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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고법의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대법원 앞 기자회견

2004년 6월, 당시 대광고 학생회장이던 강의석군이 45일간 단식까지 하며 '예배 선택권'을 주장한 것은 수십 년간 금기에 가까웠던 공공영역의 '종교 강제의식'(예배·법회 등)을 인권차원에서 제기한 특별한 사건이었다.

 

고등학생이 문제를 제기했기도 했지만, 학내방송을 통해 선언한 지 열흘 만에 퇴학 처분을 내린 학교 당국의 '일사불란한 결정'이 주목을 받았고, 또 종교 교사이면서 목사였던 류상태 선생의 감동적인 제자사랑이 사회적 성찰을 만드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교권력과 결합된 사립학교가 어디까지 전횡을 휘두를 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사례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과 내용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2007년 10월 대광고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종교의식 강요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강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종교사학의 종교교육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와 학습권이 선교의 자유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종교문제로 식상하고 신뢰감을 잃은 국민들에게 모처럼 한 가닥 희망을 던져준 역사적 판결이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8일 고등법원은 '학생인 원고의 자발적·자주적인 의사가 충분히 존중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행사나 의식 및 수업이 실시된 동기 내지 목적, 기독교 학교로서의 전통 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원고의 행복추구권, 신앙의 자유 내지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회적인 허용한도를 초과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선고했다. 

 

판결 차이의 핵심은 강제성 여부다. 원심은 "기본권의 중대성과 고등학생들이 미성년자로서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감안할 때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서 곧바로 동의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본 데 반해, 항소심은 "입학 당시 선서를 해서 학칙을 준수하기로 했고, 고2까지 별다른 의사표현 없이 참석했으므로 강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반대나 항의 표시가 없으면 자동적 동의로 간주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의사결정권과 인권을 심각히 훼손시킬 무리한 주장이다. 더구나 학교 선택권이 없고, 종교를 이유로 전학을 갈수 없으며, 주소를 옮기는 등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

 

법원이 예민한 종교인권 문제에 세심한 배려 없이 독실한 개신교인 재판장에 사건을 배정한 사실은 문제다. 해당 판사는 한 종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양심에 반하지 않고 법률에 근거해 판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장인 곽아무개 판사는 대광고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교단과 비슷한, 장로가 중심이 된 소속 교회의 장로이며, 통일선교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심취해 있는 판사가 타종교인의 심적 고통과 종교인권을 깊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신의 종교를 위해 결론은 미리 내려놓고 궁색한 변명을 찾으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광학원과 대광학원을 옹호하는 법률가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와 바울의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보편성이 아닌 권력의 논리이며, 로마제국의 세속적 정치논리에 닮아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강의석씨가 입학 당시 기독교 교육과 함께 모든 교과교육을 충실히 받겠다고 선서하였고 피고 대광학원의 종교의식과 종교교육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식이 포함된 각종 학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점을 근거로 원심을 파기했다.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은 법률가라면 강의석씨가 했다는 입학 당시 선서가,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리 침해적 강요행위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신념은 변할 수 있다.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개종은 불가능하므로 미션스쿨의 설립 의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참, 역설적이다. 그러나 위법적 선서행위가 오히려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로 제시된 것을 보면, 한국 법원의 수준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결혼할 때 부부간에 성적 결합이 있을 거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부부간에 강간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판례에 공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년자인 남녀가 부부가 되면서 성적 결합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성행위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서로의 자발적인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동의도 그런 자발성을 묵시적으로 전제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식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다. 그런 걸 미리 서약서를 받는다고 침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약서를 받는 행위에 종교를 강제할 의사가 숨어 있었다면 그것이 불법인 것이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머릿속 세계관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강의석씨는 한 번도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부정하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다만, 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학생도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므로 "학생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강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현재 대광고를 비롯한 일부 기독교재단의 학교는 '특정종교예식을 전체 학생에게 제도적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이것을 '종교교육을 할 자유'와 혼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도 존중받아야 하는가? 양쪽의 자유가 모두 충족되려면, 학교에는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주되 학생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강의석씨 사건을 맡을 대법관 재판부에 김황식 대법관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비극이다. 김 대법관은 2005년 말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부적절한 인물로 평가 받았었다. 대학채플을 패스하지 않으면 졸업장을 주지 않는 학칙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인물이다.

 

종교자유에 반하는 대표적인 판례를 만든 장본인이 주심 대법관이라도 된다면 어떤 과정이 일어날까, 본안에서 제대로 심리라도 할까 걱정된다. 그는 이미 2007년 5월 상지대 판례를 주심으로 맡아 사립대학의 민주화 노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이다.

 

다행인지 또 다른 곳의 불행인지 지난 주부터 감사원장 후보자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15일 이 대통령이 참석한 40주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특별기도를 한 바 있다. (사)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와 대한민국국회조찬기도회가 주최한 행사에서였다.

 

주최 측이 자랑하듯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게 열리는 행사에, 대법관, 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하여 개인의 순수한 신앙 활동차원에서 특별기도를 하고, 감사원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지금은 골방에서 기도할 때이지만, 갈수록 은혜로운 나라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까?

 

종교권력화를 비판하고, 종교계 설립 사립학교 내 학생의 인권을 주장하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촛불은 대법원을 향하고, 감사원을 향해야 할지 모른다. 대법관이나 대법원장 그리고 감사원장도 국민이 직접 선출하자며 헌법을 고치자는 운동은 어떤가. 민주주의를 위해 든 촛불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개선과제가 세부적으로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잔치가 아닌 우리들 자신을 위한 촛불잔치를 만들어 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손상훈씨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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