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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람들은 누구나 “태안”하면 “기름오염”을 연상한다. 예전엔 태안하면 만리포, 연포, 꽃지 따위의 해수욕장을 떠올렸고 여름이면 밀려드는 인파로 온통 북적댔지만 올해 그런 풍경들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천재가 아닌 인재로 태안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한다. 어쩌면 6·25전쟁 이후 가장 처참한 국토수난이 아니던가? 사건이 나자 온 나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밀려들었고, 언론들도 이를 보도하기에 혈안이 되었었다.

 

지난해 12월 24일 나도 현지에 갈 수가 있었다. 물론 환경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미생물제제로 오염을 없애려는 몸부림을 살펴보려는 것이었지만 그때 나는 기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을 느낄 수가 있었다. 주민들은 말했다.

 

“제발 언론이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주면 좋겠다. 사태를 과장해서 태안은 이제 사람들이 살 땅이 못 되는 것처럼 말하는 데 이는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언론은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영향으로 마치 병이나 걸리는 것처럼 얘기하는 바람에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급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삿거리에 혈안이 된 나머지 과장해서 보도하고, 그 보도 여파 때문에 미칠 파문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이를 걱정하던 한마당 호승호 회장이 이에 대해 살펴보고 고민하는 여행을 하자고 연락해왔다. 흔쾌히 동의한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지난 28일 오후 그저 그의 차에 올랐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저 태안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었고,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전해 많은 사람이 같이 고민하자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먼저 도착한 곳은 태안군 남면 진산리에 세워진 “서초휴양소”였다. 서초휴양소는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태안군 남면에 휴양소를 건립하여 심신 휴양과 여가선용을 위한 주민의 휴식처로 제공하려고 서울 서초구청이 2006년에 세운 곳이다.

 

이미 호 회장과 들꽃, 사진, 자연 등을 통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이곳 김형극 소장은 서초휴양소가 자연환경과 사계절 자연이 함께하는 자연 속 휴식처가 될 것이며, 직장·단체 수련회 또는 모꼬지 등 장소를 제공하고 주말농장 알선과 현지주민 및 관광지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주제여행을 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휴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초휴양소라 해서 서초구민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며, 누구나 누리집(w3.seocho.go.kr/resort)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 시설은 콘도형 객실, 식당, 사우나,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 그리고 강의실, PC방, 옥외 바비큐장, 체육시설 따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김 소장은 서초휴양소 홍보가 아니라 태안 걱정을 하기에 바빴다.

 

“서초휴양소는 태안의 유일한 문화공간이란 평을 듣습니다. ‘태안 살리기’를 하는 정부의 도움으로 정부기관, 단체, 기업의 행사를 이곳에서 하기도 하지만, 기름유출사고 이후론 많이 어려워졌지요. 이처럼 정부도 도와주고, 자원봉사자들이 커다란 몫을 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태안은 기름유출사고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이제 봉사자들의 발길도 뜸해 주민들의 눈물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이곳처럼 기관이 운영하는 곳도 어려운데 일반 주민들의 고통은 어떠하겠느냐는 얘기였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하지만, 태안 주민이 울기만 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희망으로 이런 노력을 합니다’라는 걸 보여줄 때,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서초휴양소는 어려운 때를 맞아 음악회를 여는 등 소외된 농촌 주민에게 문화를 제공하고, 농산물 팔아주기 행사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야외음악회장 세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태안이 어려울 때 투자가 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호 회장은 “김 소장은 태안 토박이 못지않게 태안을 정말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거든다.

 

“사실 태안 전체가 피해를 본 것이 아닙니다. 태안 군내 30개의 해수욕장 가운데 몽산포를 비롯한 16개 해수욕장과 천수만 쪽은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언론이 이를 나눠서 알리지 않아 일반 국민은 태안 전체가 모두 기름피해를 받은 것으로 알고 이곳을 찾지 않습니다. 이런 오해가 태안 고통을 더욱 크게 한 것입니다.

 

몽산포는 8km나 이어진 솔숲과 모래톱의 동행이 장관입니다. 온 나라 어디에도 이런 천혜의 경관은 드물 것입니다. 이 몽산포도 피해가 없는 곳입니다. 기름유출피해로 고통을 받는 태안 주민을 조금이라도 돕는 뜻에서도 또 그 어디에도 없는 태안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올여름에는 많은 국민이 태안을 찾아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는 작은 체구였지만 속은 엄청난 이웃 사랑과 자연 사랑의 내공으로 꽉 찬 듯싶었다. 그는 들꽃을 사랑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는 전문가였으며, 서각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휴양소 곳곳에는 그의 들꽃 사진 그리고 서각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기타 연주도 즐기는 사람이란다.

 

28일 밤 우리는 휴양소 숙소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안 얘기는 그렇게 끝이 없었지만 아침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잠을 자두는 수밖에 없어 새벽 2시가 되자 이부자리를 깔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안면읍 왕뼈다귀해장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 식당 주인 박명옥(50) 씨는 기름유출사고가 난 뒤 손님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이 없으니 바닷가가 아닌 읍내도 역시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한 뒤 태안기름유출사고 법률지원단장 남현우 변호사를 찾아갔다. 김 소장 얘기로는 남 변호사가 끊임없는 법률지원과 이어지는 언론 대담 때문에 많이 지쳤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그런데 찾아간 소박한 전원주택에서 남 변호사는 삽을 들고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 집 주변 환경을 좀 더 자연과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또 그런 투자가 조금이라도 태안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였다.

 

왜 변호사가 직접 손에 삽을 잡느냐고 물었다. “닷새 동안 법률에 매달리다 보면 많이 지칩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맑은 공기에 흙을 밟으며 일을 좀 거드는데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또 농촌엔 일손이 모자라 이렇게 조금이라도 거들어야만 합니다. 주말에 휴식대신 ‘일하는 변호사’가 좋지 않나요?”라면서 그는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씨익 웃는다.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환경법학회를 주도하여 창립한 이래 20여 년을 환경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현재 5개 시민단체가 만든 “태안기름유출사고 법률지원단” 단장을 맡고 있으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대전충청지부 부회장, 환경단체연합 제도개혁위원장 따위의 직책을 맡아 활발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태안기름유출사고 법률지원단’은 피해 구제, 환경 복원, 관련 법규 정비, 재난시스템 점검 따위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정부에서 만드는 ‘특별법’이 책임회피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피해액을 3조 원 정도로 보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것을 보면 직접 책임이 있는 삼성중공업은 47억 원만 물어주면 되게 돼 있으며, 유조선회사가 1300억 원을 배상하고, 1700억 원은 국제기금이 주게 돼 있어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물론 고의나 중과실이 있을 땐 배상한도가 없는데 선주 회사의 지시나 개입이 있다는 판결이 나와야 합니다. 문제가 된 대형 크레인선은 12월 9일까지 거제도로 옮겨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천후를 무릅쓰고 움직인 것은 자본금 5천만 원짜리 예인선사가 하루 임차료 6천만 원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무리를 감수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선장 독자적인 운항이다’라고 우기는 삼성중공업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또 10년 전 ‘시프린스호 기름유출사건’ 때 이중선체를 의무화했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날 수가 없었겠지요. 또 사고 즉시 유조선을 둘러싸고 겹겹이 오일펜스만 쳤어도 큰 문제를 없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는 참으로 할 말이 많았다. 얘기를 꺼내자마자 거침없이 나오는 말에 나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영세어민이 맨손으로 하는 관행어업은 대부분 무면허·무허가·무신고인데 그런 사람들은 국제기구에선 전혀 돈을 받을 수 없다며 그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집 뒤에 옛집을 황토와 나무로 고친 집이 있었는데 부러워하는 내게 4월쯤 되면 온갖 꽃들도 핀다며 그때쯤 다시 와서 묵어가라는 따뜻한 말도 잊지 않는다.

 

남 변호사를 만나고 김 소장이 가깝게 지낸다는 “돌샘팬션”을 찾았다. 전문적인 팬션이라기보다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윤재용씨와 부인 박명옥씨가 귀향하여 농사를 짓는데 집을 조금 크게 지어 영세한 팬션업을 겸하고 있었다. 소박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은 그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밭에 소나무 묘목을 심고, 동백꽃들이 피어있는 그곳엔 조그만 강아지 몇 마리가 우리를 같이 반긴다.

 

박명옥씨는 농사를 지은 지 4년밖에 안돼 많이 서툴지만 농사짓는 것이 그저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그런 그들이 기름유출사고 이후 팬션 손님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호 회장과 나는 태안 엿보기를 아쉽지만 그 정도에서 끝내고 돌아오기로 했다. 오는 도중 고속도로가 막히자 발안으로 빠져나가 그곳에 사는 국토사랑방 고문 이춘호 선생을 만났다. 그는 발안 토박이인데 태안 기름유출사고 여파가 그곳까지 미친다고 말했다. 아니 태안과 상당히 떨어진 발안(화성)까지도….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또 그곳에서 국토사랑방 대표인 수원대 이원영 교수를 만났다. 그는 국토계획에 관한 한 대단한 전문가이다. 그는 국토해양부와 환경부를 통합해 국토환경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발과 보존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태안 사고와 같은 터무니없는 인재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헤어지려는 내게 앞으로 100일 동안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정좌한 채 내가 아닌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런 다음 그 결과를 얘기해 달라고 한다. 무슨 뜻일까? 어쨌든 손해 볼 일은 아니겠지. 100일 동안 대장정에 들어가 보자.

 

나는 돌아오고서 생각해 본다. 태안 눈물은 진행형이다. 그런 책임에 어쩌면 나도 자유스럽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온 힘을 다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몇 사람이 봐줄지 모르지만 부지런히 글을 써서 알리는 일에 온 정성을 쏟자는 결심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안, #기름유출사고, #서초휴양소, #김형극, #남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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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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