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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었다. 눈이 떠졌다. 어제 춤을 열심히 춰서 그런지, 맥주 한 병 때문인지 인도인 친구들과 장은 계속 자고 있었다. 혼자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이미 낙타친구들은 깨어있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낙타를 보며 자연 흐름에 거슬러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물을 길러 세수를 하고 어제 남은 말똥에 구운 빵으로 가볍게 아침을 때우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짐을 다시 챙겨 낙타 뒤에 싣고 올라탔다. 사막의 짧았던 밤이여, 안녕! 잊지 않을게.

 

출발하기 전에 소년들에게 돈을 줘야했다. 그냥 돈 주기는 그래서 장은 소년의 악기를 샀다. 300루피를 주고 산 악기를 멋들어지게 뒤에 메고 푸쉬카르 시내로 향했다. 정성껏 잘해준 낙타몰이꾼에게 나는 팁과 함께 메고 다녔던 손가방을 주었다. 디자인도 세련되었고 튼튼한 가방이라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장은 낙타몰이꾼이 어제부터 계속 탐을 냈던 시계를 줬다.

 

낙타몰이꾼과 헤어지고 씻은 뒤 잠깐 휴식을 취했다. 밖으로 나와 거리에서 파는 튀김 음식들을 사먹고 거리를 산책했다. 똘똘한 부자 집에서 식사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많아 천천히 구경했다. 단골 라시 집에 들어가서 또 라시 한잔을 마셨다.

 

천천히 둘러보고 걷다가 아제를 만나 이제 우린 떠난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아제 맞은편에 디팍이란 친구가 마사지를 받으라고 권한다. 자신이 직접 한다고 하면서 넉살 좋게 차근차근 설명을 잘하였다. 그동안 여행피로도 있고 가격도 아주 비싸지 않고 방명록들을 보니까 많은 한국인들이 괜찮다고 적어서 받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푸쉬카르에서 돌아다니다보면 꽃을 주면서 호수에다 띄워 보내는 의식(뿌자)을 치르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푸쉬카르 첫날, 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꽃을 받았다. 그래서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더니 장은 꽃을 준 남자에게 돌려주면서 오늘 말고 다음에 하자고 둘러대었다.

 

그렇게 애써 외면했던 그 인도인을 다시 또 만나 것이다. 작은 푸쉬카르 동네라 그동안 3번 정도 '다음에, 다음에' 했기에 그 인도인은 은근히 뿔나 있었다. 그러면서 장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돈을 요구하였다. 장은 어이없어 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장은 처음에 돈을 줬는데 인도인은 액수가 마음에 안 드는지 '틱틱' 거렸다. 나는 끼어들지 않고 디팍과 앞에서 옷가게를 하는 젊은 친구와 시시덕거리며 구경을 하였다. 그 인도인은 커다란 덩치로 '앞으로 한국인들에게 잘 안 대해줄 거'라고 유치한 협박을 하고 장은 그것에 화가 나서 계속 논쟁을 벌였다.

 

디팍 동생도 와서 구경하다가 상황이 일단락되어 마사지를 받으러 침대가 2개 있는 허름한 방으로 들어갔다. 분홍빛깔의 야시시한 분위기가 처음에는 선뜻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옷을 벗으라고 하여 쑥스러웠지만 속옷만 남기고 다 벗고 침대 위에 누웠다.

 

정성들인 디팍과 디팍 동생의 마사지에 온 몸이 나른해졌다. 그동안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마사지를 받은 거 같았다. 원래 흥정한 가격보다 봉사료를 요구하기에 '그러면 그렇지'하면서도 기분 좋게 팁을 더 주었다.

 

피로가 몰려왔다. 있는 힘을 다 짜내 길을 잘 찾아 숙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쓰러져 잤다.

 

눈이 떠졌다. 부자와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계를 봤다. 벌써 오후 1시 반이었다. 그냥 잘까 고심하다가 언제 오는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부자 식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르자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장을 깨우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가볍게 씻고 밖으로 나갔다.

 

부자의 식구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잘 차려입은 부자 아버지도 있었다. 부자는 어제 장이 준 1000루피로 오늘 학교를 갔다 왔다고 한다. 옷을 잘 차려입은 부자가 예뻤다. 그리고 자기 동생들과 사진을 찍으며 아직 9살답게 노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부자 어머니는 땅에 설치된 화덕에서 짜파티(인도 서민 음식, 밀가루전병)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그 동안 부자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다. 부자 아버지는 비만 오면 천막이 다 새고 언제 무너질까 무섭다고 하셨다. 천막을 살펴보니 허술하였다.

 

부자 아버지는 천막에서 철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 누가 보내준 편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잠금장치로 닫혀있었고 열쇠가 없었다. 부자 아버지는 돌로 잠금장치를 부수려고 애썼다. 그러더니 끝내 잠금장치를 열고 편지를 보여주셨다. 편지는 미국의 존 굿맨(John goodman)이란 사람이 부자를 만나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걸 마음에 두고 미국 돌아가서 5000루피를 부쳤다는 내용이었다.

 

이 5000루피를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받았다고 한다. 그 돈으로 6개월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손수레꾼인 아버지의 수입이 너무 적기에 아마 대부분의 돈이 생활비로 쓰였을 거라 짐작이 되었다.

 

달과 함께 자파티를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 푸쉬카르를 떠나 아즈메르로 가야할  때가 되었다. 부자는 동생들과 뭘 사러가서 아직 오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다. 부자 부모님에게 어렵고 힘들어도 교육 잘 시켜주라고 당부하고 장은 또 1000루피를 꺼내 손에 쥐어주고 부자의 우편주소를 받아 적었다. 한국 돌아와서 작지만 후원을 할 참이란다. 아직 눈이 풀린 채 상태가 좋지 않았던 장이지만 기특한 행동에 어깨를 두드려주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돌아가는 길에 다행히 부자를 만났다. 부자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장은 부자에게 인사를 하고 포옹을 다정하게 해줬다. 지금은 힘들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이웃들을 돕고 사는 사람이 되라고 덕담도 하는 장이 멋져 보였다. 떠나기 전에 함박웃음을 지닌 소년이 파는 라시 가게에서 라시 한잔을 마지막으로 마시고 아즈메르로 가는 차에 몸을 맡겼다.

 

기막히게 평온한 푸쉬카르 호수와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낙타 사파리, 그리고 총명한 소녀 부자, 신성한 땅 푸쉬카르에서 많은 추억을 감사하게 안고 델리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눈을 감았다.


태그:#천막, #빈부격차, #인도여행, #양극화, #푸쉬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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