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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그들은 애면글면 집요하게 '노무현 죽이기'에 매달렸던 것일까.

이미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그 후부터 노무현이란 이름은 더 이상 정치적 표제어가 아니었다.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야당은 대체로 무기력했다. 유력한 반대를 표명할 수 있는 사회시민단체도 거의 제압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노무현 죽이기'가 필요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숱한 동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보복, 선거효과, 정치적 음모, 과잉 충성, 질투, 한풀이, 부패척결, 우연…. 이런저런 설명이 다 일리가 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의문이 깔끔하게 풀리지 않는다. 

그들에겐 왜 '노무현 죽이기'가 필요했을까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 나오미 클라인의 개념이다. 칠레,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 세계의 수없이 많은 신자유주의 도입 사례들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지적 설계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다. "실제이든 아니면 인식이든 간에,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낸다."

다른 하나는, 위기를 활용해 경제적 쇼크요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쇼크요법에 해당되는 것이 민영화, 정부 탈규제, 사회지출 삭감 따위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정책이다. 이런 정책들을 한꺼번에 압축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이가 충격을 받아 멍한 상태에서 경제변혁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공포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문, 살인, 감금, 탄압 등이 그것이다. 프리드먼의 제자였으나 후에 이탈한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지적이다. "(신자유주의) 정책 밑바탕에 깔려 있는 두 가지 핵심요소, 즉 무력과 정치적 공포 없이는 이를 실행할 수 없다."

경제난으로 위기는 만들어졌다. 충격을 줄 정책도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남은 문제는 반대를 누르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세력에겐 노무현 집권 시절 다져진 열린 사회와 참여가 적이었다. 정착된 민주적 관행이 반대의 온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촛불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기겁한 나머지 서둘러 행동에 나섰다. 참여를 막고, 사회를 옥죄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포의 동원이 필요했다.

참여와 서민의 아이콘인 노무현이 타깃으로 선택됐다

어떻게? 그렇다고 고문과 같은 낡은 수법을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상징적인 인물을 골라 거세함으로써 반발을 잠재우는 방법이 적절했다. 명분은 부패척결이고 법치였다. 참여와 서민의 아이콘인 노무현이 타깃으로 선택됐다.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아르헨티나 측에선 이를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이 벌어졌다. 조그만 섬, 효용가치라곤 거의 없는 섬 포클랜드를 둘러싸고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벌어진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처 총리에게 경제적 쇼크요법을 실시할 위기를 제공했다. 대처는 전쟁 승리를 신자유주의 경제변혁을 시도하는 정치적 명분으로 삼았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초로 시도된 충격요법이었다.

대처는 1983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층 가속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다시 위기가 필요했다. 이듬해 유도한 대로 광부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이미 두 차례나 정권을 퇴진시킨 전례가 있는 광부노조는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대처가 선언했다. "우리는 포클랜드에서 외부의 적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제는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는 일입니다."

대처는 파업을 내전으로 간주했다. 경찰봉으로 진압했다. 백기 항복을 얻어냈다. 그 승리는 광부파업을 물리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연스레 공포를 동원하는 기제였다. 사회 전체를 억누르는 효과를 낳았다. 이때부터 대처는 대대적인 민영화를 실시했다. 거침없이!

대처는 '노조 죽이기', 이 땅의 보수는 '노무현 죽이기'를 선택했다

신자유주의 전면 도입에는 저항이 따른다. 이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저항의 핵심을 타격해야 한다. 그래야 공포를 동원할 수 있다.

대처는 '노조 죽이기'를 선택했다. 노조는 복지국가의 주축이었다. 이 땅의 보수는 '노무현 죽이기'를 선택했다. 노무현이 민주, 대중정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무현 죽이기'는 반대를 제압하고, 사회를 짓누르기 위한 상징 거세였다. 그것은 이 땅에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노무현 현상'이 생겨났다. 역설적이게도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노무현 죽이기'는 실패했다. 500만 국민의 분향, 결국 참여를 소생시킨 것이 됐다. 옥셈이 되고 말았다. 다시 현 정부에게 선택의 몫이 남겨졌다. 그냥 이대로 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전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도리어 기로에 몰린 셈이다.

'민본 21'은 한나라당 내 소장파의 모임이다. 이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국민의 68.8%가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부자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한나라당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이미지는 부자정당(24.6%), 보수정당(24.2%), 지역정당(20.0%)이었다. 역으로 수세에 처한 꼴이다.

어떤 선택을 할까?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강제다.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부정부패에 시달린다. 거의 예외가 없다. 대처의 영국도 그랬다. 부정과 비리에 대한 추문(sleaze factor)이 끊이지 않았다. 부시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스캔들로 얼룩졌다. 신자유주의는 기업·부자에 대한 특혜와 정경유착을 고유속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신자유주의를 부자경제(plutonomy)나 기업지배체제(corpocracy)라고 이름 붙이랴.

신자유주의를 선택하는 것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극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다. 서민을 빈곤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역사의 신이 선택할 카드는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을…, 특권·특혜를 겨누는 대중의 칼로 만드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철희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 애널리스트로서 여론 동향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 <1인자를 만든 2인자들>, <어드바이스 파트너> 등이 있다.



태그:#노무현, #쇼크 독트린, #이철희, #대처,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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