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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타워 크레인의 1/6이 두바이 건설 현장에 동원되고 있다니 산술적으로 볼 때 전세계 건설현장 인부의 1/6이 이 곳에 몰려있다는 얘기가 된다.

두바이가 소속된 아랍에미레이트연합 7개 에미레이트를 통틀어 인구가 500만이 채 안되는 이 나라에서 그 많은 노동자들을 동원하려면 아마 한 사람의 노무자가 24시간 잠을 자지 않은 채 서너 개의 공사 현장을 동시 다발로 움직여야 할 판이다.

반면, 수많은 공사 현장을 돌아다 보아도 흰옷 입은 채로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지인 노무자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우니 처음 이 곳을 찾는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 두바이 소재 낙힐사가 자랑하는 야자수 섬 프로젝트 현장에서 만난 인도,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
ⓒ 이상직

▲ 낙힐사 현장 사무소
ⓒ 이상직
노무자 취업 천국

사지 멀쩡하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걸프국 노동 시장이니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은 물론 중국 심지어 북한 노동자들에게조차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비롯한 아랍에미레이트는 기회의 땅이 분명하다.

파키스탄 북서부 아프가니스탄 국경 인근 마을 페샤왈 출신 M씨는 아부다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 단체 노동 비자를 받고 이 나라 땅을 처음 밟았다. 비자를 받기 위해 특별히 필요한 것이라고는 여권 정도이니 조상 대대로 힘들게 찌들려 살아온 고국 산천을 떠나 타국에서 돈을 번다는 것을 어디엔들 비교할텐가.

생활고에 찌들린 미혼 여성을 골라 숙식 제공에 취업 알선을 미끼로 거액을 받고 알선업체에 해당 여성을 팔아 넘기듯, 그런 식으로 알선업체가 자신들을 눈 감으면 코 베가는 두바이 시장에 팔아 넘겼을 줄이야 어디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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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의 허와실 ①] 과연 유토피아 맞나

싸우면 추방

지난 4월 17일(화) 발표된 아랍에미레이트 국가 전략 발표회장에서 두바이 군주이며 연방의 수상인 세이크 무함마드는 현재 UAE에서 활동 중인 노무자 중 불법 체류자 수가 30만명이 넘었음을 시인했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나라에서 불법 취업자로 전락된 숫자만 30만을 넘었다고 하니 노동 시장의 규모가 대략 짐작이 된다.

이러니 사흘이 멀다 않고 언론에는 아예 고정적으로 건설 현장 시위 소식이 올라온다. 대부분,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회사측을 상대로 작업을 중단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기사화 되는 유사한 내용들의 배경에는 십중팔구 현지인 경영자들의 외지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차별이 담겨 있다.

노조를 결성할 수도 없는 인권의 사각 지대 아랍국, 그 가운데서도 왕이 통치하는 군주국 사우디나 아랍에미레이트와 같은 국가가 노동 분쟁 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흥미롭다.

폭력이 개입되면 무조건 추방을 명한다. 임금을 받았건 못 받았건 상관없이 폭력 예방은 모든 법에 우선시 되는 것이 아랍에미레이트의 최상위 개념이다. 두바이 군주 세이크 무함마드의 칙령에 근거 두바이 소재 건설 현장에서 폭력이 개입되는 노동 분쟁이 발생하면 해당자는 전원 추방된다는 것이 철칙이다. 사우디에 견주어 두바이가 가진 경쟁력이 바로 정치적 안정이 아니던가.

사정이 이러니 시위를 하더라도 돌멩이를 던질 수도 없고 회사측과 몸 싸움은 더더욱 허용이 안된다. 단지 일하는 시간에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이 당하는 어려운 처지를 표현할 뿐이다.

시급 1000원에 우는 노무자들

대부분의 노무자들이 받는 임금은 한 시간 기준으로 4디램 즉 1000원 정도이다.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해 보면 8000원에 한 달을 휴식없이 버텨도 고작 24만원을 손에 쥐는 셈이다.

이 24만원에서 50시간 즉 6일 정도 꼬박 일해야 받게 되는 시급 4만8천원 정도를 매월, 대략 2년간 비자 수속비 등으로 제하고 급여를 수령하니 실제 수령액은 20만원이 채 안될 수밖에 없다.

개별 프로젝트 자체만으로도 '조' 단위가 넘어가는 세계 최고층 빌딩 불주 알 아랍 타워나 두바이 소재 쥬메이라 해변 앞 바다를 메워 건설되고 있는 야자수 섬 프로젝트 역시 노동자들에 대한 이러한 인간 이하의 착취를 바탕으로 개발업체와 중개업체 등 모두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노동 시장이 사시사철 공급으로 넘치다 보니 이런 현상은 이 곳에서 아무도 문제삼을 사람이 없다. 늘 수요가 발생하는 걸프 국가들과 언제나 인력이 넘치는 서남 아시아 국가들 간의 이러한 이해 관계는 국가와 국가를 뛰어넘어 상생의 관계로 자리잡힌 지 오래이다.

최근 들어 UN 산하 관련 국제노동기구나 미국과의 FTA 체결을 위한 걸프 국가간 경쟁 심리로 인해 노동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는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자국민도 노무자로 일하는 사람이 없는 아랍에미레이트와 같은 국가가 과연 노동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이 아니겠는가.

▲ 야자수 프로젝트 현장의 그늘에서 쉬고 있는 인도인 노무자들.
ⓒ 이상직
슬럼에서 살아가는 노무자들

시급 1000원으로 월 급여가 20만원이 채 안되는 노무자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이들이 회사로부터 누리게 될 나머지 복지 역시도 보나마나다.

안그래도 부족한 주택 사정으로 버젓한 직장을 가진 급여 생활자마저도 방을 구하기 어려운 두바이, 아부다비에서 건설 현장 노무자로 일하는 이들에게 번듯한 숙소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건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집단으로 지어놓은 독신자 숙소 역시 한 방에 정원의 두배가 넘는 노무자를 채워 놓고도 모자라 이제는 컨테이너 임시 숙소에서 하나의 화장실을 수십명이 함께 사용하다가 필리핀 노무자와 이집트 노무자간 패싸움이 벌어지는 진풍경도 흔하지 않게 발생하는 노동 현장의 현상 중 하나이다.

▲ 두바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아르메니아 출신 매춘 여성들. 대부분의 아르메니아 여성들은 러시아를 통해 두바이로 들어온다.
독버섯 처럼 파고드는 매춘

얼마전 시리아에서 온 손님을 모시고 아부다비 시내 N 호텔에서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당초 밤 9시 경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시리아와 아부다비간 직항이 없어 카타르 도하를 거쳐오는 관계로 시간이 다소 늦어졌다.

공항으로 마중나간 레바논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거의 10시가 되어가는 무렵이었다. 막 도착하였으니 빨리 호텔 2층에 있는 영국식 바로 오라는 것이다.

마침 호텔 가까운 곳에서 인도 친구를 만나 인사를 나누던 중 받았던 전화로, 한걸음에 내달아 호텔 후면에 있는 문을 열고 곧장 2층으로 올라 간다고 열고 들어간 곳이 아뿔싸 이 호텔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바가 아닌가.

매캐한 담배 냄새에 10명 정도가 앉으면 좋을 성 싶은 좁은 공간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반라의 아랍 여성들이 야릇한 춤을 추는 가운데 거의 움직일 수조차 없이 꽉메운 파키스탄 노무자들의 시선이 무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둘러 들어올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였는데 후문 입구에 서성이던 여러 쌍의 중국인 여성들이 생각났다.

호텔 내부에서는 쇼를 하여 손님을 끌어들이고 쇼 관람을 마친 독신자들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국인 매춘부 여성들과 다시 정문으로 들어와 호텔 방으로 쌍쌍이 올라간다. 이 매춘의 카르텔 심장부에 노동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아랍 에미레이트의 남녀간 성비는 이미 남성이 여성을 두 배 이상 초과하고 있으니 말이다.

총체적 불만의 잠재 상태

버지니아텍에서 얼마전 총기 사고가 있었다. 총기를 매개로 한 사고가 아니었던들 그렇게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동시에, 아랍 에미레이트와 같이 사회간 불평등이 상존하는 이런 세상에 총기 소지가 허락된다거나 아니면 총기가 불법으로 반입되는 날이 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를 생각하니 머리가 혼란스럽다.

유난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죄중 하나가 강간 사고임도 따지고 보면 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하지 않을까. 일부 다처제가 허용되는 아랍 세계에서 고국에 아내를 두고 오거나 미혼으로 넘어와 적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노무자나 저임금 급여 생활자들에게 있어 이 곳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축복의 땅인 동시에 지옥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게다가 노동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서남아시아 즉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출신들 대부분의 성분이 무슬림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직간접으로 갖게되는 부유한 현지인들에 대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정도의 잠재된 분노는 두고 두고 사회의 커다란 병리현상으로 발전될 것이 확실하다.

▲ 장차 UAE를 이끌고 갈 새싹들. 아부다비 북 페어에 단체로 몰려와 비닐백에 가득히 책을 산 다음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직전 다음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 이상직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정부

야구에서는 위기 다음에 기회라고 하던가.

연방 정부 노동부에서 엊그제 흥미로운 규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노무자 급여를 2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을 경우 2개월을 초과하는 날로부터 해당 노동부 직권으로 해당 회사의 노무자 전원을 다른 사업장 즉 노무자가 신규로 필요한 회사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2개월 급여 미지불로 일단 해당 노동부에 명단이 오르면 관련 건설회사와 금융 관계가 있는 주채권 은행에 즉각 통보하여 은행으로 하여금 여신 동결 조치를 취하게 하여 해당 회사는 자동적으로 퇴출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정을 엊그제 부터 실시하였다.

백약이 무효이던 아랍에미레이트 건설 회사 사용자들에게 이 조치가 취해지기 무섭게 그 동안 밀린 임금이 즉석에서 지급이 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급이 넘친다고 그 동안 정부가 자국민 중심으로 오만 방자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불과 1년만에 최근 세계 은행이 발표한 'Doing Business Report' 보고서에서 지난번 68위 대신 78위로 미끌어지는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미국의 뉴딜 정책으로 대변되는 국책 건설 사업의 고용 창출 이론이나 한나라당 선두 주자 이명박씨가 주장하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이곳 아랍 에미레이트의 현실과는 다소 유리되는 감이 없잖아 있다.

아무리 대형 국책 사업을 벌인다고 한들 위로는 대표이사로부터 최말단 노동자들까지 모두 외국인 잔치로 끝나는 그 이면에 최고 경영층 극소수 현지인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통째로 가져가는 현재의 호황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현지인 미취업 인구의 증가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는 여전히 통치권자들의 숙제로 남는다.

한 해 8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호언 장담하는 두바이 군주 세이크 무함마드 등 뒤로 올해도 취업이 되지 않아 일자리 없이 빈둥거리는 아랍 에미레이트 청년들의 한숨이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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