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인 홍보로 논란을 일으킨 영화 <귀여워>의 포스터
한국영화가 지금과 같은 전성기를 맞이하기 전, 한국 영화평을 쓰는 외국 평론가, 혹은 영화 전문 기자들이 그야말로 한국 영화에 많은 애정을 지닌 소수에 불과했을 때, 지금은 사라진 <키노>(KINO)라는 영화잡지에서 실린 한 구절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외국 평론가가 본 한국 영화'쯤 되는 그 기사에서 어느 평론가는 "동양인들이 등장하고 강간장면이 나오면 '아, 한국 영화군!'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외국에 많이 알려진 한국 영화 속엔 거의 빠짐없이 강간 메타포가 남용되고 있었다.

그 후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어떤 한국인 유학생이 만리 타국에서 한국 영화제가 열리기에 자랑스럽게 친구들을 데리고 영화제를 찾았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김기덕 감독보다 훨씬 교묘하게 여성을 왜곡한다'며 항의해서 부끄러웠다는 글, <서편제>에서 딸의 의사와 상관없이 눈을 멀게 만드는 아버지의 폭력성이 끔찍했다는 외국인들의 반응, 또 그와 유사한 내용의 글도 많이 보았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문제가 된 '강간신화'(여성은 강제로 강간을 당하거나 성적 접촉을 당해도 결국엔 좋아한다는 허구적 믿음. 주로 영화, 소설, 포르노에서 끝없이 재생산되며 현실 속에서도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장면에 대해서 실제 몇몇 여성 장애인 개인과 단체에서 불편함을 호소했으나 그 목소리는 '영화의 예술성'이라는 '대의'에 묻혀 소리 없는 외침으로 사라졌다.

"동양인이 등장하고 강간장면이 나오면 '아, 한국 영화군!'"

<공익광고의 은밀한 폭력>(2000)을 쓴 김종찬은 예술,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켜 흥행에 성공한 영화 <거짓말>에 대한 논란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성인을 미성년자로 분장시킨 성애물을 아동 성매매와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도 실제 성인이 미성년자로 분하여 성애물을 찍거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아동 성애를 표현하는 것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욕구를 반영한다 하여 논란이 많으며 일부 규제한다.

1000만 관객이라는 한국 영화 제2 전성기의 화려한 폭죽 밑에 묻혀버린 것은 한국 영화 다양성의 위기, 최저 임금도 못 받는 스태프들의 현실만은 아니다. 한국 영화 속 여성들은 때로 목소리마저 거세된 헌신적이고 전형적인 어머니(<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남성들의 성적 대상(<친구>)이거나 심지어 잔혹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남성 주인공에게 강간을 당하는, 그럼에도 그 고통마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객체'(<실미도> <해안선>)였다.

영화 속 여성 이미지가 흔히 어머니(혹은 성녀)-창녀의 이분법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현상은 아니기에 그에 대한 분석들은 국내외에서 지난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는 영화, 영화 홍보, 영화 비평까지 3박자를 맞추며 여성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으며, 논란이 되는 영화들조차 독특한 표현과 색깔로 예술성을 인정받거나 외국에서 상 한 번 타오면 면죄부를 주고 있다.

 순이 가슴 만지기 게임 화면. 지금은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최근 그 정점에 있는 영화 <귀여워>는 이미 그 홍보 사이트에서 여배우의 '가슴 만지기 게임'을 제공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게임 설명에는 "오늘은 순이가 가슴을 허락하기로 한 날이다. 기회는 지금뿐! 한 번 원 없이 만져보자"라고 써있으며 게임을 시작하면 화면에 남성과 순이 역을 맡은 예지원이 번갈아 나오는데, 남성은 박치기로 때리고 예지원이 나오면 손으로 가슴을 만져 점수를 올릴 수 있다.

어린이들도 아무런 제재 없이 여배우의 가슴을 만지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여 비판 여론이 일고 안티 사이트까지 등장하자 제작사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허술한 성인인증제를 도입해서 계속했다. 항의가 계속되자 게임서비스는 중단되었지만 동시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도 폐쇄되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길에서 '주워온' 한 여자에게 욕정을 품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는 <귀여워>는 그 설정에서부터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데 영화의 홍보도 박자를 잘 맞춘다.

이 영화의 인터넷 광고 홍보 문구는 '성매매 특별법 부작용 심각! 욕정을 풀지 못한 네 부자, 그녀가 나타나자 와르르 무너졌다'다. 성매매 특별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선정적 문구다. 남성은 성매매라도 하지 않으면 성욕을 배출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킨다는 항간의 잘못된 오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영화 홍보, 영화 비평 3박자로 여성 비하

영화 홍보의 선정성과 성 상품화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홍보 문구는 '내 애인 창녀 만들기'다. 이 영화의 홈페이지는 첫 화면에 홍등을 밝힌 사창가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효과를 주었고, 남자 주인공을 정당화하는 각종 행사도('나도 나쁜 남자' 등 3가지) 함께 진행했다.

지난해 개봉한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아예 '성인인증' 과정을 둬 강도 높은 노출을 앞세워 홍보했고, 일본인 탤런트 유민이 등장한 <신설국>도 홈페이지에 '야설'이라는 코너를 개설해 기존 영화에 담지 않은 수위 높은 섹스 장면을 수록했다.

이 외에도 <바람난 가족> <얼굴 없는 미녀>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포스터와 광고, 홈페이지에 여주인공들의 과감한 노출과 정사 장면을 게재해 선정성 시비에 오르내렸다.

또 일부 영화사들은 <미치고 싶을 때>의 여주인공 시벨 케킬리 포르노 동영상과 S다이어리의 김선아가 홍보를 위해 찍은 'S양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다는, 영화와는 관계없는 자극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다. 일부러 비난 여론을 일으키는 부정적 전략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최근 영화 홍보는 그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내 애인 창녀 만들기'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한 영화 <나쁜 남자>의 포스터
외국의 평가나 영화의 미학 부분에 지나치게 휘둘려서 1000만 관객에 환호하고 <송환>이나 <죽어도 좋아> 같은 영화, 다큐멘터리나 정치 영화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 부익부 빈익빈의 괴물과 같은 한국영화계를 만든 데는 비평가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일부 비평가들은 영화의 줄거리나 시대적 반향보다는 표현의 참신함과 형식적 완성도에만 점수를 줘 이러한 영화 풍토에 일조했다.

이러한 비평 분위기에서 소외된 자들, 그리고 여성의 존재는 잊혀진지 오래다. 최근 씨네 21의 김도훈 기자는 <귀여워>의 영화평에서 "도로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주워진' 순이는, 너무나 귀여운 나머지 학대해버리고 싶은 여자다. 섹스하고 싶어지고, 결혼하고 싶어지고, 가슴을 만지고 싶어지고, 사창가에 팔아버리고 싶어질 만큼 귀엽다"고 주장한다.

"사도-마조히즘의 발로라 욕하지 말라. 순이는 사람이기 이전에 판타지이며, 여성이기 이전에 여신인 캐릭터다"고 미리 변명해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판타지가 아니라 설사 만화영화라고 해도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자는 잠시 잊은 것일까. 여타 매체에서도 <귀여워> <오아시스> <실미도>를 비롯해 여성 묘사로 논란이 되어온 영화들에 대해 칭찬 일색일 비평만 찾아볼 수 있을 뿐 여성의 시각은 배제되어 왔다.

현 영화 비평은 칭찬 일색의 주례사라는 비난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주례사비평 이제 그만, 조종국, 씨네21 2002-08-14) 한국 영화계의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채찍은커녕 대세에 영합하여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제 한국 영화의 여성 비하를 말할 때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영화와 그 홍보, 비평에서 여성의 문제는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진정한 문화와 예술은 시대와 호흡하고 현실을 앞서간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국가의 이미지를 바꾸기도 한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은 좌파 감독이라 불리며 꾸준히 노동자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내고 있으며, 마이클 무어는 감히 영화 한 편으로 부시 재선을 막아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수퍼 사이즈 미>라는 영화 한 편은 맥도날드와 여타 패스트푸드 체인의 메뉴를 바꾸기도 했다. <겨울연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으로 여행을 온다.

007 영화에 나오는, 베트남 모자를 쓰고 소를 몰아 쟁기 끄는 한국인의 이미지에 기분이 나쁘다면, <폴링다운>에서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백인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야구방망이로 얻어맞는 한국인의 모습이 불쾌하다면, 스파이크 리 감독이 흑인인권을 주장하면서 만드는 영화마다 한국인을 비하하는 것이 문제라고 느낀다면, 우리 미디어와 문화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할 일이다.

많은 장점을 지닌 영화들이 어떤 부분이 왜곡되고 폭력적일 수 있으며 그것이 한 두 편이 아니라 큰 흐름을 이룰 때 정말 큰 문제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대중문화의 수용자(수동적 수신자가 아닌 능동적 수용자)는 알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 제2 전성기에 여성의 이미지가, 그에 대한 묘사와 발언들이 지속적으로 함부로 왜곡되고 있음을 이제는 생각해 볼 때다.

덧붙이는 글 주례사 비평에 대한 문제제기는 문학, 출판계에서도 최근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학권력>(강준만 저)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고명철, 김명인 등저). 문화는 작가나 감독 뿐 아니라 비평가, 언론, 수용자가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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