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청년의 만남과 우정을 그린 신동일 감독의 영화 <반두비>가 결국 '18세 관람가'로 6월 25일 개봉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2세 관람가로 상영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 느닷없이 '성인영화'로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실제 이 영화에는 여고생 민서(백진희)가 원어민 영어학원 수강비를 벌기 위해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오며 그것을 친구인 카림(마붑 알엄)에게 시범을 보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상이 장면이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청소년 관객이 봐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었다.

그럼에도 영등위는 <반두비>에 18세 관람가 등급을 매겼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 영화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꼬는 장면들을 예로 들며 '표현의 자유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외압설'까지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18세 관람가로 판정난 <반두비>

18세 관람가로 판정난 <반두비> ⓒ 인디스토리


실제로 영화 속에 나오는 원어민 영어학원 차에는 'MB'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며 진희가 PC방에 있는 장면에서는 '이명박 굴욕사진'이 화면에 나온다. 원어민 영어강사는 "왜 한국인들은 이명박을 쥐새끼라고 부르냐?"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한국 여자들은 사귀기 쉽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게다가 민서가 일했던 주유소 사장과 카림의 1년치 월급을 떼먹은 '심만수 사장'은 모두 '조선일보'를 읽고 있다. 만수의 집에 쳐들어간 민서는 조선일보를 집어던지며 말한다.
"이딴 걸 읽으니까 이러고 살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데..."

영등위가 18세 관람가 판정을 내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안마시술소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청소년의 모방 심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영화에 나오는 '성적(性的) 비속어'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반두비> 기자시사회 직후 영등위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에서 관계자는 "18세 관람가로 매겨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며 '외압설'과 기타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다.

"어떤 의도로 비속어나 폭력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영화가 15세 관람가가 될 수 있고 18세 관람가가 될 수 있다. <반두비>의 경우 주인공이 엄마에게 하는 'X지(남자의 성기)나 돌리고'란 말은 청소년이 볼 수 있는 영화에서 나오기엔 심한 표현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라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청소년에게 맞지 않으면 18세 관람가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외압설에 대해서도 그는 "장담하는데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

"만약 위원들 만장일치로 18세 관람가 등급이 나왔다면 정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당연히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원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았고 등급을 확정하는 데도 몇 차례의 토론이 오가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영등위 내에서도 15세 관람가를 주장한 사람들도 많았다. 다만 18세 관람가를 내린 분들이 조금 많았을 뿐이다.

등급이 나오기까지의 영등위 위원들이 겪은 토론과 고민을 무시하고 결과만 보고 무조건 '외압'으로 밀고 나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영화, 제대로 죽인다

 민서(백진희)의 행동은 분명 어른들에게는 껄끄럽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그 공개를 막으려 한다.

민서(백진희)의 행동은 분명 어른들에게는 껄끄럽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그 공개를 막으려 한다. ⓒ 인디스토리


<반두비>는 이렇게 청소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은 볼 수 없는 청소년영화'가 되고 말았다. 외압 여부를 떠나 이 영화가 18세 관람가를 받은 이유를 영화 속에서 보면 결국 '너희들은 절대 민서를 따라하면 안 돼'라는 어른들의 '눈가리기'가 숨어있다.

<반두비>에는 직간접적인 MB 비판과 함께 이주노동자를 무시하고 10대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어른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민서는 집적대는 주유소 사장 아들에게 휘발유 세례를 퍼붓고 카림의 월급을 착취한 사장의 뺨을 때린다. 안마시술소에 손님으로 온 담임선생님을 놀리기도 한다.

영화는 이주노동자와 여학생의 우정을 축으로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한국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하의 남자와 사귀는 엄마(이일화)부터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 한국 여자를 무시하는 원어민 영어강사, 그리고 카림을 괴롭히는 사장까지, 민서의 세상은 그야말로 불만투성이다.

그것은 공부에 짓눌리면서도 그것을 타파하지 못한 채 어른들의 욕심 속에 살아가는 여느 대한민국 10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그들이 어른들에게 욕을 하고 뺨을 때리고, '인생이 학교'라며 학교를 스스로 그만두고, 촛불소녀 배지를 달고 '한우장조림'만 찾는 민서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영등위는 청소년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분명 영등위는 청소년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 인디스토리


영등위가 모방 우려를 나타낸 것은 안마시술소가 아니라 '민서의 당돌함'이며 청소년이 듣기에 심한 말은 성적 표현이 아니라 '어른들을 향한 비난'이다.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어른들은 10대들의 당돌한 도전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시작을 알린 이들이 바로 10대가 아닌가.

그래서 어른들은 중고교의 경쟁을 강화하고, 자립형 사립고 운운하며 10대들을 경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세상에 관심 끊고 그저 교과서나 파고 들고 과외나 하라고 부추기며 교육 양극화를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어른들에게 '대드는' 영화가 나온다면 어른들은 어떻게 할까?

당연하다. 무조건 막는다. 눈과 귀를 막아놓고 공부를 강요한다. <반두비>의 등급 문제는 결국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영화라 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른에게 맞지 않으면 청소년의 영화 관람을 제한할 수 있다'

결국 어른들의 눈가리기에 <반두비>는 희생양이 됐다. 덧붙여 '표현의 자유'도 다시 도마 위에 놓였다. 청소년의 현실을 표현하는 영화들을 향해 계속 '눈가리기식 등급 판정'이 계속된다면 한국 청소년 영화의 미래는 없다. 영화의 미래보다 현실의 안녕에 더 급급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씁쓸한 지금이다.

반두비 신동일 백진희 마붑 알엄 이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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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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