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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가산동에 위치한 기륭전자 농성장에는 매일 저녁 투쟁승리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김소연(오른쪽 앞) 분회장의 단식 77일째인 지난 26일, 많은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채혜원 기자] 지난 2005년 당시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 64만1850원을 받으며 일했지만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던 200여 명의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해고통지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치 마시고 궁금하신 사항은 전화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복직투쟁이 어느덧 3년을 넘겼다. 반드시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희망 하나 뿐이었는데, 아직도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긴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적힌 빛바랜 깃발이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본사 앞 농성장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투쟁 1099일째, 그리고 목숨을 건 단식 77일째를 맞은 지난 8월 26일. 저녁 7시가 되자 촛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여름의 끝자락, 어느새 저녁이면 차가워지는 아스팔트 위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대학생, 아이들과 함께 나온 엄마들, 조합원, 신부님과 수녀님 등 다양한 시민들이 꾸리는 '기륭전자 투쟁을 지지하는 촛불문화제'다.

 

병원에 후송됐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농성 현장으로 돌아온 김소연 분회장도 자리에 앉았다. 의학적 한계를 넘어서 폐에 물까지 찬 상태지만 단식은 끊지 않은 채 병원에서 강제로 놓은 링거에 몸을 의존하고 있었다. 행여 부러질세라 그의 작은 어깨를 만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수많은 시민들이 "힘내라"는 말을 건넨다.

 

김 분회장은 화답이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단식 80일째가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한 번 병원을 박차고 농성장으로 돌아와 단식농성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결의를 보여야 하는 현실에 눈물이 앞섭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 많은 시민의 참여를 통해 희망을 잃지 않고 꼭 현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희망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김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이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농성장을 굳건히 지킨 이들, 바로 '기륭전자 릴레이 동조단식단'(cafe.daum.net/kirungRelay) 회원들이다.

 

온라인 카페에서 만나 지난 8월 6일부터 시작된 이들의 릴레이 단식에는 지금까지 150여 명의 시민이 참혀했다. 퇴근 후 찾아와 밤새 단식하고 출근하는 이들도 있고, 며칠간 머물며 단식에 동참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무엇보다 현장에 오지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동참하는 이들의 참여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지금도 카페에는 '3일간 점심단식 참여합니다', '이틀 자율단식 참여합니다', '매주 월·화 자율단식 재참여합니다'라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두 아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농성장에 들르는 배주영(33)씨는 지난 11일 현장단식에 참여한 이후 일상에서 계속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한 끼 단식하기, 주말 이틀 단식하기 등 방법은 다양하다.

 

그는 "최근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해 복직투쟁 중인 기륭 사안을 알게 돼 단식에 동참했다"며 "아이들을 위해 촛불을 든 것처럼 비정규직 현실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길 바라며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곧 개강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들의 릴레이 단식도 이어지고 있었다.

 

1박 2일 단식에 참여 중인 새내기 대학생 이찬미(20·경희대)씨는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교과서 내용과 달리 너무나 불합리한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들의 현실 앞에 단식을 안 할 수 없었다"며 "뭐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답답해서 하루 단식 중이지만 80일 가까이 단식하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고 심정을 전했다. 

 

'우리가 기륭이고, 기륭이 우리다'라며 두 번째 열흘 단식을 시작한 에세이스트 김현진씨는 지난 7월 29일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노동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해서다. 그는 여러 곳에 도움을 청했고 문학동네, 부키, 청림출판, 파란미디어 등 여러 출판사와 시민들이 도움을 줬다.

 

김현진씨는 "벼룩시장을 연다고 하자 자신이 갖고 있는 옷, 책, 물품들을 보내겠다는 시민들의 연락을 받으며 다시 한 번 희망을 봤다"면서 "사진작가 이연씨와 함께 기륭투쟁을 영상으로 담아 외국에도 알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이어 진행된 천주교 시국미사에서 김정대 예수회 신부는 "우리의 몸 한 곳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느낄 수 있듯이 하나의 유기체인 사회가 힘없는 자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이 우리 모두의 문제인 만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륭전자 투쟁이 반드시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긴 말이었다. 

 

눅눅한 6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는 때늦은 진달래처럼, 3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저물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신념과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 하나로 말이다.

 

KTX 여승무원 '벼랑 끝 선택'... 1000일 넘긴 여성 비정규직 사태

"대통령이 정규직 복직 결단해야"

 8월 27일로 복직투쟁 913일을 맞은 KTX 여승무원들은 이날 45m 높이의 철탑에 오르는 벼랑 끝 선택을 했다.

KTX와 새마을호 여승무원 5명이 지난 8월 27일 새벽 5시 45m 높이의 서울역 조명철탑에 올랐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에 나선 지 이날로 KTX 승무원들은 913일,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600여 일. 그동안 6곳의 점거농성과 두 차례의 단식, 수차례의 천막농성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이고, 지난 8월 24일 서울역 농성장에서도 쫓겨난 뒤 갈 곳도, 할 수 있는 투쟁도 없어진 여승무원들이 결국 고공철탑 투쟁이라는 ‘벼랑 끝 선택’을 한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이 3년을 보내고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27일 투쟁 1101일 단식 78일째를 맞았고, 이랜드뉴코아 여성 비정규직 해고자들도 복직투쟁을 시작한 지 500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숱하게 추진된 협상은 모두 결렬됐고, 정부도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투쟁은 최장기에 접어들 전망이다. 

 

지난 7월 취임한 강경호 코레일(전 철도공사) 신임 사장은 "제3의 자회사인 카페열차의 판매원으로 고용을 알선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은 직업 알선소가 아니라 공공기관이다,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협상은 결렬됐다.

 

지난 6월 26일 대법원은 기륭전자가 아닌 파견회사가 이들을 해고했으므로 기륭은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고, 기륭전자는 27일 '기륭전자 임직원 및 노사협의회 일동'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해 "지난 3년 동안 불법시위로 업무방해를 하는 등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풍전등화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기륭전자가 정치집단화의 장에서 벗어나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이미 사측 입장에 무게중심을 실었다. 임동희 노동부 노사갈등대책과 서기관은 8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사측이 수용하면 법을 무시하는 투쟁 지향적이고 잘못된 노동운동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노동부는 사측이 정규직 복직 결단을 내리도록 제 역할을 하고, 국회는 불법파견과 2년마다 해고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의 정규직 복직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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