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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시민기자로, 후배들이 오마이뉴스에 릴레이 기고중인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교수 채용' 관련 릴레이글에 대해 찬성하고자 이 글을 썼습니다.

김수행 선생님을 정말 존경하고, 그래서 결혼 당시 주례를 부탁해 주례를 서주셨지만 정작 학부 다닐 때는 마르크스 경제학이건 주류경제학이건 간에 공부와는 담을 쌓고 다른 걸 찾아다녔습니다. 앞서 정상준 (아마도) 후배가 기사 <'마르크스경제학 메카'였던 서울대, 왼쪽 눈 가리나>에서 언급했던,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학생이었습니다.

건방지게도, 스무 살 남짓하던 당시 주류 경제학에 대해서는 사회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판단하고 관심의 끈을 아예 놓아버렸었고, 그나마 좀 관심이 있었던 마르크스 경제학의 경우에도 자본론 책만 사다 놓고 한 권도 안 읽고 (자본론 1권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읽어본 이는 다 아실 겁니다) 북한 대학교재로 추정되는 얇은 마르크스 경제학 해설서 한 권 읽고 시험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당시 김수행 선생님 수업에 열심히 들어오던 운동권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그리고 문화이론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책도 읽고 수업도 듣고, 그도 아니면 사색을 하면서 보내곤 했었죠. 당시 대학교의 주류였던 동아리활동에 몰두한 것도 아니고, 고시나 취업을 공부한 것도 아닌, 조용한 자유주의자로 4년 내내 보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학교들이 이런 자유주의자를 키워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전체 대학교들이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해 취업에 대한 부담이 적은 학교에 들어간 덕을 좀 본 거죠.

그런데 그랬던 제가 뒤늦게 다시 경제학, 그중에서도 철저하게 외면했던 주류 경제학을 만학으로 공부하게 될 줄이야. 아이엠에프 때 들어간 회사가 망하면서 고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부 다닐 때도 안 했던 주류 경제학을 한참 후배들과 같이 공부하게 된 거죠. 당시 같이 공부하던 후배들이 경제학과 출신이라고 기대를 많이 했지만, 저는 그들보다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백지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에 덧붙여 파릇파릇한 후배들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제가 그들을 따라잡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죠. 그러나 후배들이 하나 인정한 점은, 디테일에 대한 이해는 떨어져도 큰 그림을 그리는 접근방식에는 탁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의 이면에는 정치, 그리고 사회가 항상 뒤따라붙기 마련

제 자랑을 한 것 같아 쑥스럽지만, 나름대로 거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주류 경제학만, 그것도 교수에게서 배운 게 아닌 고시학원 강사에게서 배운 후배들은 책과 강사에게서 나온 지식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효율성과 엄정한 수학적 논리에 입각한 경제학만이 있습니다. 개인의 경제적 선택을 다루는 미시경제학은 일부 그렇게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단위의 경제적 선택을 다루는 거시경제학은 결코 그런 접근으로는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제의 이면에는 정치, 그리고 사회가 항상 뒤따라붙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치나 사회, 역사를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보이는 것이 거시경제학입니다. 비록 얄팍한 수준이지만 지적인 호기심에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두루두루 섭렵했던 제게는 그 큰 그림이 쉽게 보였지만, 고등학교 이후 교과서 이외의 것으로 공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후배들에겐 그 그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개인적인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경제학은 원래 '정치경제학'에서 갈려져 나온 학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보이듯, 경제는 결코 무 자르듯이 수학적 분석 틀로 답이 나오는, '자연과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사회 속에서 유기체처럼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는, 정답이 없는 학문이지요.

불행하게도 주류 경제학은 자꾸만 이 사실을 부인하고, 수학과 자연과학의 분석 틀로 경제를 해석하려고 합니다. 정답이 있다고 가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통계프로그램을 돌려서 가설을 검증하는 수학식으로 가득 찬 논문이 경제학의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정상준 후배가 앞의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정형적인 분석'에는 도가 튼 한국 유학생들이 아마르티아 센과 같은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는 힘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현재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 경제학과 동의어로 여겨집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그나마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혈통을 잇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상준 후배가 지적했듯이 마르크스 경제학도 상당 부분 위에서 언급한 과학적인, 그리고 세련된 접근법을 택하면서 주류 경제학과 상호 수렴해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르크스 경제학은 여전히 사회현상, 그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장점이고, 저희 학부(제겐 학과)가 가진 큰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김수행 선생님이 그만두고 이 전통이 끊긴다면? 저는 경제학이 정말로 세상과는 동떨어진, 그래서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10년 전 비판 대상이 '좌파' 정치담론였다면, 지금은 '우파' 것으로 바뀌었을 뿐
이준구 서울대 교수
 이준구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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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이준구 선생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화제에 많이 오르고 계신 이준구 교수님의 '대운하' 관련 글 <"대운하로 환경개선 하겠다고? 잠꼬대 같은 소리 집어치워라">에 대해 일부 무례한 댓글은 그를 '좌빨교수'로 지칭하더군요. 제가 학부에 다닐 당시 소장파임에도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던 이준구 선생님을 생각하면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 주류 미시경제학의 대부인 이준구 선생님은 과연 이른바 폴리페서(정치교수)로 변신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분은 일관되게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에 경제학의 관점이 결여된 채 과도한 정치적인 담론이 넘쳐나는 현상"에 대해 쓴 소리를 던지고 계십니다. 다만 십여 년 전에는 그 비판의 대상이 '좌파'의 정치담론이었다면, 지금은 '우파'의 그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건방진 분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경제학의 주류는 이러한 비판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경제학이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점점 더 등한시하고 이론의 틀에 갇혀 자신의 입지를 자꾸 좁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진짜 폴리페서들이 채우게 될 것입니다.

지난 19일자 <문화일보> 보도 내용 화면 캡쳐.
 지난 19일자 <문화일보> 보도 내용 화면 캡쳐.


예를 들어 볼까요? 며칠 전 있었던 한국 경제학회에서 발표된 수십 건의 논문 중 보수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논문은 단 한 건이었습니다. 경제학자라고도 할 수 없는 어느 우파 이데올로그가 발표한, '한국 경제는 노무현이 성장 잠재력을 망쳐놨으니 향후 오 년간은 경제성장은 기대하지 말라'는 글이었지요. 앞으로 예상되는 신정부의 경기 침체를 미리 변명하는 틀을 제공하기 위한,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에서 쓰인 프로파간다(선전)였습니다.

경제학 이론대로 '준칙'을 지키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하지 않았던 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용은 조금만 학문적 양심이 있는 거시경제학자라면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그런데 근거도 없이 좌파 경제정책이 성장잠재력을 망쳤다고 떠드는, 경제학 범주에 넣을 수조차 없는 그 정치적인 선동이 흡사 경제학자들의 전체 견해인 양 비치게 된 것이죠.

저는 감히 예견합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고 경제학의 순수성을 고집할수록 경제학은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정치적이 되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할 것"이라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던 선배로서 참으로 쑥스럽지만, 이것이 제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후배들이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태그:#이준구,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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