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 건설현장이 그래도 일할 만한 곳이 될 수 있음을 광명 삼환 현장에서의 작은 해고투쟁은 몸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노동자는 하나이고, 한국국적이든 중국국적이든 싸우지 않는 노동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테니까요.

 

※광명신촌지구 삼환까뮤 주공아파트 현장에서는 2009년 1월 법으로 보장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4월 15일부터 6월 3일까지 이주노동자와 한국인노동자가 40일이 넘는 복직 투쟁을 한 결과 6월 4일 현장에 복귀하여 더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며 아파트를 올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진춘환 님은 전국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안양군포의왕지회 사무장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환까뮤, #이주노동자, #이주민, #해고,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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