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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총기 사고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총기를 구하고 소지하는 것은 더 쉬워지고 있다. 사진은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루거'사의 권총.
 미국에서 총기 사고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총기를 구하고 소지하는 것은 더 쉬워지고 있다. 사진은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루거'사의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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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국은 왜 해마다 되풀이되는 총기 난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삼엄한 공권력을 갖춘 사회에서 말이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총기 사용을 규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미국 정부가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이 비단 총기 문제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수만명이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어가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임에도 말이다.

그뿐 아니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의 안전 문제도 제대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 여러 나라가 철저한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이 미국에서는 거의 아무런 규제 없이 유통되고 있다.

육류의 안전 관리도 항상 문제가 되지만, 해결은커녕 개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병원성대장균 오염, 암을 유발하는 호르몬 과다 사용, 광우병의 원인인 동물성 사료 사용 등으로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있지만, 정부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육류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경우라도, 농무부(USDA)가 할 수 있는 일은 업계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문제 상품의 회수(리콜)를 '권유'하는 것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총기·의료·식품 문제는 별개 사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작은 정부'다. 정부의 몫이 작다는 것은 개인의 몫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점은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휴스턴에서 열린 '총기 쇼(gun show)'. 총기류 판매 촉진을 위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휴스턴에서 열린 '총기 쇼(gun show)'. 총기류 판매 촉진을 위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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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와 '큰 개인', 그리고 신성불가침의 '자본'

부유층과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 정치집단일수록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국은 그다지 '큰 정부'를 가져 본 일이 없다.

미국 선거제도를 다룬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미국은 독립 후에도 '단일국가'를 이루는 데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영국이 미 대륙 동부 해안에 건설한 13개의 식민지는 서로 더 많은 땅, 자원,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툭하면 영토 싸움을 벌이곤 했다.

흔히 미국의 독립은 '압제와 불의에 맞서 싸운' 영웅담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앨리스테어 쿡의 말대로 '애국 이데올로기에 물든 역사가들이 지어낸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식민지를 한 데 묶어준 공감대는 영국 왕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영국 통치자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적개심으로 바뀐 이유는 영국 물건에 붙은 세금 때문이었다. 조지 3세 이후 식민지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식민 개척자들이 즐겨 마시던 차에는 고액의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세금 때문에 갑자기 오른 차 값은 큰 불만거리가 되었고, 그 가운데 영국과 우발적으로 충돌한 일이 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지역 간의 소유 다툼을 어느 정도 막아주던 것이 영국 통치자였다면, 이 통치를 끝나게 한 것도 결국은 소유 문제였던 셈이다. 독립 전쟁 이후 각 식민지의 재산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을 국가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재산과 치안에 관한 자치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총기 제조사인 루거사의 웹사이트 화면. 위쪽에 "책임 있는 시민을 위한 총기 제조사"라는 글귀가 보인다. 총기 제조 및 판매업자에게 일반인은 핵심 고객층이다.
 미국의 총기 제조사인 루거사의 웹사이트 화면. 위쪽에 "책임 있는 시민을 위한 총기 제조사"라는 글귀가 보인다. 총기 제조 및 판매업자에게 일반인은 핵심 고객층이다.
ⓒ Ru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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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추구권'이 '재산추구권'으로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완성한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우리가 믿는 자명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 모두 창조주로부터 침해할 수 없는 권리들을 양도받았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된다."

그러나 주의 대표들이 각자 지역으로 돌아가 주 헌법을 제정할 때는 표현 몇 가지를 바꾸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재산을 획득하고 보호할 권리'로 바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아놓은 재산에 중앙 정부가 손을 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행복'이라는 추상적 가치는 '재산'이라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자치권'은 개인 기업들이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정부가 비운 자리는 각지에서 빠르게 재산을 불려나가던 유지들 몫이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의 독점자본주의는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를 주무르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위의 헌법이 사적 재산의 '획득'뿐 아니라 '보호'까지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 가운데 일부는 이 부분이 사적 무력 사용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수정헌법 2조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주의 보안에 필요한 경우, 잘 통제된 민병대 개인이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총기협회(NRA)가 신주처럼 모시는 이 조항은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규정하고 있는 대상과 범위가 대단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미국의 거의 모든 주는 개인이 총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휴대를 금하는 곳은 일리노이와 위스콘신 두 주뿐이다. 그러나 이 주들도 총기 휴대를 허용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놀라운 것은, 계속되는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주는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미국엔 오랜 '민병대(militia)'의 역사가 있다. 이는 공권력이 확립되기 전부터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던 거주민들이 만들어낸 자기 방어 수단이기도 하지만, 침략이 곧 '개척'이었던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총기 규제를 어렵게 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이유보다는, 총기 판매상들이 '재산권'이 침해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미국 정계의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것은, 국민 여론은 집단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이익단체의 압력과 회유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사실이다. 

'내 손에서 총을 빼앗으려면 나를 죽인 후 빼앗아라'

총기 규제 상황을 표시해 놓은 미국 지도. 검게 표시된 위스콘신주와 일리노이주만이 총기 휴대를 금하고 있다. 총기협회는 이 지역을 '계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압박하고 있다.
 총기 규제 상황을 표시해 놓은 미국 지도. 검게 표시된 위스콘신주와 일리노이주만이 총기 휴대를 금하고 있다. 총기협회는 이 지역을 '계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압박하고 있다.
ⓒ N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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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에 있는 총기협회(NRA) 건물. 아래쪽은 "총을 빼앗으려면 나를 먼저 죽이라"고 외치는 원로 배우 찰튼 헤스턴.
 버지니아에 있는 총기협회(NRA) 건물. 아래쪽은 "총을 빼앗으려면 나를 먼저 죽이라"고 외치는 원로 배우 찰튼 헤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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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의 한 학교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총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2000년 5월 20일, 미국총기협회의 정기총회가 열렸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총기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회장이던 원로 배우 찰튼 헤스턴은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앨 고어는 여러분들을 사악한 적으로 만들 겁니다. 그는 여러분들이 총이나 휘두르고 다니는, 머리 비고 피에 눈먼 미치광이라고 떠들고 다닐 겁니다. 그냥 참고 있을 겁니까? 나는 참지 않을 겁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이 사기극을 멈추고 싶다면, 미국 전역의 법을 준수하는 모든 총기 소지자들은 대통령 선거일에 투표장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헤스턴은 말을 멈추고 행사장의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남북전쟁 당시 쓰였던 재래식 소총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올해는 우리를 분열시키고 자유를 빼앗으려는 세력을 물리치는 승리의 원년이 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 나는 이 두 마디를 여러분에게 던집니다. 내 말을 듣는 여러분 모두, 그리고 특히 앨 고어 당신에게. '내 손에서 총을 빼앗으려면 나 먼저 죽여라(From my cold, dead hands)!'"

그로부터 7년 후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이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일 년도 채 안 된 2008년 2월 14일 북일리노이대학교에서 대학원생이 5명을 총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그 후에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으며,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 가운데 개인의 총기 소유와 휴대를 금지하겠다는 후보도 없다. '개혁적인' 견해라고 해봐야 불법 판매를 금지하고, 판매 과정을 좀 더 투명하게 하겠다는 정도다.

'확실한 대안'은 업계에서 나왔다. 2008년 4월, 버지니아 사건 1주년을 맞아 희생자 추도식이 미국의 여러 학교에서 열리고 있을 때였다. 인터넷 총기 판매업자인 에릭 탐슨은 슬픔에 빠진 버지니아대학교를 방문해 "무고한 시민의 목숨이 위험한 범법자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버지니아공대와 북일리노이대학교 총기 사건의 두 범인에게 총기를 판매한 업자였다. 그는 "이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저는 앞으로 두 주간 대학생들에게 총기를 대폭 할인해 줄 생각입니다. 모두 5400 종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난해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던 학생들도 싼 값에 총을 구입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버지니아공대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보인다.
 버지니아공대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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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와 '탈규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할까

'작은 정부'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표어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작은 정부'를 '선진화'를 위해 당연히 가야 할 길로 홍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민영화'와 '탈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지향하는 '선진화'의 모범적인 사례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밝히는 이유는 '경제 모델 업그레이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말하면서 경제 모델 자체를 바꾸는 대규모 작업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알고 싶다면 미국을 보면 된다.      

한국 정부는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적'으로 간주한다. 기업의 효율성은 그 자체로 절대선이며,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교육은 기업이 원하는 인성과 자질을 심는 과정이기에, 교과서도 재계의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미국을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미국보다 훨씬 더 '미국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작은 정부'를 내걸고 세계 최악의 양극화 문제를 지닌 복지 후진국이 되긴 했지만, 아직 '기업이 필요한 인재 양성'을 교육 목표로 내세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경영대학이 아닌 한 말이다.

미국의 보수 정치 집단은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보장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사익 추구가 신의 뜻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악의 뿌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적어도 이 말씀만큼은 사회가 궁극적으로 싸워야 할 적을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 것 같다. 

찰튼 헤스턴은 과거 <십계>와 <벤허> 등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출연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훗날 총기협회 연단 위에서 총을 높이 치켜들 때,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헤스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헤스턴은 콜럼바인 총기 사건 9년째가 되는 2008년 4월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풍자 신문인 <어니언>은 이렇게 보도했다. "찰튼 헤스턴, 결국 죽어서 총을 빼앗기다"

깨달음을 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승에서 얼마나 버는가에 못지않게, 저승에서 얼마나 존경받는가도 중요하다는.

미국 서점에 진열된 수십 가지의 총기 관련 잡지들.
 미국 서점에 진열된 수십 가지의 총기 관련 잡지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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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총기와 탄약은 월마트 같은 상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다양한 총기가 가격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온라인 주문만 받는다"는 상품도 보인다.
 미국에서 총기와 탄약은 월마트 같은 상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다양한 총기가 가격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온라인 주문만 받는다"는 상품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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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탈규제, #민영화, #총기난사, #작은 정부, #찰튼 헤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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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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