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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높은 기대를 안고 출발한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뜻을 무시한 자세와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벌써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영어몰입교육' 논란과 '강부자 내각' 시비에 이어 주특기로 내세웠던 경제정책도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졸속 협상에 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민심은 폭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출범 100일 밖에 안 되는 정권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문가와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통해 진단합니다. [편집자말]
중국 국빈방문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저녁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중국 국빈방문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저녁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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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임기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일까? 요즘 들어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이 부쩍 많아졌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100일밖에 안 된 시점의 의문 제기치고는 거칠고 가혹한 면이 있다. 100일이라면 5년 임기의 18분의 1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기간에 이명박 정부는 참 많은 것을 보여 줬다. 세상에 혁명정부가 아닌 담에야 이 정부처럼 초기에 많은 것을 보여준 정부가 또 있으랴 싶다. 그리고 이 정부처럼 하는 일마다 족족 국민의 반발만 사는 정부가 또 어디 있었겠는가 싶다.

아마 점령국의 군정이라고 해도 이명박 정부처럼 국민이 반대하는 일만 골라서 성급히 다 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터다.

'선진화' 외치는 대통령, 후진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임기에 회의가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히고 취임한 대통령이다. 그는 경쟁자를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당선된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런 자신감을 배경으로 이명박 정부는 "변화와 실용을 바탕으로 선진화 원년을 장식하겠다"고 호언하며 출발했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화합적 자유주의'를 국정 이념으로 삼고 '창조적 실용주의'를 실천 이념으로 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출범한 지 불과 석 달 남짓 된 지금 대한민국이 '선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아니, 오히려 '후진화'하고 있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단연 더 많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이념이라던 '화합적 자유주의'는 온데 간데 없어졌으며, 실천 이념이라던 '창조적 실용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미 국민들은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에게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마치 점령군처럼 진주한 대통령직 인수위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파행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지난 정권과의 관계 설정에서 명백히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에게는 '지난 정권과 닮은 것은 모두 악(惡)이며 달라야 선(善)'이라는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즐겨 쓰던 그들은 무엇 하나라도 지난 정권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어륀지' 인수위와 '전봇대' 대통령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유감스럽게도 모두가 무모하거나 치졸한 정책들 일색이었다. 그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프레스 프렌들리'를 선창했다.

새로 뽑힌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을 만나 자기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으며, <조선일보> 회장의 팔순연에 가서 자기는 언론이 두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것 역시 지난 정권이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했고 언론을 불필요하게 탄압했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국민에게 선사한 것은 생뚱맞게도 '어륀지'와 '0교시'였다. 알고 보니 지금 최대의 현안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도 이미 인수위 시절에 보고가 된 것이었다. 그 시간에 대통령은 대불공단의 전봇대 두 개를 뽑고 의기양양해 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이 정권처럼 희화적인 모습으로 출범한 정권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지?

아무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함께 가요-국민성공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취임선서를 했다. 5만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 취임식은 성대하고 신명나 보였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 시민이, 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제를 기다리지요, 경제"라고 엄지를 세우며 응대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취임식에는 미국 축산협회장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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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 보겠다는 국민 열망을 악용하나

식민지 지배와 분단의 전쟁을 체험한 한국인들은 유달리 잘살아 보겠다는 열망을 강하게 품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물질적 풍요에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환상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것이다.

지난 주 < MBC > '100분 토론'에서 광주의 한 시민이 지적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무식한 소비자(국민)들이 경제 하나 살린다니까 믿고 뽑아준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바로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맹점이 있다. 이 대통령은 경제 하나만 살리면 된다는 국민들의 헝그리 정신(?)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경제 논리에 치여 뒷전으로 밀린다. 다시 말해 신성한 경제를 위해서라면 정치도 당연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에 우선해야 할 정치가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국민 여론을 들끓게 한 이른바 강부자·고소영 내각이 나타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이명박 정권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정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은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상하게도 한국 사회에는 정치를 불신한다거나 혐오한다고 하면 그것이 마치 지성적인 행위인 것처럼 인식되는 현상이 있다. 하지만 정치를 불신하거나 혐오하는 국민이 많다면 그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야말로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정치를 불신하거나 혐오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으며, 그런 대통령을 둔 국민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혹시 이 대통령은 정치를 불신하거나 혐오하는 대신 자기의 오기나 독선을 신뢰하거나 신봉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성찰해 봐야 한다. 정치를 싫어한다는 이 대통령, 정확이 말해 정치를 모르는 이 대통령, 그는 '정치'가 아닌 '통치'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정치 무시·언론 장악·인권 제약...독재정치로 가려는가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권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지난 1987년 6·10 항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적 가치들을 말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명백히 민주주의의 퇴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급박하고도 전면적으로 이루어져서 이제는 반동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제의 폐해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 정부 들어 국무총리는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지금의 한승수 총리는 옛날 독재정권 시절 총리가 감당했던 얼굴 마담의 역할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권력분산형 당헌·당규는 유명무실해졌다. 최근 한나라당은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선출했는데 그것은 도저히 민주공당의 지도부 선출이라고 할 수가 없다.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단독 출마해서 정견발표도 없이 1분만에 박수로 추대됐다. 한나라당에서 이 대통령 다음으로 지분을 갖고 있다는 박근혜 전 대표는 쇠고기 협상안이 고시된 날에도 여전히 '복당' 타령만을 일삼았다.

또한 이명박 정권은 언론 장악을 기도하고 있다. 그들은 회유 아니면 압력을 넣는 독재정권식 언론 길들이기 방식을 쓰고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신문고시를 재검토하겠다고 했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 KBS > 사장 몰아내기에 나섰다. 감사원은 이에 보조를 맞춰 보수단체의 한국방송 감사 청구를 수용했다.

또한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린 < MBC > '피디수첩'에 민형사상 고소·고발 방침이 발표됐다. 그런가 하면 국세청이 나서 이명박 탄핵 서명 사이트가 개설된 '다음'에 뜬금없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관광체육부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넣고 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져야 할 사정기관들도 급속도로 권력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폐지했던 기무사사령관의 직접보고를 받기로 했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주도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라는 것을 부활했으며 경찰총수가 촛불집회의 배후세력과 광우병 괴담 진원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2일 새벽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요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이다가 강제해산 되었던 학생과 시민들이 시청앞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일 새벽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요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이다가 강제해산 되었던 학생과 시민들이 시청앞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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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당인 민주노동당은 '불법폭력단체'로 규정되었고, 정보 형사들이 유세장이나 시위장에 스스럼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집회 시위 등에 대비하여 체포전담부대가 부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심 검문 불응시 처벌 강화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졌다.

이런 불온한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전에 전두환을 찾아가 굽신거리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런 일들은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약화시킨다. 수십 년 동안 피땀 흘리며 싸워서 얻은 인권을 우리는 하루아침에 몰수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를 무시하고 언론을 장악하며 인권을 제약하는 것은 독재정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책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민주적 가치들을 말살하고 독재 시대로 회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빈곤한 대통령...'실용정치'의 끝

이런 모든 문제점들을 근원적으로 파헤쳐 보면 흔히 말하는 대로 이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피상적인 분석일 따름이다. 정치라는 것은 명분을 기반으로 실천되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에게는 명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교양이 결여돼 있다. 여기에서 명분을 만들어내는 교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념일 수도 있는 거지만 철학이라고 해야 더 옳다.

이 대통령은 정치 대신 '실용'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용이라는 말은 대체로 명분에 취약한 타락한 정치인들이 즐겨쓰는 용어인 수가 많다. 정치란 명분과 실제가 조화를 이루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에게는 명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으니 실제만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이 '실용'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왜곡된 실용주의는 실적주의로 치닫는다. 이 대통령의 실적주의는 그의 호가 '청계'라는 점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실적주의는 자기가 하는 일의 긍정적인 면만 본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하는 일 때문에 피해를 입거나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이 대통령의 '실용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잘 알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정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이것은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쇠고기 협상안 고시를 강행해 버렸다. 오늘도 수도 서울의 거리에서는 시위대들의 함성이 밤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만약 이 대통령이 대운하를 추진하고 의보민영화를 감행한다면 국민들의 분노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알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 공공기관장들의 법적 임기를 무시해 버렸다. 타인의 법적 임기를 무시한 대통령이라면 자기의 법적 임기도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이다. 진정 국민을 두려워해야 할 때이다.

25일 취임식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 무개차 밖으로 몸을 내밀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25일 취임식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 무개차 밖으로 몸을 내밀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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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항일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전 창조한국당 대변인 김갑수, 문화평론가 김갑수와는 동명이인입니다.



태그:#취임 100일,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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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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