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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6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성북을 지역구에 출마한 민주당 조순형 후보가 26일 저녁 서울 종암동 선거사무소에서 당원 및 지지자들과 함께 당선을 기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 성북을 지역구 주민은 27만명, 이중 절반이 호남과 충청 출신이라고 한다. 바로 이 곳에서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가 당선됐다. 그래서 상징성이 크다.

범여권 통합론의 지역기반은 호남과 충청이다. 성북을은 호남과 충청을 지역 연고로 하는 주민이 절반을 차지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범여권 통합론의 민심 동향을 살필 수 있는 표본지역이었던 셈이다. 그런 곳에서 주민들은 조순형 전 대표를 선택했다.

조순형 당선, 범여권 통합 문제는?

열린우리당 조재희 후보에겐 10%만 준 반면 조순형 전 대표에겐 44.3%를 몰아줬다. 투표율이 워낙 저조해 민심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래도 격차가 너무 크다.

이 점 때문에 민주당을 범여권 통합의 주체세력으로 인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의 객체로 전락했다는 진단도 뒤따른다. '주체세력'인 민주당의 범여권 통합 밑그림도 이미 나왔다.

민주당의 한화갑 대표는 범여권 통합의 3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불가 ▲분당세력과 통합 불가 ▲헤쳐모여식 신당창당이다. 분당세력을 뺀 나머지 열린우리당 세력과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분당세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천-신-정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친노직계 세력이다. 이 두 세력은 열린우리당 지분의 60~70%를 점유하고 있다. 한화갑 대표는 이들을 배제하겠다고 했다.

그럼 범여권 통합은 어떻게 되는 걸까? 통합이 아니라 양분으로 귀착된다. 그 순간 범여권 통합의 명분이자 대선 승리 방정식으로 간주되는 '반한나라당 연합을 통한 정권 창출'은 물 건너간다.

한화갑 대표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그의 말과 속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화갑 대표가 제시한 3대 원칙 가운데 하나인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불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불가, 속내는...

▲ 한화갑 대표와 조순형 7.26재보선 성북을 당선자, 김효석, 김홍일 의원이 27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조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2석의 미니정당이 142석의 거대정당과 통합을 이루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주도권을 쥐려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방법은 '거대'를 몇 개의 '미니'로 쪼개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분당세력과 통합 불가' 원칙은 '당 대 당 통합 불가'를 실현시키기 위한 지렛대라는 해석이 나온다. '분당세력과 통합 불가'는 목표가 아니라 방법, 과정이라는 얘기다.

한화갑 대표가 분당세력을 운위하면서도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화갑 대표는 지난 24일 CBS <뉴스레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분당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뜻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을 지금 제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분당은 이미 완료된 일이다. 분당세력이 누구인지도 확연하다. 그런데도 한화갑 대표는 특정하는 것을 피했다. 왜 그런지는 자명하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분당세력의 범위를 달리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다. 분당세력을 "분당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넓게 벌린 이유도 같다. 지금은 압박할 때이지 추려낼 때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중간 결론이 나온다. 민주당이 범여권 통합 명분의 주도권은 쥐었을 지 모르지만 통합 추진력을 완비하지는 못했다는 점,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향배는 여전히 범여권 통합의 주요변수라는 점이 그것이다.

때마침 분당세력의 한 축이라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열린우리당에 복귀했다. 복귀 일성으로 그가 토한 말은 "아직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당의 재건과 민생개혁의 전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도 했다. 정동영 전 의장의 자강론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또 다른 축인 신기남 전 의장은 대선후보를 조기에 가시화 하자고 했다. 물론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다. 독일로 떠난 정동영 전 의장은 말이 없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일단' 열린우리당의 틀을 고수하자는 쪽이다.

그렇다고 '완전일치'라고 보기도 어렵다. 천정배 전 장관은 "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와 추미애 전 의원을 열린우리당으로 데려오지 못한 것, 나아가 한화갑 대표를 끌어안지 못한 것이 이 정권의 한계였다"고 했다.

하지만 신기남 전 의장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자강, 또는 홀로서기에 일단 진력하겠다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같지만 '그 다음'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한화갑 대표가 분당세력 추려내기를 "현실적으로 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천-신-정 그룹'도 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막다른 길에 몰릴 김근태의 선택

▲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에서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흐름이 이렇게 잡힐 경우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는 사람은 김근태 의장이다. 그는 범여권 통합 요구와 당 통합 요구의 중간지대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범여권 통합 명분을 내걸고 강하게 압박할 것이고, 당내 '자강 세력'은 당 통합의 리더십을 문제 삼을 것이다.

천정배 전 장관이 일단 "김근태 의장에게 전권을 줘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숨을 돌릴 여유는 얻게 됐지만 어차피 시한부다.

7·26재보선 참패야 이미 예견했던 일, 이것 때문에 김근태 의장 체제가 당장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당심이 조바심을 내는 상황까지 막지는 못할 것이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금지한 정계개편 논의는 이곳저곳에서 삐져나올 것이고, 민생 개혁은 추진과 동시에 평가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범여권 통합과 당 통합 주장이 정면충돌하는 지점에 이르면 김근태 의장으로서도 도리가 없게 된다.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곤혹스럽다. 선택의 권리를 향유하기보다는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당 의장이기 때문이다. 의장직이 독배가 될 수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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