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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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프로구단에게 있어서 전성기를 지낸 '프랜차이즈 스타'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스타'로 크기까지 크고 작은 경기에서 보여준 특별한 능력과 그것을 통해 등에 업은 홈 팬들의 열렬한 사랑은 훌륭한 홍보수단이 된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이미 정점을 지나 팀의 전력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 순간에 돌아보면 거추장스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에게 꼬박꼬박 들어가는 연봉은 유망한 신인 열댓 명의 것을 넘기 십상이다. 또 팬들의 등쌀에 못 이겨 붙박이로 출전시켜야해, 한 번이라도 더 실전경험을 쌓아야 할 차세대들의 무대를 뺏는 것도 구단을 난감하게 만드는 일이다. 게다가 웬만한 감독이나 코치보다 더 깊이 팀에 뿌리박고 후배 선수들을 휘어잡아 훈련 일정을 짜는 것에서조차 그들을 눈치를 봐야 한다. 이 정도 수준의 '상전'이 되고 나면, 구단에게 이들은 '원수'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과감한 팀 개혁'을 명분으로 트레이드를 하거나 방출하려 해도 팬들이 보내올 싸늘한 시선 때문에 쉽지 않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방출·트레이드 된 선수가 다른 팀에서 이를 갈고 재기에 성공해 '제2의 전성기'라며 언론에 오르내리게 됐을 때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단에 전화해 '내가 뭐랬느냐'며 격분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팬들의 '분신' @BRI@그래서 대부분 구단이 원하는 것은 은퇴를 시켜 코치로 선임하는 정도의 타협이다. 그러나 코치 자리는 한정되어있는 데다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고 해서 꼭 지도력을 갖춘 법도 아닌지라 그마저 쉽지 않다. 게다가 대개 팬들의 사랑을 등에 업은 선수는 은퇴 권유를 모욕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스타'를 떠올리면 마냥 흐뭇한 팬과 달리 구단은 곤혹스럽다. 그래서 구단 관계자들은 내심 팬들을 원망한다. 야구에 대해, 특히 구단 운영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특정한 선수만 싸고도는 팬들 또한 팀 발전의 장애물 중의 하나라고 말이다. 그러나 스포츠란 본질적으로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직접 그라운드에 뛰어들어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팬들은 그것을 단지 지켜보지만은 않는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 하나 하나에 자신을 일체화시키고 그들을 통해 손짓 발짓, 그리고 마음짓으로 함께 뛰고, 숨가빠하며 울고 웃는다. 그것이 바로 팬들이 프로스포츠를 즐기는 방식이다. 따라서 팬들이 원하는 것은 훌륭한 경기력을 통해 승리하는 것 이전에, 함께 열망하고 함께 가슴 졸이며 함께 환호하는, 심지어는 함께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는 일체감이며 자존감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감동'이라고 부른다. 팬들이 스타를 아끼는 것은, 그가 경기를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전에, 그가 그동안 팬들을 대신해 비장한 눈물을 흘렸고, 헌신적으로 달렸으며, 승리의 환호를 해줬기 때문이다. 즉, 프랜차이즈 스타는 팬들의 분신이다. 물론 새것이 옛것을 대체하면서 모든 것은 발전한다. 새로운 얼굴이 옛 스타를 밀고 올라서야 야구는 계속되고, 감동도 이어진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까워도 정든 스타를 떠나보내는 것 역시 팬들이 겪어야 할 성장통이며 그렇게 팀을 재정비하는 것도 구단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타란 단지 '잘 했던 선수'가 아니라 '팬들의 분신'이라는 점이다. 프로 스포츠가 팬을 주인으로 세워야 살 수 있음이 분명하다면, 그리고 스타가 그 팬들의 얼굴이라면, 그를 물러 세울 때도 지켜야 할 예의와 격식이 있다. 그 분신을 통해 팬 얼굴에 상처를 내선 안 되는 것이다. 팬들을 슬프게 하는 마해영의 트레이드 소식
 LG트윈스 1루수로 출전해 1루 주자로 나온 호세와 만난 마해영
ⓒ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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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 쯤 되면, 스타플레이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록 그는 자신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운 롯데 자이언츠를 떠난 지 오래됐고, 삼성 라이온즈를 거치며 전성기도 지났고, 현재 낯선 LG 트윈스에서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신세가 됐다. 하지만 그의 몰락을 보며 자신의 일인 양 속쓰림을 느끼는 팬들이 아직 많은, 그는 분명 스타다. 그리고 그런 마해영을 두 번, 세 번 비참하게 만드는 트윈스는 프로야구 팬들의 가슴에 두번 세번 못질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선수니 방출해버리겠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것까지는 별 수 없었다. 그만큼 마해영의 올 시즌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리고 곧장 다른 구단들에서 입질이 오자 이번에는 입장을 바꾸어 '방출이 아닌 트레이드 대상'이라고 입장을 바꾼 것도 이해할 만 하다. 굳이 값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을 공짜로 넘길 이유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한 발 더 나가서, 바뀐 감독의 의지에 따라 그냥 데리고 쓰기로 했다고 말을 바꾼 것까지도 충분히 이해한다. 따지고 보면 그는 해마다 3할 타율에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던 시절은 지났더라도 쓰기에 따라 아직 쓸 만한 선수다. 그러나 간신히 마음잡으려던 선수 이름을 다시 트레이드 대상(다른 팀 선수 1명과 바꾸어질 선수 3명 중 1명으로)으로 공표하는 것은 슬프다. 떠나보낸 아쉬움이 아직 식지 않은 부산의 팬들에게, 또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물받았던 대구 팬들에게, 그리고 비록 지금은 실망으로 바뀌었을지언정 그 마해영을 영입한다는 소식에 가슴 설레었던 서울의 팬들에게도 씁쓸함을 준다. 마해영이 다시 날아오르길, 나는 소망한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박정태, 호세와 함께 구성한 클린업트리오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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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주장이 한 치 어긋남 없이 받들어야 할 절대 당위는 아니다. 그것은 이따금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 팬들 스스로도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도가 있고, 한계가 있다. 팬들 알기를 뭣처럼 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뜻대로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야구판에 정붙이느라 비굴한 감상에 젖곤 하는 한국 야구팬에게 더 이상 잔인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요즘 개인적으로 또다른 걱정 하나는 이런 것이다. 혹, 저러다 마해영이 홧김에 은퇴선언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물론 남은 계약기간에 걸린 돈이 적지 않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 거물 선수가 더 이상 몰리면 못할 것도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걱정이다. 어찌 되었건 따지고 보면 '먹튀'라는 별명에 억울할 것도 없을 마해영 본인이, 아직은 팬들의 기대를 외면하고 옷을 벗어버릴 자격조차 없음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그가 전성기에 보여준 활약을 잊지 못하는 나는 이런 기대를 갖는다. 그가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재기해 트윈스에서건, 혹 다른 팀에서건 마지막으로 딱 한 번은 눈부시게 날아오르기를. 그래서 MVP 수상소감 자리에서건, 아니면 우승 트로피를 대표로 들고 카메라 앞에 선 기자회견 자리에서건 '복수의 완성'을 선언하고 당당하게 은퇴를 선언하는 짜릿한 반전 드라마가 연출되기를 말이다. '피곤하고 짜증스런 나날이겠다만, 마해영이여. 당신에게는 아직 임무가 남았다. 당신과 이미 한 몸이 되어있는 수많은 팬들과 함께, 다시 솟구쳐라. 그래서 99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와 같이, 혹은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와 같이, 통쾌한 홈런 한 방을 당신과 우리 모두를 모독하는 한심한 누군가의 가슴에 날려주어라.'

덧붙이는 글 야구의 추억 연재는 은퇴한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좀 예외적인 것이 되겠습니다만, 그냥 쉬어가는 글 정도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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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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