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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판단 착오에 있다."

 

성한용 <한겨레> 기자가 오늘(24일) 쓴 기명칼럼의 한 대목이다. '형님은 살리고 대표는 죽이나'는 기명칼럼에서 성한용 기자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 형제의 '착각'에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어떤 착각일까? 성한용 기자의 진단을 더 들어보자.

 

"세상은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진화했다. 국민들은 이제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여당을 장악할 현실적 힘이 없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형님공천'도 '당 장악 기도'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겨레> <조선> "시간이 별로 없다"... 이명박 형제 압박

 

성한용 기자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불출마를 촉구한) 50여명의 출마자들은 핵심을 정확하게 찔렀다"며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충고했다.

 

한마디로 세상의 변화를 잘못 읽었다는 이야기다. 아니, 지난 10년의 '진화'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는 '오만'과 권력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권력욕이 결국 사태를 이 지경까지 악화시켰다는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고 있다. 어제 불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건 이명박 대통령은 "공천은 공심위가 한 것인데, 왜 혼자서 책임지려고 하느냐"고 말렸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나도 팔다리가 잘렸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마당이니 한나라당을 장악하려 했다는 성한용 기자의 지적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수긍할 리 없다. 되레 무슨 '모함'이냐고 큰소리 칠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부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 밤늦게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로 손해나 봤지 덕 본 건 없다"고 했다. 수도권 공천자들이 그의 불출마와 국정 관여 금지 요구에 대해 "내가 국정에 관여한 게 뭐가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파워가 있다면 공정하기 때문이고, 그건 박근혜 전 대표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공정함' 때문이지 결코 동생인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은 비단 성한용 기자만 그런 게 아니다. <한겨레>와는 정반대 쪽에 서 있다는 <조선일보>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사설 제목이 '이상득 부의장에겐 시간이 없다'로 돼 있다.

 

이상득 부의장의 이유 있는 항변에 대해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게 정리했다.

 

"이 부의장 본인 스스로 아무리 처신을 조심해 왔다지만 정부 요직 인사나 공천이 발표될 때마다 '형님 인사' '형님 공천' 소문이 나돌아 다닌 것이 사실이고, 청와대나 국정원 등 정부 곳곳의 인사를 다루는 자리엔 이 부의장과 가까운 사람들이 박혀 있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게 당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러나 본인들은 '절대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는 이야기…. 수도 없이 되풀이됐던 진부한 스토리다.

 

'살신성인 드라마' 이뤄질까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은 2주 전인 3월 14일자 강천석칼럼('대통령 형님' 드라마는 끝내 못보나)에서 이상득 부의장의 '살신성인'을 권유했다. 선거가 사람을 낚는 낚시라고 할 때 "요 몇 주 한나라당의 모습은 '정신 나간 낚시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서 내놓은 뜻밖의 국민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이상득 부의장'을 지목해 그의 '살신성인'을 권유했다.

 

강천석 주필이 괜히 꺼낸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복선에 깔고 '보기 좋은 모양새의 퇴진'을 권고한 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천석 주필의 권고는 무시됐다. 강천석 주필의 권고에 이어 다수의 언론들이 한나라당 사태 진원지로 이상득 부의장을 지목하고, 그의 용퇴를 촉구했지만 이상득 부의장은 요지부동이다.

 

성한용 <한겨레>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상득 부의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이틀밖에 없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부의장이 짧게는 이 이틀 동안 어떤 선택을 할지가 지금으로서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것은 앞으로 이명박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 맺음에서도 중요한 지표가 될 것 같다. 자주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거의 한 목소리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부의장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며 결단을 촉구한 것도 이채롭지만, 더 주목되는 것은 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부의장의 '응답'이다.

 

대통령 형제 두 사람 입장과 시각에서 보자면 <한겨레>도 <한겨레>지만 어찌 보면 맨 먼저 '이상득 부의장 살신성인 드라마'를 제안한 <조선일보>야 말로 사태를 엉뚱하게 비화시킨 진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명박 정권의 '눈'과 '귀'가 얼마나 밝을지, 또 얼마나 프레스 프렌들리 할 지 궁금하다.


태그:#한나라당 공천파문, #이상득,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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