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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국인들과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제 44대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취임을 하였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확장시키고 인권과 복지를 강화하며, 제국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엊그제 취임연설문에서 9.11 사건 이후 후퇴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인권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위험과 맞닥뜨리곤 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인권과 법률을 보장하는 헌장을 기초했고 이 헌장은 세대를 거치면서 흘린 피에 의해 신장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상들은 여전히 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으며 우리는 단순히 편의를 위해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오바바 취임 연설 중에서)

 

그렇지만,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를 통해 길지 않은 미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권과 법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협 받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9.11테러 이후에 만들어진 ‘반테러 법’과 같은 법률들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인권유린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건은 1950년대 한국전쟁에 즈음한 기간에 벌어진 ‘매카시 선풍’입니다.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공산주의자 색출 작업이 벌어지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빨갱이’나 ‘정치적 좌파’라는 이유로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 입니다.

 

좌파정당이 법으로 보장된 나라에서, 좌파정당에 가입하거나 좌파정당의 당원을 친구나 가족으로 둔 사람까지 피해를 입는 사실상의 연좌제 시행되었고, 인권운동가들에게 ‘빨갱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 없이 일자리와 가정을 잃었다. 강의나 모임에 참가하거나, 편집자에게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 자기가 공산주의자로 몰린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작가의 말 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어떤 일에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애국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매도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로 몰리지 않기 위하여 친구와 동료를 고발하여야하는 일마저 벌어지게 됩니다.

 

엘렌 레빈이 쓴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은 바로 ‘매카시 선풍’이 몰아치던, 1953년 여름과 가을에 열세 살 소녀 제이미와 그 가족이 겪은 일그러진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의회에는 공산주의자 색출 위원회’가 설치되고, 극장 뉴스에 출연한 매카시는 “유럽의 미국 대사관 도서관에 있는 3만 권의 책이 공산주의자나 그 지지자들이 쓴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빨갱이 마녀사냥이 시작되다.

 

러시아 이민자 가족인 제이미네는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혹시라도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 때문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FBI가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긴 엄마 말대로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매니 아줌마네 신문 판매점에서 신문을 살 때 아줌마는 주위를 살핀 뒤 <데일리 워커(공산당 기관지)>와 <내셔널 가디언(좌파 주간지)>을 <뉴욕 타임스>나 <헤럴드 트리뷴>속에 감춰 주었다. 예전엔 그런 적이 없는데 말이다.”(본문 중에서)

 

어느 날 제이미의 학교 친구인 해리엇 퍼듀의 아빠는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났고, 학교에서는 아이들마조도 해리엇을 따돌렸고, 결국 해리엇네 가족은 이사를 가야만 하였습니다.

 

공산당 기관지와 좌파 주간신문을 구독하고 가족모임에서도 정치토론을 할 만큼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제이미네 가족들은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 시작되자 FBI 감시 때문에 두려움을 갖고 위축된 삶을 살게 됩니다.

 

엄마는, "낯선 사람하고는 이야기 하지 않기, 가족에 관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 하지 않기, 낯선 사람에게 문 열어주지 않기, 모르는 사람과 전화통화하지 않기" 같은 규칙을 제이미에게 일러줍니다.

 

눈치가 빠르고 조숙한 제이미 역시 스스로 이런 분위기에 맞춰 살아갑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일레인에게도 ‘할머니가 몸이 불편해서 집에 놀러 갈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고, 방송작가인 엄마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열세 살 제이미는 ‘모난 돌이 되지 말자’는 서글픈 좌우명을 가진 아이로 살아갑니다.

 

새 학기에 제이미는 오래전부터 원했던 학교 신문사에 지원하게 됩니다. 이 무렵 학교에서는 아이들조차도 <데일리 워커>와 같은 신문을 가진 친구를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주먹다짐까지 벌일 만큼 공산주의자 색출 활동은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됩니다.

 

사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이 세상을 뒤집으려고 한다고 가르치고, 소련이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 관리 중에 소련 스파이가 있었다”고 가르칩니다. 국제연합 지지자들조차 공산당 동조자라고 몰아세우는 그런 분위기 입니다.

 

 

그러나, 제이미 아빠는 “공산주의는 이 사회에 불평등이 없어질 수 있도록 경제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말 합니다. 엄마, 아빠는 소련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은 늘 그런 식으로 말하지. 하지만 나는 정부를 공격하려고 총이나 폭탄을 쌓아 두는 건 고사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어. 그저 인종 평등을 실현하거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노숙자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 ‘공산주의’라고 생각할 뿐인 거란다.”(본문 중에서)

 

그렇지만, 매카시 선풍에 휩쓸린 세상은 엄마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지요.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그 사람이 감옥에 끌려가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입니다.

 

어떤 사람을 해고하고 싶은데 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산주의자라고 하거나 혹은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로 ‘의심스럽다’고 말하면 되는 식입니다. 심지어 헐리우드 배우 중에는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가수가 참가한 모임에서 박수를 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볼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난무하게 됩니다.

 

살벌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마녀 사냥이 벌어지는 1953년에도 미국 수정 헌법 제 1조는 “모든 사람은 신념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고 어떤 법률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빨갱이 청소가 시작되다

 

링 라드너와 같은 작가처럼 매카시 위원회에 출석하여, “과거에 공산주의자였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거부하는 강단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 질문을 던질 권리가 없다”는 수정헌법 1조를 지킨 것 입니다.

 

학교 신문사 편집회의 시간, 로젠버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회의를 하던 터벨 선생님은 몇몇 아이들이 “빨갱이는 죽어 마땅하다”는 주장을 하자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생각케 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미국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다 간첩일까?”

“미국인 공산주의자들이 찬성하는 건 뭘까?”

“너희가 공산주의자고 경제적인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너희가 간첩일까?”

“너희 생각이 공산주의자들의 의견과 다를 수는 있어. 하지만 그들이 너희 의견에 따라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가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느님을 믿지 않을 권리도 있는 거 아닐까?”

 

아이들과 이런 토론을 벌였던 신문사 선생님 터벨은 얼마 후에 학교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제이미 아빠인 ‘피트 모스’ 역시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서 공산주의자로 지목되고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이 일은 모든 가족에게 일파만파로 확대되어 엄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해고되고, 제이미는 학교 신문사에 쫓겨나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모스 가족은 엄마, 아빠의 실직으로 경제적으로도 점점 힘들어지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합니다.

 

에이미는, 학교 신문사 편집장에게 “자신이 학교 신문사에서 부당하게 쫓겨났다”는 편지를 보내고, 이 사건은 학교 신문에 보도되어 마침내 청문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에이미는 청문회에서 ‘아무런 잘못 없이 단지 책상이 모자란다는 명분’으로 쫓아낸 일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청문위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마침내 신문사로 돌아가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가꾸고 지켜야 하는 것

 

아버지 피트 모스는 원하는 대로 증언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카시 상원의원이 진행하는 교사 청문회에 출석하기로 결정합니다. 피트는 “현재나 과거에 공산당원이었는가?”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합니다. 정치적 신념에 대하여 답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합니다.

 

오히려, 국가와 헌법의 토대를 흔드는 위험한 사람들로 매카시 의원을 당당하게 지목합니다.

 

“의원님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지요.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은 속일 수 있습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피트 모스는 청문회장에서 끌려 나왔지만, TV로 방송되는 청문회에서 용기 증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환기 시키게 됩니다. 많은 친구들이 ‘모스 가족’을 지지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공산당원 이었지만,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이 손을 잡는 것을 보고 분노하며 공산당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공산당원이었다는 것도, 지금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지켜낸 것 입니다.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잃는다면 그건 감옥에 갇히는 거나 다름없어. 민주주의는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게 아니란다. 우리가 끊임없이 가꾸어 가야 하는 거야.”(본문 중에서)

 

엘렌 레빈이 쓴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은 1950년 대 매카시 선풍이 몰아치던 당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평범한 미국 가정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매카시 시대를 알 길 없는 청소년들에게, “오늘날에도 매카시의 반공 마녀사냥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져주는” 책입니다.

 

인권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들은 사람들이 지키고 가꾸지 않으면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 아야 할 일들이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요?

 

냉전 시대가 지나도 반공 이데올로기의 망령이 떠돌아다니고, 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미네르바’가 구속되는 이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하여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입니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랑스럽고 활기찬 여주인공 ‘제이미’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여 진 것은 이 책의 특별한 장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모스 가족의 용기있는 선택

엘린 레빈 지음, 김민석 옮김, 우리교육(2008)


태그:#매카시, #수정헌법 1조, #민주주의, #모스 가족,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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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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