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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종합부동산세 혐오증'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월 장관 내정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그는 자신도 종부세 피해자라면서 "노무현 정부 시작할 때보다 (가지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3배 정도 뛰었다. 10년 동안 야인으로 있으면서 소득은 없는데 종부세만 냈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 7월 장관으로서 국회에 나와서도, "조세제도를 부동산 정책에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듭 '소신'을 밝혔다. 이어 한나라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종부세를 무력화하는 법안이 잇달아 제출됐고, 정부 내부에서도 종부세를 손보는 작업이 진행됐다.

 

지난 23일 결국 '강만수표' 종부세 개편안이 열렸다. 과세기준 뿐 아니라 세율까지 대폭 완화된 내용이었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종부세의 사실상 폐지였다. 물론 후폭풍도 거세다. 극소수 부동산 부자만을 위한 감세를 대다수 중산층이 떠안게 된 것이다.

 

11년 전 강만수 차관 "토지불로소득과 투기소득 없애자"

 

일부에선 '강 장관의 종부세 혐오증이 그대로 뭍어나 있다'는 인식부터 '강 장관이 총대를 메고, 현 정부의 지지층 복원에 나섰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 흥미로운 글 하나가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7년 3월 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이다. 글쓴이는 강만수 당시 통상산업부 차관. 이 글을 보면, 현재의 강만수 장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두 얼굴의 땅'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는 토지 사유화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경제는 어려운데, 왜 집값과 땅값은 계속 올라야 하는지, 미국과 일본의 집값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데 왜 우리나라 땅값은 떨어지지 않는지 등에 강한 문제 제기를 했다.

 

강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19세기 대표적인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를 언급하면서 "지대에 단일 조세를 부과해 토지소유에 따른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방지하고, 근로자와 자본가에 대한 세금을 폐지해 진보 속의 빈곤을 퇴치하자"는 그의 사상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의 칼럼 일부분.

 

"경제는 어려운데 왜 집값은 올라가야 하는가. 언제까지, 얼마까지 땅값은 올라야 할 것인가.이미 우리나라의 땅값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최근에 땅값이 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땅값은 언제나 떨어질까.

 

(중략)

 

땅과 물과 공기는 조물주가 창조해 우리에게 값 없이 주신 것인데 물과 공기는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서 땅만은 가는 곳마다 임자가 정해져 있을까. 땅 때문에 인간을 죽고 죽이며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얼마나 많은 불평등의 속박과 고통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한을 삭이며 한숨을 쉬어야 했던가.

 

요지의 땅 몇백평을 물려받은 사람은 자손대대로 걱정없이 잘 사는데 땅 한평 물려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 일하고도 변변한 집 한채 마련 못하는 실정이다. 자본주의의 꽃인 뉴욕의 맨해튼에는 고급아파트가 즐비하고 물자가 넘치는데 한구석 할렘에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가득하고 지하철역안의 따뜻한 곳은 거지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중략)

 

19세기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는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경제가 진보하는 속에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를 토지소유의 불평등에서 찾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라는 단일세 제도를 제안했다.

 

헨리 조지는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진보속의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사적소유에서 공동소유로 대치해야 하지만 이것은 격렬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기 때문에 지대(地代)에 단일조세를 부과함으로써 토지소유에 따른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방지하고 근로자와 자본가에 대한 세금을 폐지해 진보속의 빈곤을 퇴치하자고 제안했다.

 

올해도 땅값이 오른다는 우울한 뉴스에다 대낮에 골프장이 차고 해외관광 예약이 넘친다는 얘기를 듣고 진보와 빈곤과 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2008년의 강만수 장관, 사실상 종부세 폐지

 

이후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강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맞이하게 됐고, 98년에 공무원 옷을 벗게 된다. 이후 그의 말대로 강 장관은 야인생활을 하면서도,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등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특히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강 장관은 종부세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지난 2004년 당시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이었던 강 장관은 11월 17일자 <한국경제>에 '질투의 경제학, 종합부동산세'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강남에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이 투기를 했나 가격을 올렸나? 이사하자니 무겁게 올린 양도소득세가 무섭고, 눌러 살자니 종부세가 버거우니 어쩌란 말인가? 특정지역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벼락 세금을 세금이라고 생각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종부세를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질투해서 생긴 세금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같은 종부세에 대한 강 장관의 거부감과 불쾌감은 10년만에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후, 그대로 입법 예고안에 반영됐다.

 

"땅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불평등의 속박과 고통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한을 삭이며 한숨을 쉬어야 했던가"라던 11년 전 그의 탄식 속에 담겨있던 '부동산 공개념'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디로 갔을까? 세월 탓일까, 자리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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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종부세, #강만수, #부동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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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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