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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 엄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엄마는 희생과 헌신의 대표주자가 아니다.

 

엄마란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 가끔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 되물어 보기도 한다. 교과서에서도, TV드라마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어머니는 언제나 ‘헌신과 희생’의 대표주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과연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성애는 있지만 그래도 내 인생도 생각하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도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이다. 누가 들으면 이기적이고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다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생겨 먹은 것이 ‘희생과 헌신’은 못하겠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몇 명이나 그러한 헌신과 희생을 하느냐 반문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과거 60~70년 전 시절에는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모름지기 참고 살면서 지아비를 받들고 다식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엔 말이다.

 

인순이 엄마, 이선영을 이해해주면 안 되나요?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조금은 부족할지 모르나, 해줄 거 다 해주고, 남녀가 동등해진 입장에서 부모가 둘인데, 무조건 엄마이기에 모성애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닐까? 그래서 난, <인순이가 예쁘다>의 인순이 엄마(나영희)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해해요~ 그래도 인순이 엄마, 조금만 더 인순이를 예뻐해 주세요!”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백이면 백, 드라마 <인순이는 에쁘다>의 인순이 엄마를 욕할 것이다. 사실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이기 전에 자신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고, 그 안에 담긴 인생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엄마라는 존재가 거룩하게 미화되어, 자신의 이름도, 인생도 모두 자식을 위해서는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늘 엄마는 그래야 한다. 극중에서도 인순이는 엄마가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 태도가 돌변하자 소리쳤다.

 

“내가 살인자라는데... 엄마란 사람이 궁금해하지도 않아?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사실 인순이 말이 맞다. 인순이는 할머니와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살인자가 되었다. 죄 값을 받고 사회에 나와 보니, 별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툭하면 직장에서 잘리고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는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 서경준(엄효섭)에게 의지하며 살아갔다. 그가 말해준 “인순이는 예쁘다”라는 말을 힘들 때면 자신도 모르게 되새기는 그녀. 그렇다. 인순이에게는 어머니란 존재가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나타나 무척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 밖에 모르는, 조금은 자신이 생각하던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실망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인순이도 엄마를 이해해줘야 한다. 유복하게 자란 그녀가 무명시절에 인순이 아빠를 만나 집안의 반대로 동거에 들어갔지만 인순이 아빠가 사고로 일찍 죽어버리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순이를 할머니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모성애가 없는 엄마라 할지라도 자식을 자신의 손에서 떼어 놓기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힌 인순이 시집 사람들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는 인순이를 떼어 버리고 누구누구의 엄마, 아내이기보다는 ‘이선영’으로 살아갔다.

 

그래서 큰 인기를 얻으며 배우로서 명성을 쌓았던 그녀이기에 남편이 가정부와 외도를 하자 참을 수 없는 치욕감에 이혼을 감행하고 다시금 컴백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예전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자 매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두 번째 남편과 사이에서 난 딸 김정아(서효림)가 기대에 못 미치고, 난데없이 인순이가 찾아와 받아주긴 했는데 당연히 이 상황이 되면 “난 나쁜 엄마인가봐. 내가 난 딸인데도 왜 그렇게 싫으니?”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자신의 딸이 범죄자라는 사실에 기가 막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자꾸만 통장 잔고는 줄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전화는 걸려오지, 캐스팅 한 번 대보겠다고 방송국 국장한테 사정사정해서 일을 따내는 그녀. 예전과는 너무도 초라해져버린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버는 돈은 딱히 없고 통장 잔고가 나날이 줄어들기만 한다면 애간장이 타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인순이 엄마 이선영은 참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다. 어떻게 보면 모성애가 강한 엄마이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에 애착이 더 많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 솔직히 있지 아니한가. 엄마면 모두 다 똑같아야한다는 강요는 버리자!

 

모든 엄마가 다 똑같아야 하는가?


그런데 어떻게 모든 엄마가 나 김혜자, 고두심과 김해숙처럼 살아갈 수 있나. 실상 드라마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희생과 헌신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기 만든 장본인으로 고두심과 김해숙을 꼽을 수 있다.

 

그녀들은 한국의 대표 어머니상으로 불리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드라마 속에서 절대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자식을 위해 살아간 어머니들을 연기했다. 그래서 그들을 우리는 한국의 대표 어머니라고 부른다.

 

헌데 이러한 엄마들의 모습이 정답일까? 인생에 있어서 그 누가 정답을 이야기 한단 말인가? 내 뱃속으로 난 자식이지만 자식마다 다 다르듯, 엄마의 모습도 그러하다. 엄마라는 존재는 모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한 강요를 하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들을 향한 억압이요, 차별이다.

 

사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전전긍긍하고, 걱정하며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그래, 엄마의 마음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떨어진 인순이에게 함께 살았던 자식들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해주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오히려 이러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싶은 바이다. 사실 이 세상 엄마가 모두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보듬어야 하는 의무는 있지만 인순이 엄마의 인생까지 묵살하지 않길 바란다.

 

어머니의 어머니도, 어머니의 그 어머니에게도 본인들의 인생이 있었다. 즉, 자식은 자식이고, 엄마는 엄마라는 그 사실을 이제 받아들이자. 엄마에게 본인들의 인생을 살 권리는 있지 아니한가.

 

물론 아마도 착하고 예쁜 인순이 덕분에 엄마가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시청자들이 원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적어도 인순이 엄마가 ‘이선영’으로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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