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책이름 :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 글 : 강수돌
- 그림 : 최영순
- 펴낸곳 : 봄나무 (2005.3.10.)
- 책값 : 9500원

 (1) 책으로 읽는 세상

강수돌 님은 새로운 책을 펴낼 때마다 말과 글을 한결 쉽게 쓰면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줍니다. 다만, 이런 마음씀을 얼마나 헤아려 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 겉그림 강수돌 님은 새로운 책을 펴낼 때마다 말과 글을 한결 쉽게 쓰면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줍니다. 다만, 이런 마음씀을 얼마나 헤아려 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 봄나무

관련사진보기

지난주, 서울 홍익대 둘레에서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날에 헌책방 아주머니가 ‘한국적 책마을을 생각한다’는 이야기감으로 당신 삶을 들려주어야 하는 자리가 있어서, 길잡이 노릇을 하고자 함께 찾아갔습니다.

책잔치 마지막날이기도 했으나 일요일이었고, 여느 때에도 일요일 저녁이면 사람으로 득시글득시글하는 홍대 앞 주차장골목은 발디딜 틈이 없이 붐비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을 안내요원한테 묻고 또 물으면서도 길을 찾기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길을 헤매는 동안 ‘출판사에서 차려 놓은 매대’를 얼핏설핏 들여다보면서 까마득함을 느꼈습니다. 책잔치란 ‘책을 싸게 내다 팔아서 출판사로서는 재고정리를 하고, 읽는이한테는 적은 돈으로도 더 많은 책을 사도록’ 하는 일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을 즐기면 무엇이 좋고, 책을 사랑하면 어떻게 기쁘며, 책을 가까이하면 우리 삶이 얼마나 나아지는가를 신나게 느끼도록 해 주는 자리가 ‘책잔치’라고 생각합니다.

잔치가 끝난 뒤 사람들이 남긴 글을 살피면서, ‘인터넷 새책방 ㅇ 같은 데에서도 여느 때에 30퍼센트 할인을 해 주고 있는데, 이번 잔치에서 고작 20∼30퍼센트 할인만 해 주느냐’는 투덜거림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올해로 네 번째 치르는 책잔치인데, 앞으로도 이렇게 ‘깎아파는 재고 책 털이’에 그치고 말는지 걱정스럽고, 서울국제도서전도 ‘깎아파는 재고 책 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새로 꾸리며 당차게 선보인다는 책잔치도 똑같은 눈높이에서 헤매인다면, 우리 책마을이나 문화를 돌아볼 때 그지없이 슬픈 일이 아니랴 싶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어떤 물건이든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판다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까요?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아니 세계의 모든 사람이 무조건 많이 만들어서 쓰고 살면, 과연 이 지구가 견딜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돈이 많아서 물건을 많이 살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우리 사회는 예전보다 돈이 엄청 많아졌는데, 만약 돈이 많은 만큼 행복해진다면 지금이 훨씬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  (머리말)

그러고 보면, 요즘 사람들은 헌책방에 가서 책 한 권을 살 때 ‘헌책이니 한 권에 천 원이면 되지’ 하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새책을 살 때에는 ‘한 해만 지나면 인터넷 새책방에서 40퍼센트까지 깎아서 파는데’ 굳이 동네책방에 가서 온돈 다 치르고 살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동네책방뿐 아니라 큰책방에서도 ‘한 해 지난 책’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매대에서 거두어들입니다. 안 그러면 손님이 다 떨어집니다. 책을 보는 우리들은 책을 ‘속에 담긴 줄거리 받아들여 나 스스로 새로워지기’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싸게 장만할 물건이 될까’에 마음을 쏟습니다.

책은 수없이 넘쳐나는데, 이렇게 넘쳐나는 책을 가슴 깊이 기뻐하면서 살포시 껴안는 흐름은 깊어지지 못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이나 훌륭하다고 할 만한 책은 끊임없이 나오지만, 애써 나와도 꾸준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책이 책이 아니게 되고, 새로 나오는 번들번들한 물건만 책처럼 여겨지는 판입니다. 대학교 앞에서 인문학책을 다루는 조그마한 책방은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훌륭한 인문학책은 한 해만 반짝하고 파는 책이 아니라, 열 해 스무 해 쉰 해 백 해를 이어가며 꾸준하게 읽히고 곰삭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싸구려로 넘겨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읽을거리, 곧 마음밥이어야 할 인문학책인데, 몇 해 앞서 바뀌어 버린 도서정가제법에 따라서, 인터넷새책방은 값 후려치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고, 출판사는 책방에 넣는 할인률을 더 깎아야 하며, 이에 따라 출판사는 책값을 뻥튀기로 더 올려붙일밖에 없는 가운데, 정작 좋은 원고를 묶어낸 작가들은 제몫을 못 받습니다. 이렇게 되는 세상에서는 누가 돈을 벌고 누가 보람을 얻으며, 누가 즐겁게 될까 궁금합니다.

.. 그냥 재미나게 공부하면서, 1등 2등 가리지 말고 살 수는 없을까요? …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공부나 일이라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겠어요 ..  (18, 27쪽)

책을 읽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서 무엇을 얻고, 책을 읽어서 얻은 깜냥을 어떻게 펼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운동으로 그치기 일쑤입니다.

도서관을 만들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나 도서관에 어떤 책을 얼마나 갖추어야 하고, 이 도서관에 어떤 사람이 어느 때에 얼마나 찾아오도록 하느냐에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드뭅니다. 새벽밥 먹고 늦은밤 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시 노동자들한테 어떤 책을 어떻게 읽히도록 하는 책쉼터로 가꿀 도서관인가에까지 마음을 기울이자면 아직 머나먼 일이 될는지요.

유럽을 본따서 책마을이나 책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책마을이나 책도시가 관광상품인지, 세금 쓰려는 일인지, 참으로 그곳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빛과 소금이 되면서 우리 삶을 속속들이 돌아보면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도록 하자는 일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 먹고사는 데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무조건 많이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면 많이많이 행복해질까요?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말이에요 ..  (32쪽)

우리들 학력은 나날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높아지는 학력에 걸맞게 우리 슬기는 어느 만큼 깊어지고 있을까요. 많이 배우거나 얻은 깜냥을 서로서로 나누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들 살림살이는 차츰 나아집니다. 그러면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이웃과 함께 즐기려는 매무새 또한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요. 혼자 배부르는 일은 나쁘지 않을 테지만, 내 배는 터지도록 살이 찌는데 이웃사람은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굶고 있다면 어떠한가요.

학력은 높아지고 학교 오래 다닌 이들은 늘어나고 있어도, 사람들이 읽은 책은 너무 적습니다. 살림살이 번듯하고 집 평수 넓으나 집구석 어느 자리에도 책 놓는 자리가 따로 없기 일쑤입니다.

.. 혹시 아빠가 받는 월급에, 아빠가 회사에서 나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밥을 다 해 주었다고 엄마한테 주는 수고비도 들어 있을까요? 세상에 어떤 기업가가 엄마의 수고를 알아 줄까요? ..  (51쪽)

겉읽는 책이 아니라 속읽는 책입니다. 겉장이 떨어져도 줄거리가 달라지지 않는 책입니다. 겉장이 긁히고 생채기가 나도 줄거리가 다치거나 긁히는 일이란 없는 책입니다. 김치국물을 쏟고 라면국물이 튀었어도 알맹이가 달라지지 않는 책입니다.

껍데기가 온갖 빛깔로 아름답게 꾸며졌다고 하여 줄거리 또한 아름다워지지는 않는 책입니다. 멋진 꾸밈새로 엮인 책이라 하여 줄거리까지 멋지게 바뀌지는 않는 책입니다.

《햄릿》은 헌책방에서 2000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어도 《햄릿》이고, 새책방에서 1만 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어도 《햄릿》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헌책방에서 3000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든, 동네책방에서 9000원짜리 책으로 사서 읽든, 인터넷새책방에서 20퍼센트 깎아 7200원에 사서 읽든, 옛날 문학과지성사 세로쓰기판을 사서 읽든 똑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입니다.

.. 아무리 달러가 많아졌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땅이 병들었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우리가 마실 물이 구정물이 되었다면 미국 달러가 다 무슨 소용일까요? … 한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땅과 흙을 병들게 하면서 되는 것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번 사람은 좋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기 마련이랍니다. 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까지도요 ..  (138, 156쪽)

오늘날 지구자원과 지구환경에 눈길을 안 둔다고 하는 이는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린’을 말하고 ‘탄소세’를 말합니다. 그러나,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통틀어서 가장 안 팔리는 책은 ‘생태와 환경을 다룬 책’입니다. 몇 가지 띄엄띄엄 팔리는 책은 있으나, 생태와 환경을 다룬 책을 읽는 일이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고치도록 하는 일하고 이어집니다. 지식으로 머리에 넣는 환경책이나 생태책이 아닙니다. 몸바꿈으로 다스리는 환경책이나 생태책입니다.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을 알아가려는 까닭은 지식을 넓히려는 뜻이 아니라, 내 삶터와 내 둘레 삶터를 제대로 깨달아 참답게 살려는 뜻 때문입니다.

입으로만 기름값 걱정과 이라크전쟁 근심을 하기보다, 나부터 스스로 자가용을 버리고 자전거와 두 다리를 사랑하려는 매무새를 단단히 다스리고 더 나은 길을 찾고자 읽는 환경책과 생태책입니다. 아직 잘 모르는 대목을 깨우쳐서 스티로폼 농사라도 지으며 내 밥상을 고치겠다고 애쓰는 길잡이인 환경책과 생태책입니다. 귀농을 하건 시골에 뿌리내리건, 사람이 사람다이 사는 길을 헤아리면서 남이 아닌 내가 먼저 내 삶을 새로 일구는 힘을 얻으려고 들추는 환경책과 생태책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지식이 아닌 실천으로 읽어야 하는 환경책과 생태책인 터라, 다른 어느 책보다 덜 읽히거나 안 읽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읽었어도 지금으로서는 자기 스스로 무엇 하나 바꾸고픈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읽다가 접어두거나 아예 등돌리게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더 많이 도시물질문명을 누리고 싶고, 더 빨리 자가용을 몰면서 놀고 싶으며, 더 큰 아파트에서 아토피에서 벗어나 부동산값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환경책과 생태책은 우리 품에서 자꾸자꾸 멀어지지 싶습니다.

차가 다니지 못하게 막으면서 벌인 즐거운 잔치날이었으나, 잔치상에 오른 먹을거리는 '싸게 파는 책'을 넘어서지 못하고 만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책 문화가 가야 할 길이 참 멀다고 새삼 느낍니다.
▲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차가 다니지 못하게 막으면서 벌인 즐거운 잔치날이었으나, 잔치상에 오른 먹을거리는 '싸게 파는 책'을 넘어서지 못하고 만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책 문화가 가야 할 길이 참 멀다고 새삼 느낍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2) 지구 살리기와 미국

.. 쌀을 모두 미국에서 사다 먹으면 미국 쌀은 지금보다 더 싸질까요, 비싸질까요? ..  (63쪽)

지구를 살리는 일은 우리를 살리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를 살리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고 떠나는 참뜻을 깨닫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한테 한 번 주어진 고운 목숨을 깨닫는 일은,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을 싫어하고, 미국 삶을 거스르며, 미국 문화는 손사래치고 싶습니다. 끝없이 써대기만 하는 미국 물질문명은, 이러한 물질문명을 지키고자 끝없이 새 식민지를 뚫어야 하고, 새 식민지를 뚫자면 전쟁무기를 어느 나라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내야 하며, 이 전쟁무기를 새로 쓰고 또 만들어야 경제발전이 되는 얼거리로 짜여 있습니다. 미국은 석유만 노리지 않습니다. 석탄도 노리고 주석도 노리고 금도 노립니다. 커피도 노리고 오렌지도 노리며 바나나도 노립니다. 밀을 노리고 보리를 노리며 쌀을 노립니다. 옥수수와 콩과 감자를 노립니다. 얼마 앞서부터 이 나라에 들여오게 된 소고기는 미국이 온누리를 집어삼키면서 미국사람들 물질문명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려는 발버둥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소고기에 앞서 밀이 들어왔고, 밀에 이어 쌀이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곡식과 고기 가운데 미국에서 유전자조작을 한 곡식 아닌 곡식은 거의 없고, 미국에서 거느리는 농장에서 키운 고기 아닌 고기 찾기가 어렵습니다.

의료 민영화만 미국을 본따지 않습니다. 학교 틀거리도 미국을 본땄습니다. 보험 틀거리도 사회 틀거리도 문화 틀거리도 송두리째 미국을 따르고 있습니다. 겉으로야 ‘미국말 함께쓰기’를 안 할 뿐이지, 어쩌면 ‘미국말 함께쓰기’를 나라에서 정책으로 밀어붙일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영어과외와 영어학원과 영어학교와 영어마을 만들고 꾸리고 이끌고 밀어넣고 하는 데에 바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혹시 궁금했던 적 없나요? 공주와 왕자는 일을 조금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늘 좋은 옷을 입고 비싼 음식만 먹는지 말입니다 ..  (36쪽)

영어교재는 불티나게 팔립니다. 영어학원은 보물단지와 같습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영어교육 안 받은 사람 드물며 토익 토플 시험 안 치른 사람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영어로 된 문학을 가슴 깊이 새기고, 영어로 된 인문학을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낸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뿌리〉를, 〈황무지〉를, 〈모비딕〉을, 〈대지〉를 영어로 된 책으로 읽으면서 가슴벅참을 느끼는 이들은 얼마나 될는지요. 〈달과 육펜스〉를, 〈빨간머리 앤〉을, 〈산체스네 아이들〉을, 〈초원의 집〉을 영어로 된 책으로 읽으면서 가슴뿌듯함을 느끼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는지요.

.. 만약에 자전거 길이 많이 생겨서 시골이나 도시 할 것 없이 자전거로 다닐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자동차가 필요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자동차가 덜 팔리겠지요. 자전거 한 대에 10만 원이라면 자동차는 아무리 싼 것도 5백만 원은 넘습니다. 요즘엔 천만 원, 2천만 원 하는 자동차가 더 흔하기도 하지요. 그럼 자동차가 안 팔리면 누가 제일 싫어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회사하고, 휘발유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가 가장 싫어할 것입니다. 자동차 한 대 파는 게 자전거 30대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남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자동차를 많이 팔려면 도로는 될수록 많이 만들어야겠네요! 또 2차선은 4차선으로 … 결국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나 휘발유를 팔아 돈을 버는 회사는 도로가 자꾸 넓어지길 바랄 거예요. 해가 바뀔수록 도로가 자꾸 넓어지는 걸 보면 그런 회사들이 원하는 대로 척척 되어 가고 있는 거지요 ..  (95∼97쪽)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미국을 알아도 물위로 드러난 빙산 쪼가리만 알 뿐입니다. 미국은 무엇을 바라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고 하는지, 미국은 무엇을 생각하면서 제 나라 군대를 이 땅 곳곳에 수만 사람씩 보내 놓고 있는지, 찬찬히 꿰뚫어보는 눈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 안방에 미국 연속극이 흘러들고, 우리 영화관에 미국 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걸리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마음결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가 왜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해야 하는지, 우리가 왜 미국에서 수입을 많이 하고 있는지, 문화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와 정치 모두를 톺아볼 줄 아는 눈썰미가 너무 없습니다.

미국을 바로보지 못하니 지구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국을 옳게 느끼지 못하니 지구를 걱정하지 못합니다. 미국 참모습을 벗겨내지 않으니 지구 살리는 길을 찾을 엄두조차 안 냅니다.

시골 논밭을 밀어내고 올려세우는 아파트는, 참말로 시골 살림살이를 낫게 해 줄까 궁금합니다. 논밭을 일구는 농사꾼들도 저 울타리 높은 아파트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논밭에 아파트는 시골 논밭을 밀어내고 올려세우는 아파트는, 참말로 시골 살림살이를 낫게 해 줄까 궁금합니다. 논밭을 일구는 농사꾼들도 저 울타리 높은 아파트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3)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은 초등학교 높은학년쯤 되면 읽을 수 있습니다. 경제학 교수 강수돌 님이 어린이와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아주 쉽고 낱낱이 풀어낸 ‘경제 아닌 살림살이’ 이야기책입니다. 책이름에는 어쩔 수 없이 ‘경제’라는 낱말을 넣었지만, 정작 책장을 넘기면 ‘경제’도 아니요 ‘돈벌이’도 아닌, ‘우리 살림살이 가꾸기’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 우리 나라의 옛 어른들은 농약을 치지 않고 채소도 가꾸고 과일도 심어 먹었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먹고, 식구들이 먹고, 이웃하고 나눠 먹으려고 농사를 지었으니까요. 그런데 시장에 내다 팔려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약을 치게 되었습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돈을 버니까 그랬던 거지요 ..  (70쪽)

우리한테 있던 우리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입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으나 제대로 몸으로 못 옮기는 일을 일깨워 주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입니다. 힘있는 사람이 정치를 잘 펼쳐서 고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힘여린 이들이 스스로 나설 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세상임을 알려주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입니다.

괜히 대놓고 ‘지구를 구하는’이라는 말을 앞에 내건 책이 아닙니다. 참말 손쉽게 깨닫고 펼치고 지키고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지구 살리기’를 하자면서 외치는 책입니다. 대단한 사람이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니며, 어른만 나설 일이 아니며, 경제에 맡길 일이 아닌 ‘지구 살리기’임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누구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지구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힘을 내어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로워지자고 이끌어 주는 이야기책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글쓴이 강수돌 님부터 먼저 길을 나서겠다고 다짐하면서 당신 삶을 오롯이 녹여낸 이야기책입니다.

..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같이 일해서 먹고살 적에는 가난한 사람하고 부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식구처럼 살았거든요 ..  (165∼166쪽)

책을 덮고 여러 날 동안 푸근해집니다. 얼굴 모르는 길동무가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애쓰고 있구나 하면서 흐뭇하게 웃음이 나옵니다. 부산 나들이에서 도움을 준 아주머니한테 책을 소개해 주면서, 나중에 우리 아이가 자라면 즐겁게 건네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에 다시 한 번 싱긋 웃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강수돌 지음, 최영순 그림, 봄나무(2005)

이 책의 다른 기사

더보기
진짜 '경제'란 무엇인가

태그:#책읽기, #경제학, #인문학, #어린이책, #청소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