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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시대 오욕의 역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을 본 재판부의 법관들은 가슴 깊이 되새겨 법관으로서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면서...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힌다."

 

5공화국의 대표적인 반인권 국가범죄로 기록된 '아람회 사건' 무죄 판결문이 충남 금산에서 낭독됐다. 23일 저녁 7시 충남 금산 다락원에서 열린 '6월 항쟁 22주년 대전충남 기념식' 자리에서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판결문을 낭독하는 사건 피해자인 김현칠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들은 지난달 5월, 사건 발생 28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명예회복과 원상회복이 이뤄졌다. 그리고 28년 만에 무죄 판결문을 들고 고향 땅을 찾았다. 

 

'아람회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충남 금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사건은 '금산고등학교 동기동창생들의 친목회를 반국가단체로 조작하고 북한에 찬양, 고무, 동조하는 좌익용공 세력으로 둔갑시킨 것'으로 요약된다.

 

국가보안법, 계엄법 위반 등 혐의로 최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던 피해자들은 정해숙 (당시 금산여고 근무), 박해전(금산중 윤리교사), 황보윤식(당시 대전공업고 교사), 김창근(당시 천안경찰서 경찰관), 김난수(당시 육군대위), 김현칠(당시 검찰직원), 이재권(새마을금고 직원)씨 등이 그 피해자들이다. 혈기왕성했던 청년들의 머리카락은 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박혀 있었다. 그나마 이 중 이재권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1998년 사망해 함께할 수 없었다.  

 

'자생 간첩' 낙인 지우고 28년 만에 고향 땅 밟다   

 

이날 행사에 정해숙씨와 황보윤식씨가 불참했지만 이들 피해자들은 고향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당당하게 섰다. 이재권씨를 대신해 부인 박천희씨가 소개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28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검은 자동차에 구겨지듯 실려 끌려간 뒤 고향 땅을 남몰래 오가야 했다. 당시 언론에 소개된 이들은 말 그대로 '암약하던 자생 간첩'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사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박해전 인터넷신문 '참말로' 회장은 '아람회사건 재심 무죄선고와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주제로 한 발제문을 통해 "1981년 7월 중순 한밤중에 두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대전 보문산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온갖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며 "심지어 담당 수사관은 '너 같은 놈 죽으면 거적에 싸서 뒷산에 묻으면 그만이다'고 협박했다"고 당시를 반추했다.

 

박 회장은 "아람회 사건의 무죄선고는 불의한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범죄는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며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실현하려면 민주주의가 정방향으로 나아가고 평화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노동당 대전시당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피해자 김창근씨는 "개인적 이유로 금산에 몇 차례 왔지만 오늘이야말로 28년 만에 당당하게 금산에 처음 온 날"이라며 "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남은 생을 바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피해자 김난수씨 "복직해 군인의 길 걷겠다"

 

김난수씨는 "길고 까만 터널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며 "사건 이후 이등병으로 강등됐지만 동기생들은 아직 군(軍)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이제 군에 복직해 적합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람회 사건의 '아람'은 김씨의 딸 이름에서 따왔다. 당시 태어난 지 백일이었던 아람이는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됐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민주주의가 정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도 함께 열렸다.

 

이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대전충남지역의 역할'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최교진 대전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는 "아람회 사건은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다시 민주주의 회복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지역 생활공동체 복원을 위해 부문과 계층을 넘어 새로운 연대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운동세력이 시민을 상대로 '한 사람 한 정당 가입하기' 운동을 벌여 정치와 정당에 참여해 바꿔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내년 치러지는 지방자치 선거와 관련, "국민이 원하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연합공천을 통한 지역정치 새 판 짜기라도 하겠다는 자세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촛불 한 자루라도 내 삶터에서 켜자"

 

토론에 나선 이상선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장도 "행정수도 등에서 보여준 '품앗이 연대'의 경험을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선 대전충남민주화계승사업회 운영위원은 "현 정부가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크게 보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상대가 정상이 아닌데 정상적인 사고로 대응해야 하니 힘들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촛불을 켜더라도 내 삶터에서 켜야 한다"며 "현장, 이웃, 동료 속에서 주도력과 정당성을 회복하는 운동 방식과 내용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취약계층의 참여와 연대를 통한 실천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가 주최하고 금산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및 금산사회단체연대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50여 명의 금산 주민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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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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