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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기형도 시인(1960~1989)의 생전 모습.
 故 기형도 시인(1960~1989)의 생전 모습.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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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흘렀다. 1989년 3월 7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의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해 가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시집을 내기로 되어있어서 열뜬 마음으로 시집에 실릴 시들을 다듬는 한편, 시집의 구성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민했었다. 그가 생전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첫 시집은 유고시집이 되어 그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 해 5월 말 세상에 나왔다. 그 후 그 시집은 한국문학의 신화가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입 속의 검은 잎>은 초판 11쇄로 1990년 11월에 발행된 것이다. 가격은 2,500원. 그러니까 나는 이 시집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2년 한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네가 읽어보면 좋아할 거 같아서." 하지만 기형도를 이해하기엔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또 세상을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얄팍한 독서로 기형도를 알고만 있던 나는 별 저항 없이 대학에 들어갔다. 정치외교학과. 故 김남주와 박노해, 창비와 실천문학사의 시집들이 외쳐대는 전투적 목소리 속에서 뜻밖에 나를 위로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기형도였다.

 故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겉그림.
 故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겉그림.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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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내 사랑을 잃었던" 나는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음을 아프게 깨닫곤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고 "빈 집에 갇혀" 울었다. 또 "플라톤을 읽"으며 "감옥과 군대로 흩어"지는 선배와 친구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 역시 "원체 말이 없"으셨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 역시 "외톨이가 되었"고 "졸업이었"지만 "대학을 떠나기가" 그처럼 나도 "두려웠다".

그렇게 나 역시 쫓기듯 군 입대를 했던 1999년의 어느 날, 행정반을 정리하던 나는 문득 한 석간신문 하단에서 10주기에 맞춰 <기형도 전집>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았다. 이등병 주제에 나는 외출을 나가는 한 선임에게 '목숨을 걸고' 혹시 이 책을 구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선임은 순순히 구해주는 것이 아닌가(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딱딱한 표지를 넘기자 그의 흑백 사진이 나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거의 8년 동안 오직 예순한 편의 시와 이제하가 그린 시인의 캐리커처로만 알고 있던 기형도의 얼굴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그리곤 곧 더 많은 기형도가 쏟아져 나왔다.

전집을 통해 알게 된 1주기와 5주기에 각각 나온 유고산문집(<짧은 여행의 기록>)과 추모문집(<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도 곧 헌책방을 다니며 구해 읽었다. 그러면서 기형도가 생전에 동인으로 있었던 '시운동', 대학친구 성석제와 원재길, 그리고 조병준 등이 펴낸 시집이랄지 산문집 따위를 죄 구해다 읽기 시작했다.

 故 기형도 시인의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의 겉그림.
 故 기형도 시인의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의 겉그림.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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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2004년엔 '목요 북까페'라는 모임에서 <입 속의 검은 잎> 합평회를 열기도 했고, 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에 나오는 대구의 "장정일 소년"을 우연히 만나 기형도에 얽힌 풍문들에 대해 조심스레 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 한 포털 사이트에 기형도 추모카페(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도 하나 개설했다.

이번에 기형도 20주기에 맞춰 유고시집을 냈던 출판사에서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가 나왔다. 그 중 기형도보다 어린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시인들이 담담히 기형도를 추억하는 꼭지가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면서 내 책장 어딘가에 "꽂힌" 기형도의 낡은 유고시집을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기형도를 처음 읽던 열몇 살의 나에게 그토록 어려운 난수표 같았던 시인의 시들이, 이젠 어떤 구절들은 유치하기도 하고 치기어려보이기도 한다. 나이가 든 것이다. 기형도가 죽었던 스물아홉보다 나는 네 해를 더 살았다.

기형도는 영원히 스물아홉으로 남아 나보다 어린 청년들을 만날 것이다. 내가 늙고 병들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영원할 그를 나는 본다.

덧붙이는 글 | 1. 기형도 시인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KBS1 <낭독의 발견> 김경원 작가의 낭독 요청과 <한겨레 21> 신윤동욱 기자의 취재 요청이 들어왔으나 이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한 마음 담아 이 졸고로 용서를 구합니다.


2. 제목과 본문에서 인용한 기형도 시인의 시는 각각 <빈 집>, <그집 앞>, <대학 시절>입니다.


3. 기형도 시인은 생전에 첫 시집의 제목으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시집 해설을 쓰기도 했던 문학평론가 故 김현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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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본업인 영화감독보다 부업인 ‘물레책방 대표’로 더 많이 알려져 요즘 난감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영화를 만들고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이런저런 매체에 여러 가지 글들을 쓰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장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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