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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목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 포스터.
▲ 인순이는 예쁘다 KBS 수·목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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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김현주 분)는 외롭다. 어디 외로운 사람이 인순이뿐이겠느냐마는 그녀에겐 남다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것. 죗값을 치르고 사회로 나왔지만 그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마이너리티'를 위한 응원가, '너 자신을 사랑하렴'

이런 인순이의 바람은 단지 사랑받는 것뿐이다. 그냥 여느 사람들처럼. 물론 편견으로 가득 찬 사회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전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만약에 하느님이 있다면 절 왜 만들었냐고 묻고 싶어요. 전 저주 받았어요." 그래서 그녀는 취직도 인간관계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인순이는 다시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고교시절 선생님인 경준(엄효섭 분)이 일러준 대로 주문을 외우면서. "괜찮아! 괜찮아, 인순아! 난 착해. 난 예뻐. 난 사랑스러워. 난 훌륭해. 난 누구보다 특별해. 특별한 존재는 원래 시련이 많은 거야."

KBS 수·목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이하 <인순이>)는 이렇게 인순이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눈에 '마이너리티(소수자)'를 위한 응원가임을 알 수 있다. 성공한 소수자로 대표되는 혼혈 가수 인순이의 이름을 따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가 부른 <거위의 꿈>의 노랫말 역시 더없이 잘 맞물린다.

그렇다면 <인순이>가 외치는 응원 구호는? '너 자신을 사랑하렴'쯤이다. "네가 널 안 사랑하는데 누가 널 사랑해?"라며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적시한다. 실제 인순이를 버티게 하는 희망은 '나르시시즘(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자살하려다 외려 사람을 구한 그녀의 "살고 싶다. 살고 싶어졌다. 간절히, 그리고 멋있게! 죽도록 사랑받는 그날까지!"라는 내레이션처럼.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보여주는 '풍자극'

인순이의 친구 상우(김민준 분).
▲ 인순이는 예쁘다 인순이의 친구 상우(김민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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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는 한발 나아가 사실 문제는 인순이에게 있지 않다고 꼬집는다. "오늘 같은 일 한두 번 겪어? 네 탓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왜 당당하지 못해?" 인순이를 위로하는 경준의 말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가 문제라는 일침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결정적으로 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보여주면서 설득력을 보탠다. 그리고 이 모습은 분명히 드라마 밖 현실과 맞닿아 있다. 때론 <인순이>가 신랄한 풍자극처럼 보이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를 극대화하는 것은 인순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속물근성'이다. 중학교시절 친구 상우(김민준 분)는 '인텔리(지식층)'로 불리는 메이저 방송국 기자고,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 선영(나영희 분)은 '화려함'이 강조되는 유명 연예인이다. 마이너리티인 인순이와 달리 '메이저리티(다수자)' 중에서도 '엘리트'인 이들에겐 이중성이 짙게 묻어난다. 물론 이는 같은 인텔리인 상우의 동료나 올챙이 적 모르는 상우 가족도 마찬가지. 

특히 방송국 문화부 기자인 상우는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올곧은 기자인 그도 인순이 앞에선 그녀를 낙인찍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 선생님은커녕 백수라는 그녀의 말에 실망하고 이어 살인 전과자라는 고백에 뒷걸음질친다. 이후에는 인순이를 친구로서의 진심보단 지성인으로서의 자기 위안으로 대한다.

그러니 상우와 엄마임에도 인순이를 보듬지 못하는 선영은 '있는 그대로의 인순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외려 그녀를 배려한답시고 포장하기 급급할 뿐. 실은 자신들을 위해서다. 

학벌주의, 노이즈 마케팅, 그리고 인터넷 여론몰이

이를테면, 인순이의 학력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위조되고 만다. 인순이의 학력을 묻는 후배 재은(이인혜 분)에게 상우는 "학교가 뭐가 중요해?"라면서도 "영국 왕립 디자인 스쿨"이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이다. 이에 재은과 상우의 동료 진태(나윤 분) 역시 있지도 않은 학교 이름을 듣고 "유학파구나"라고 놀란다.

모르긴 몰라도 문화부 기자이고 뉴스를 맡는 아나운서인 이들이라면,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던 문화예술계의 '학력 위조 파문'도 다뤘을 터. 타파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면에 학벌주의에 연연하는 이중적 모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인순이의 엄마 선영(나영희 분).
▲ 인순이는 예쁘다 인순이의 엄마 선영(나영희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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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은 한 술 더 뜬다. 공개적으로 인순이의 학력을 속이는 것이다. '숨겨둔 딸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졸지에 인순이를 '이탈리아 유학파'로 만든다. 더구나 이마저도 인기가 시들해진 선영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겸사겸사 한 행동. 여성잡지나 아침 방송프로그램에서 본 익숙한 광경이다. 

심지어 인순이는 사회의 '괴이한' 모습과도 맞닥뜨린다.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드는 사회 말이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는 그녀의 동영상이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누리꾼의 관심이 집중된 것.

덕분에 "지하철녀"로 불리게 된 인순이는 숱한 'OO녀'처럼 일순간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런 그녀를 엄마와 언론은 가만두지 않는다. 이에 인순이는 몇몇 'OO녀'가 그랬듯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고 드디어 원하던 대로 사랑받는 사람이 된 듯하다. 

이처럼 <인순이>는 '인터넷 여론몰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중요한 민중적 메타포(은유)"라는 순기능과 "대안적 미디어의 산물이 만들어낸 한시적 소모품에 불과하다"라는 역기능을 모두 언급하면서. 

그러나 인순이에게는 후자의 역기능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지하철녀'지, '있는 그대로의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 전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니 그보다 작은 흠이라도 그들이 만든 '지하철녀'와 어긋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는 '가짜 사랑'이라는 얘기다. 

마침내 인순이는 다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깨달을 것이다. 어차피 그래야만 진정 그녀를 사랑해줄 누군가도 나타날 테니.

'모든 인순이'에게 하는 세 마디

이렇듯 인순이가 사는 사회는 가혹하다. 그리고 이를 보는 뒷맛이 씁쓸한 것은 드라마 밖에 있는 인순이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결국 <인순이>는 '세상의 모든 인순이'에게 나지막이 세 마디 말을 건네는 셈이다. 네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래야 다른 사람도 널 사랑할 거라고.

덧붙이는 글 | 이덕원 기자는 '티뷰기자단'입니다.



태그:#인순이는 예쁘다, #인순이, #마이너리티, #나르시시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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