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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이념본색'을 드러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이념보다는 실용 위주의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고, 정권 초에도 '창조적 실용주의'를 강조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우경화 이념·정책으로 빠르게 중심축을 전환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을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창조적 실용주의'에서 '통합적 자유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국정철학 등이 없다보니까, 궁극적으로 (국정운영의) 베이스가 되는 철학적 가치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며 "현재 여러가지 국정철학에 대한 얘기를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형준 기획관은 "'창조적 실용주의'는 인수위 때부터 국정철학이나 가치로 제시된 게 아니고, 행동규범이나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말자'는 논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경축사에서 '향후 60년은 성숙한 자유의 시대가 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며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국정철학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형태의 담론으로 만들지, (또한) 공식적으로 표명할지 등 아직까지 어느 것도 정해진 게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앞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지난달 29일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향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이념으로 '참된 산업화와 성숙한 민주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인수위 때는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로"

 

이명박 정부가 '실용'에서 '우경화' 이념·정책으로의 전환에 나선 것은 집권초 정권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촛불정국과 무관치 않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된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은 무원칙한 실용주의가 낳은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지지기반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에도 지향점이 뚜렷하지 못한 국정이념은 국정운영의 총체적 부실로 연결됐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보수적 성향 지지층을 묶어낼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파적 아젠다인 (신)자유주의 기치를 내세우려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고민은 청와대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철학적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뉴라이트 진영 등 외부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23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주최로 열린 '공기업 개혁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는 "오만함과 사려깊지 못한 모습으로 공공개혁에 대한 반대여론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발제자인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의 국민의 선택은 '우파적'이라기보다 '반(反) 좌파적'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승리에 취한 나머지, 좌파정권 10년 동안 조직화되고 기득권화된 반대세력의 존재를 간과했고, 정책의 방향성이나 국정운영의 철학도 분명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 정책실패는 숙명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특히 "이명박 정부는 '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는 등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다"면서 "시장주의를 표방했지만 정책사고는 반(反)시장적인 모순된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종부세 개편, 교과서 개정, 국가보안법 수사

 

'통합적 자유주의'를 기조로 한 '우경화' 흐름은 이미 경제 분야를 비롯해 교육·언론·입법·시민단체 등 전방위 양상을 띠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념전쟁을 연상케하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논란과 관련, "부자를 위한 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잘못된 세금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 주안점은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안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부세 무력화를 주도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대못을 박으면 안 되고, 고소득층에 대못을 박는 건 괜찮은 것이냐"고 말해, 스스로 '부자감세'임을 시인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국민 1%를 위한 정책을 편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종부세 개편안이 "이명박 정부가 강남 부동산 부자들에게 던져주는 선물의 완결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됐던 부동산 세제가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올해 재산세는 동결됐고,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도 대폭 깎아줬다. 게다가 상속과 관련된 증여세까지 대폭 삭감해주기로 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서민·중산층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부패·비리 경제인들에 대한 대규모 사면을 보며 좌절감을 맛봤다. 강남 부자만을 위한 세제개편안, 그린벨트 해제 등 아파트 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 띄우기도 이들과는 먼 얘기다. 규제완화의 산물인 미국발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린 규제를 완화해도 된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낙관론을 펴는 정부측 태도에 국민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보수진영은 교과서 우경화 등 교육 분야에서의 이념전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국방부는 불온서적 발표에 이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주 4·3사건을 '좌익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요청했다. 통일부는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화해협력정책'으로 교체하는 등 교과서 58곳을 수정하도록 주문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국회 상임위원장단 초청 만찬에서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누가 보더라도 중립적이지 못한 표현은 시정돼야 한다"는 강한 의지도 피력했다. 만찬에 동석했던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자칫 이념갈등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나라당도 교과과정 전반의 개편을 위한 교과위원회 설치를 검토 중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조전혁 의원은 최근 국감자료를 통해 전국 초·중·고의 전교조 소속 교사 현황을 공개했고, 정두언 의원은 전교조의 교육정책·인사권 개입 가능성을 지적했다. 신지호 의원은 지난달 전교조에 대한 정부 지원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의 우경화는 입법 과정에서도 구체화 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국회 개원을 앞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좌파법안 1400여개를 뜯어고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실제 한나라당은 새정부 출범 첫 정기국회에서 국방개혁2020, 신문법·언론중재법, 사학법, 종부세법 등 소위 '좌편향 법안' 300여개를 손질해 '반시장적' 요소를 제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우경화'는 편가르기를 통한 세력화 양상을 띠고 있다. 검찰은 촛불집회를 주도한 핵심 단체인 참여연대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한 환경운동연합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과 함께 불법시위 전력 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 중단·회수 입법화, 방송통신위원회의 집회·시위 참여 시민단체 조회 등이 진행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이 대거 청와대와 내각, 공기업 등에 포진한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여권에서는 진보진영처럼 보수진영의 각종 단체들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조직화·세력화 하는 작업이 추진 중이다.

 

"철지난 이념화의 부작용으로 노동과 교육, 반미친북 정서를 초래했고, 획일적 평등주의와 반(反)부자 정서도 문제"라는 박재완 수석의 주장은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떼법"과 연결된다. 최근 시위대에 대한 집단소송제·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 공권력 강화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기다렸다는 듯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통한 공안정국을 조성, '과잉 충성' 논란을 낳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지난 27일 실천연대 사무실과 김승교 상임대표의 자택 등 2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단체 간부 7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앞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운영위원장인 오세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등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해 수사했다. 그러나 법원은 혐의 내용에 대한 소명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고, 경찰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보주의자 이명박'?... 그의 본색은

 

이명박 정부의 '통합적 자유주의' 강공드라이브는 야권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보수와 기득권 등 특정 계층만을 위한 이념정책"이라는 반발을 불러왔다. '통합적 자유주의'가 오히려 통합을 후퇴시킨다는 지적이다. 당장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이번 국정감사를 '이념국감'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민주당 국정감사 TF팀장을 맞고 있는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한나라당 내 뉴라이트 의원들과 국방부·통일부 상임위는 느닷없이 역사교과서 수정을 요구하는 등 이념논쟁을 선동하고 심지어 실패한 미국 금융정책을 덧씌워 색깔론을 투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때마침 청와대가 실용철학을 버리고 자유주의 강화를 통해 수구우익들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기자들에게 본인을 '진보주의자'라고 소개했던 이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좌파를 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선진화가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권의 한 관계자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려다 자칫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가보다 정권을 위한 '이념전'은 소모적 논쟁과 국가적 분열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내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은 "경제 살리기 하겠다는 정권이 이념전선의 확대에 몰두하는 모습은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여권에서조차 "무능한 우파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좌우대립 정책"이라는 자조섞인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경화 이념·정책 보다는)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을 뽑았던 중도성향의 세력을 잡기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태그:#창조적 실용주의, #통합적 자유주의, #교과서 우경화, #종부세 무력화, #국가보안법 과잉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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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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