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보강: 17일 밤 11시 25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쌀직불금 지급실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고 받은 자리에서 진노하면서 제도개선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17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다.

 

'쌀소득 등 보전 직접지불제도 운용실태'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이상욱 감사관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0일 관계장관 대책회의에서 김조원 감사원 사무총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박홍수 농림부 장관을 질책하면서 빨리 제도개선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 감사관은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의 질문에 답하면서 "보고서 작성자로서 김조원 당시 사무총장의 보고를 보좌하기 위해 당시 회의에 배석했다, 회의에는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박 농림부 장관 등이 참여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감사관은 이어 "박홍수 장관은 감사원 보고에 대해 '이미 언론에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수준의 추정치가 공개된 적이 있느냐'고 진노를 많이 하면서, 쌀직불금이 부재지주에게 가는 상황을 시정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감사관은 "박 장관이 계속 문제제를 하자 노 전 대통령이 '내가 임기 말년이라 그러는 것이냐'고 화를 내자, 박 장관이 공식사과했다는데 맞느냐"는 주성영 의원의 질문에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사관은 "당시 관계장관 회의 자리에서 공개와 비공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 "개별명단에 대한 보고나 질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을 의식해 감사원 감사결과를 은폐했을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과는 다른 증언이다.

 

한미FTA 농업대책회의서 보고 받아 "제도개선 대책 세우라"

 

노무현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회의는 한미FTA에 대한 농업대책회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그 중요한 대책이 '쌀직불금' 문제였기 때문에 감사원도 실태조사에 대한 보고를 한 것"이라면서 "당시 박홍수 장관이 직불금 문제에 대한 후속대책 등을 보고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여러 '지적'을 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은 쌀 직불금 지급을 제대로 하려면 농지 중심에서 농민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농지원부가 제대로 작성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질책하면서 중장기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었다"면서 "대책과 함께 (감사원의 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하라고 농림부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 자리는 한미FTA에 대한 농업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고, 개별명단이 구체적으로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선에 대한 파장이나 비공개 지시 등에 대한 말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감사원 감사가 개별인사들을 옷 벗기는 것보다는 제도개선에 중점을 두는 정책감사를 강조해 왔다"며 "감사원은 이에 따라 제도개선 정책점검과제를 뽑았고, 쌀직불금 감사도 그 중의 하나였다"고 전했다. 김황식 감사원장도 "우리가 감사를 준비하는 중에 노 전 대통령의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김황식 "자료폐기 아닌 기록삭제, 나였다면 바로 공개"

 

이날 감사원 국감의 초점은 지난 7월 감사원이 실태파악을 해놓고도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배경과 부당수령추정자 중 17만명에 대한 자료를 '폐기'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취임한 김황식 감사원장은 "개별적인 문제적발보다는 제도개선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발표를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어 "▲ 임차농 비율(2006년 62.5%)이 높은 상황에서 농지소유자가 계약을 해지할 경우 임차농에게 피해가 갈 우려가 있고 ▲ 직불금 지급대상 농업인의 개념이 모호한 데다 ▲ 실경작자 확인 시스템도 부실한 상태에서 쌀직불금 부당 수령자가 '추정' 상태에서 공개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것을 걱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당시 비공개한 고민이 있었겠지만, 제 임기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바로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자료폐기'문제에 대해서는 "폐기가 아니라 기록삭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농림부를 통해 약100만명의 수령자 명단을 파악한 뒤, 한국농촌공사에서 컴퓨터 서버를 이용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와 비교하면서 작업했다"며 "자료가 추정치인데다 우리 서버였다면 모를까 제3자인 농업공사 서버였기 때문에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한나라 "대선 의식 은폐"... 주심 감사 "'추정' 수준으로는 발표 못해"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파장을 우려해 비공개 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성영 의원은 "감사결과를 확정하기 1개월 전에 노 전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됐다"며 "당시 인기가 바닥이던 참여정부의 실정을 덮고 통합민주당 후보의 열세 만회를 도와주기 위해 대통령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정치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주영 의원도 "대선 앞두고 파장이 얼마나 클지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명단을 쥐고 흘리고 있다며 전면적인 명단공개를 요구했다. 박지원 의원은 "KBS에 대한 감사는 그렇게 신속하게 하면, 국민의혹이 이렇게 큰 사안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더딘 것이냐"면서 "빨리 안하니까 매를 안맞을 사람들이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실제 받은 액수가 100만원 미만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이해가 가능한 부분은 그렇게 넘어가면 된다"며 "명단을 공개해야 할 때"라고 압박했다.

 

김 감사원장은 "원본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명단을 만들어내는 데는 2, 3주 정도 걸린다"면서 "그러나 추정치가 공개된다면 국민들의 속은 시원하겠지만, 실태조사해 보니 공무원 수령자 4만6천명 중에 실제 문제되는 사람은 1천명도 안되는 식으로 나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행정안전부도 조사하고 있으니까 상황을 지켜보면서 명단작성을 위한 준비는 하겠다"고 덧붙였다. 쌀직불금 조사를 담당한 박종구 주심 감사위원은 "위법사실을 개별적으로 확인 안한 상태에서, 추정으로 28만명이 1600억원을 부당수령했다고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박영선 의원은 노무현 정부때까지는 개선안이 계속 준비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보고 직후인) 지난해 6월 22일에 농림부가 점검단 TF를 구성한뒤, 12월 4일에 개정안 입법예고를 낼 때까지 공청회 등을 하면서 제도개선안 마련작업을 진행했었다"면서 "그런데 입법예고기간이 3개월이었고 그때부터는 이명박 정부인데, 개선노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3월에 직불금이 또 불법수령된다는 것을 감사원, 농림부가 다 알았는데 왜 침묵한 것이냐, 그래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일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농림부가 쇠고기 문제라든지 상반기 조직개편 등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감사원 직원 중에도 쌀직불금 수령자가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김 감사원장은 "농촌 출신 근무자 3, 4명이 직불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자경자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문서검증, 주심감사위원은 비공개·감사원장은 공개주장

이날 국정감사는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가 끝까지 논란이 됐다. 법사위원들은 군사안보 등의 사안도 아닌데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며, 감사원의 해당자료에 대한 문서검증을 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회의록 공개여부를 놓고 논의한 분량은 얼마 안 됐다. 검증결과 이 사안 주심이었던 박종구 감사위원은 비공개 의견을 낸 반면, 감사위 의장인 전윤철 감사원장은 처음에는 공표를 안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을 냈다가 결국 주심의 의견을 따랐다는 것이다.

 

감사위원회에서 사후감독 지도소홀에 대해 농림부 차관에게 주의를 주자는 의견 등이 나오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구 감사위원은 이날 국감에서도 "이 건은 정책개선자료를 위해 감사를 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명단도 만들지 않은 것이었고, 개개인별로 위법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28만명이 1600여억원을 부당수령했다고 발표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 보고에 배석했던 이상욱 감사관이 주목대상으로 떠올랐다. 국감현장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이 감사관이 당시 청와대 한미FTA대책회의에서 감사원이 보고했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보고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 누구냐, 청와대 사람이나 공직자가 누구인가, 대선 앞두고 타격이 클 것이다'는 등의 말을 했느냐"고 유도성 질문을 했으나, 이 감사관은 "제 기억으로 그런 말은 없었다"고 답해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장윤석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국민들이 알면 폭동 나겠다"고 했다는데 맞느냐"고 물었으나 이 감사관은 "그런 말은 기억에 없다"고 답했다. 장 의원은 "오랜 검찰 생활 동안 보면 '기억이 없다'고 한 사람은 대부분 맞더라'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장윤석 의원이 "당시 청와대 보고할 때 적은 업무일지를 갖고 오라"며 압박하자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검사님이야, 검사님", 박영선 의원은 "공안검사야"라고 비꼬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뒤 감사원에 온 김조원 전 사무총장이 청와대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과 협의해 대통령 보고 일정이 잡힌 것이고, 이 라인을 통해 비공개결정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태그:#국정감사, #쌀직불금,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