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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 관한 규제를 빨리 없애야 한다. 18대 국회 (개원에) 맞춰 빨리 당정회의를 해서 법안 제출하라."

 

"역사적으로 대기업이 선거에 10만원도 내놓지 않은 선거다. 기업과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금융기관 민영화 등) 정책 위주로 나가는 게 좋다."

 

지난달 31일 이명박 대통령이 쏟아낸 말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각종 금융관련 규제 폐지를 강도 높게 요구했다.

 

특히 '재벌 특혜' 논란을 빚고 있는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금산분리)나 산업은행 민영화 등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의식하면 할 수 없다"면서 규제완화 등을 과감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금융위는 "상반기 중에 과감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민간이 규제존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산업은행 민영화 역시 4월 중에 최종안을 만들고, 산은법 개정(6월)을 거쳐 7월께 민간 중심의 지배구조로 바꾸겠다고 보고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융위가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는 외환위기 이후 힘들게 만들어 온 금융시장의 투명성 제고 노력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고, 결국 국민경제적 위험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규제 빨리 없애라"... 금융위 "3개월 내 민간에게 물어서 없앨 것"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먼저 금융 관료와 정책의 과감한 변화를 주문했다. 관치를 버리고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조직개편을 통해 금융에 관한 규제를 빨리 없애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의 모든 관행과 행태를 과감하게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민간 출신의 새 금융위원장 인선과정에서 애를 먹었다"고 소개한 이 대통령은 "(금융감독 정책의) 점진적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변화는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점진적으로 하나씩 하면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변화가 성공적으로 되려면 초반에 빠른 변화가 와야 한다"면서 "(금융 관련) 규제완화 중 빨리 할 수 있는 것은 금년 중에 마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18대 국회 일정 등을 이야기하면서, "18대 국회가 5월 말까지 (구성)되면 (그 때) 법안 올라가서 다루기 힘들다"면서 "6월부터 변화를 해야 하니까, 빠르게 당정회의를 해서 법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전 위원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고, 김광수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금융위 출범 후 3개월 이내에 외국 사례를 전수 조사하고, (규제) 존치 여부를 민간에게 물어볼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어 김 국장은 "(규제완화를) 피부에 와닿게 하기 위해서 원스톱 온라인 체제를 6월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원장 직속으로 (규제완화)팀을 당장 만들어 민간전문가를 상주시켜, 민간이 주도하는 쪽으로 하겠다"면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규제완화 부분을 챙겨서 단기간에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위 "민영화 과정에서 시장에 충격을 줘 선도금융기관 만들것"

 

이와 함께 특정재벌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와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의 민영화 등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됐다.

 

김주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금융산업발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할 일은 두 가지"라며 '첫째는 선수(대형 금융회사)를 육성하고, 둘째는 (금융)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요 금융(공기업)회사를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충격을 줘 선도 금융회사를 만들고, 비금융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금융그룹을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김 국장은 "현재 금산분리 원칙으로 지주회사가 서비스·제조업을 같이 가질 수 없다"면서 "산업과 금융이 결합돼 지주회사 형태로 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해,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4월 중으로 금융위 안을 확정하고, 6월중 산은법 개정해서 7월 중에 지배구조 민간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보고했다. 이어 내년부터 매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점도 덧붙였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금융위 기본방향은 규제의 대폭적인 혁파, 획기적인 개선"이라며 "대신 기존의 제대로 파악하거나, 관리하지 못한 위험에 대해선 철저히 파악하고,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대기업이 10만원도 내놓지 않고 치른 선거"

 

이같은 보고를 들은 이 대통령도 금산분리 완화 등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 가지 (정부) 계획을 특정 재벌과 관련지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 때문에 위축되어 자꾸 뒤로 (정책이) 밀린다"면서 "비금융지주회사 만든다는 것이 하나의 발전이라 생각하고, 특정 대기업과 관련 있다는 오해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하지 못하면 한계에 묶여 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선거는 역사적 처음으로 대기업이 선거에 10만원도 내놓지 않고 치른 선거"라면서 "우리 정부는 그런 부담이 아무것도 없으며, 금융산업 발전의 길이라면 과감하게 (규제완화 등) 정책 위주로 나가는게 좋다"고 강조했다.

 

금산분리 완화 등에 대해 이 대통령은 "규제할 것만 하고, 나머지는 풀어줘야 한다"면서 "과정에서 실수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시행착오를 두려워하면 절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소간 시행착오를 감당하고, 고비를 넘기는 용기가 있어야 금융산업을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업무보고 자리에 함께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국 은행 등의 사례를 들어가며, 국내 은행의 대형화 작업을 적극적으로 주문했다.

 

강 장관은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동북아에서 3위 규모인데, 우리나라 최대은행은 세계 70위 정도"라며 "세계 70~80위 소규모 은행이 5~6개 있어서는 아시아 금융허브도 어렵고, 국제시장에서 자본조달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도 여러 은행을 합병했고, 스페인은 수십개(은행)를 2개로 통합해 키 플레이어로 나서고 있다"면서 "산업은행 민영화를 계기로 (은행 대형화를) 심도있게 검토하고 최종 방침을 확정해야한다"고 전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도 "금산분리 완화가 본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면서 "정부 주도로 하면 그 자체가 형식적으로 될수 있고, 금융산업 개선의 체감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 "금융질서 건전성과 안전성에 심각한 위협"

 

금융위의 이같은 보고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금융위가 과거 개발연대식 산업육성 정책 시각으로 금융발전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금융위의 이번 보고내용은 저축자의 권익 보호 및 금융질서의 건전성과 안정성 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금융시장의 투명성이 크게 약화될 것이고, 국내 금융산업 발전 뿐 아니라 국민경제에도 큰 위험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이날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상세한 발언내용에 대해 일부 '비보도'를 요청했으나, <오마이뉴스>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보도하기로 했다.   


태그:#이명박,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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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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