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5회 베를린 영화제 포스터

베를린 영화제가 2월 10일 부터 20일까지 11일간의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올해로 55회를 맞이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품된 35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주최 측은 이번 영화제에 총 3320편의 작품이 출품돼 영화제 역사상 가장 많은 출품작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화제 첫날인 10일, 개막행사가 열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 앞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개막행사에 초대받은 영화배우, 감독, 유명인사의 입장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몰린 일반인, 취재진들로 장사진을 이뤄 축제분위기를 돋웠다.

베를린영화제의 주무대인 포츠다머플라츠 지하 아케이드에서 설치된 영화제 티켓 판매소는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으며, 일부 영화는 이미 매진된 상태다. 영화제 주최 측은 행사가 열리고 있는 베를린 곳곳의 극장, 문화시설 간 무료셔틀버스를 운행중이다.

베를린은 11일간의 행사를 통해 매년 3천만유로(약 400억)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베를린영화제 개막행사장 입구 모습

ⓒ 강구섭

26편 본선 진출...한국영화는 비경쟁 부문에만 4편 올려

개막행사에서 상영된 첫 작품은 경쟁부분에 오른 <맨투맨(Man to Man) 감독 바르니에, 피네에스, 보네빌레>. 1900년대 원숭이와 인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남아프리카로 떠난 인류학연구팀을 소재로 한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합작영화다.

▲ 개막작 <맨투맨>.

영화제의 최대 관심사인 금곰상, 은곰상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본선 작품으로는 총 26편(이중 5편은 이미 상영된 작품이기 때문에 심사대상에서는 제외)의 영화가 선정됐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정치 사회성 짙은 영화를 선호하는 베를린영화제의 특성이 계속 이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994년 르완다 내전 당시의 실화를 소재로 한 <호텔 르완다(감독 테리 조오지)>와 역시 르완다 내전을 다룬 미국 영화 <섬타임즈 인 에이프릴(Sometimes in April) 감독 롤 펙>은 베를린영화제의 이러한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산으로 본선에 진출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소피 숄, 마지막 날들(Sophie Scholl-Die letzten Tage) 감독 로테문트> 또한 베를린 영화제의 성격과 맥을 같이 하는 영화다. <소피 숄, 마지막 날들>은 나치에 저항했던 상징적 인물로 알려진 숄 남매가 1943년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6일간의 삶을 다룬 영화다.

폐막 작품으로는 1948년의 성생활보고서 저자로 알려진 알프레드 씨 킨제이를 소재로 한 미-독 합작 영화 <킨제이(Kinsey) 감독 빌 콘던>가 선정되었다.

▲ 포럼부문에서 상영될 <여자, 정혜>.

김기덕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작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선전했던 것과 달리 올해 한국영화는 비경쟁 부문인 파노라마 부문에 박철수 감독의 <녹색 의자>, 단편 부문에 <세라진>(감독 김성숙), 포럼 부분 <신성일의 행방불명(감독 신재인)> <여자, 정혜(감독 이윤기)> 등 총 4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한편 영화제 비공식 프로그램으로 일제시대 성노예피해자 여성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내 청춘을 돌려다오(감독 한원상)>가 2월 13일 상영될 예정이다.

임권택 감독 ‘명예황금곰상’ 수상

이번 베를린 영화제의 뉴스 중 하나는 임권택 감독의 명예황금곰상 수상이다. 현지 언론은 명예황금곰상을 수상하는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독일 유력 시사주간지 <디 짜이트>는 2월 10일자는 임권택 감독을 ‘한국 영화계의 대부’라 칭하며, “분단문제 같은 사회성, 역사성 짙은 주제를 다루면서 한국적 문화를 잘 표현한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임 감독의 작품 <춘향뎐>을 소개하면서 임 감독의 여성관에 관심을 보였다. <디 짜이트>는 성춘향을 페미니스트로 일컫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이태리 영화감독 페르난도 페르난과 함께 명예황금곰상 수상자로 선정된 임권택 감독은 현지시간으로 12일 15시 공식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며, 같은 날 저녁 9시30분 명예황금곰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회고전 형식으로 <족보> <만다라> <길소뜸> <축제> <춘향뎐> <왕십리> <서편제> 등 임권택 감독의 영화 7편이 상영된다.

▲ 차에서 내려 익살스런 포즈를 짓고 있는 게스트

ⓒ 강구섭

“베를린영화제는 할리우드의 환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가교”

▲ 금요일 오전 9시 경부터 베를린영화제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방문객.

ⓒ 강구섭
한편 이번 영화제에 할리우드 스타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에 대해 일부 언론은 베를린영화제의 ‘시대’가 지났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매년 되풀이되는 베를린 영화제와 할리우드의 관계 논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논쟁의 불씨를 당긴 것은 독일 유력주간지 <슈피겔>. <슈피겔> 인터넷 판은 1월31일 디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에비에이터(Aviator)> <마틸드(Mathilde)> 등 베를린영화제에서 개봉되리라 기대했던 작품들이 영화제 전에 개봉되는 등 베를린영화제의 매력이 점차 하락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코슬릭은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할리우드 스타가 일정상 참여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5년 전에 비해 여전히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코슬릭은 또 “베를린영화제가 할리우드의 지나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영화제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슈피겔> 인터뷰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베를린영화제와 할리우드의 관계에 대한 오래된 논쟁에 대해 코슬릭은 2월 7일, <주트도이체 짜이퉁>을 통해 “베를린영화제가 할리우드 영화에 종속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영화산업에 스타가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스타를 앞세운 할리우드 영화에 종속될 수는 없다는 것.

▲ 행사장 입구에서 표를 구한다는 쪽지를 들고 있는 아저씨. 개막행사에는 초대받은 게스트만 입장할 수 있는데 가끔 입장에 성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 강구섭
코슬릭은 “베를린영화제가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영화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리 구실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베를린영화제가 할리우드가 보여준 환상의 세계에서 실제의 현실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다리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영화제에서는 30여 편의 어린이용 프로그램이 상영되는 <어린이 영화제>, 세계 각국 500여명의 젊은 영화인들이 참여해 워크숍, 토론회 등을 여는 <베를린 탤런트 캠퍼스>가 부대행사로 열린다.

또 80여 개국에서 온 4천여 명의 취재기자를 비롯, 1만6천여 명의 영화관계자가 행사기간 동안 영화제를 방문한다. 또한 행사기간 동안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는 600여 점의 영화가 거래되는 유럽필름 시장도 열릴 예정이다.

본선 진출 26편은 어떤 영화인가

○ 기소자(Accused)/덴마크/감독 Jacob Thuesen (감독의 첫 데뷔작품)
… 14세 된 딸에 의해 범죄 누명을 쓴 한 가정의 아버지의 이야기. 일상 가정의 어두운 측면을 소재로 다룸.

○ 아실럼(Asylum)/미국(아일랜드 합작)/감독 David Mackenzie
…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성적 강박관념을 다룬 영화. 1950년대 심리치료사의 아내가 남편의 환자와 정열적인 관계에 빠진다.

○ De Battre Mon Coeur s’est Arrete /프랑스/감독 Jacques Audiard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부정한 부동산업을 돕는 젊은 아들의 갈등을 그린 영화.

○ 유령(Gespenster)/독일, 프랑스/감독 Christian Petzold
…15년 전에 베를린에서 납치당한 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베를린을 헤매는 프랑스 여인을 다룬 영화.

○ In Good Company/미국/감독 Paul Weitz
…51세의 광고담당 책임자가 20대의 상사를 맞이하면서 겪게 되는 마찰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 숨겨진 검(The Hidden Blade)/일본/감독 Yoji Yamada
…일본의 옛날 사무라이의 사랑과 싸움을 소재로 한 영화.

○ 공작(Peacock)/중국/감독 구 장웨이
…카메라감독에서 정식 영화감독으로 데뷔작), 중국의 작은 도시 헤난의 노동자가정의 일상을 다룬 영화.

○ Le promeneur du Champ de Mars/프랑스/감독 Robert Guediguian
…죽음을 목전에 둔 정치가에게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젊은 언론인. 프랑스의 역사적 정치인 프랑수아 미테랑을 소재로 만들어진 픽션영화.

○ Changing Times/프랑스/감독 Andre Techine
…헤어진 지 오래된 연인이 수년 후 다시 마주치면서 겪게 되는 상황을 소재로 함.

○ Words in Blue/프랑스/감독 Alain Corneau
…여섯 살짜리 딸을 데리고 세상과 격리해 살아가는 여인을 소재로 한 영화.

○ 맨 투 맨(Man to Man)/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합작/감독 바르니에
…1900년대 원숭이와 인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남아프리카로 떠난 인류학연구팀을 다룬 영화.

○ 유럽에서의 하루(One Day in Europe)/독일 스페인 합작/감독 Hannes Stoehr
…유럽축구챔피언전이 열리는 축구장에서 발생하는 소매치기, 훌리건 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 파라다이스 나우(Paradise Now)/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합작/감독 Hany Abu-Assad
…유년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자살폭탄테러범 두 팔레스타인 청년을 다룬 영화.

○ Smalltown, Italy/이태리/감독 Stefano Mordini(감독의 영화데뷔작)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두 아이를 둔 젊은 부부 가정이 사회적 규범에 의해 파탄되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

○ 태양(The Sun)/러시아/감독 Aleksander Sokurov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 이후 일본 신성 포기선언을 하는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룸.

○ Sometimes in April/미국 르완다 합작/감독 Raul Peck
…르완다 내전을 다룬 영화.

○ 소피 숄- 마지막 날들(Sophie Scholl the Final Days)/독일/감독 로테문트
…나치에 저항한 숄 남매가 처형당하기 전 6일간의 마지막 삶의 다룬 영화.

○ Thumbsucker/미국/감독 Mike Mills(단편, 다큐 작업을 하던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
…엄지손가락을 빠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십대 남자아이의 ‘손가락 빨기와의 전쟁’을 다룬 기발한 코미디 영화.

○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미국/감독 Wes Anderson
…할리우드 스타를 대거 동원한 황당한 바다 속 모험여행 영화.

○ The Wayward Cloud/대만 중국 프랑스 합작/감독 Tsai Ming Liang
…시계상을 하는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집에서 포르노 모델로 새로운 직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감독 차이 밍량은 작품을 통해 소외와 고립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다룸.

○ Carmen in Khayelitsha/남아프리카/감독 Mark Dornford-May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트의 카르멘을 현대화된 남아프리카의 한 지역언어로 부른 영화.

본선 진출작 중 심사 대상 제외 영화(기 상영작)

○ Heights/미국/감독 Chris Terrio(감독의 첫 데뷔필름)
…대도시 뉴욕을 살아가는 다섯 명의 집, 거리, 술집에서의 24시간을 그린 영화.

○ Hitch/미국/감독 Andy Tennant
…변변치 않은 남자와 예쁜 여자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뉴욕 커플중개인을 다룬 코미디.

○ 호텔 르완다(Hotel Rwanda)/영국 남아프리카 이태리 합작/감독 Terry George
…1994년 르완다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 킨제이(Kinsey)/미국 독일 합작/감독 Bill Condon
…1948년 발표된 남자의 성과 관련된 행동양식에 대한 보고서인 킨제이보고서의 저자 알프레드 씨 킨제이를 다룬 영화.

○ 티켓(Tickets)/이태리 영국 합작/감독 Ermanno Olmi 외
… 로마로 향하는 유럽기차 여행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을 그린 영화. 가진 자와 소외된 자의 이야기를 통해 기차표의 가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 강구섭 기자



2005-02-11 10:53ⓒ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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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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