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의 요즘 행보는 한마디로 종횡무진이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려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는 현재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꾸민 자신의 영화사 강제규필름을 운영하고 있는 것외에, 역시 강남 역삼동에 대규모의 인터넷방송국 iCBN을 차렸고 또 최근에는 동아극장을 인수해 Zoo 002라는 이름의 복합관으로 바꿨다.

그리고 급기야는 이수만의 SM프로덕션 등과 함께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인 “아이스크림 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대형사고’를 잇따라 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영상산업계의 제패를 노리는 그의 공격적인 활동에 대해 대부분 ‘역시 강제규답다’라는 평가가 이어지지만 한편에서는 영화계 내공과 비교해 볼 때 그가 자칫 ‘주화입마’에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영화계의 리더격인 한 영화제작자는 강제규감독의 전방위적 활동을 두고 “모래성을 쌓고 있다”고 지적하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업체를 채울 만한 컨텐츠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먼저 영화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강제규감독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느냐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어찌 보면 자명하다. 그가 현재의 국내 영화계 판도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영화계는 크게 강우석감독이 실질적인 운영권을 갖고 있는 시네마서비스와 제일제당의 영화사 CJ엔터테인먼트로 양분돼 있다.

한때 차승재·신철·이은 등 중견 프로듀서들이 反강우석 연대를 형성하며 3각축 구성에 주력했지만 차승재씨가 종합엔터테인먼트사 “사이더스”를 설립하고 강우석 라인에 합류함으로써 새로운 세력 형성에는 실패했다. 이 틈새를 강제규감독이 차지한 셈이다.

영화계에서는 6백만 관객동원이라는 초대형 히트작을 만든 강제규필름이 차기작들의 배급과정을 놓고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둘 중 어느쪽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 전체 판도의 기울기가 만들어질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강제규감독은 단기적으로는 CJ측과 손을 잡고 가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독자적인 세력, 곧 또 하나의 메이저 영화사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장을 인수하고 종합엔터테인먼트사 설립에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너무 일을 벌인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여러 일들이 결코 무절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 기회를 통해 분명히 밝히고 싶다. 강제규필름은 현재 향후 3년 계획에서부터 5년, 10년후의 중장기계획까지 갖고 있다.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 제작자로서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오해들이 있는 건 영화 만들기라는 게 준비 단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속성때문이다. 이런 회사 차리고 저런 회사 차렸다는 건 바로 눈에 보이는 일이니까, 마치 사업 확장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양질의 컨텐츠, 곧 작품을 만들어서 극장에 공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인력 70%를 제작부문에 투입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본래 예정했던 대로 4-5편의 영화들이 선보여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얘기들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다만 나 스스로가 경영전문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일들을 꾸려 온 것이 다소간 무리가 있었다는데는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사업분야를 전담할 전문 경영인의 영입도 서두르고 있다. 그 이후가 되면 내 본업인 창작쪽에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아이스크림 엔터테인먼트” 설립을 주도했다. 꼭 필요한 조직이었나?

“그렇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 지금 좋은 시나리오가 있고 당장 기획에 들어가 한 6개월 쯤 후에 개봉을 시킨다고 가정해 보라. 이 작품이 만약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음반의 소프트웨어로도 활용할 수 있다면 영화제작을 모두 끝내고 다른 분야 제작을 시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기획에 들어가야 한다. 게임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는가? 최소 2년이 걸린다.

하나의 컨텐츠를 멀티 유즈하려면 시작 단계부터 인력이나 자금, 조직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동시 진행을 하려면 몇 개의 단위 조직들이 긴밀하게 연대할 필요가 있다. 새로 만든 회사에 강제규필름을 포함해 음악분야의 SM프로덕션과 애니메이션의 나이트 스톰, 게임의 엔씨소프트, 캐릭터의 바른손 등 다양한 업체들이 참여한 것도 그런 취지에 오랫동안 공감해 왔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은 얘기가 나와서 만드는데까지 8개월이 걸렸다.”

극장도 운영한다. 만만찮은 일일텐데..

“Zoo 002 극장말인가. 그건 결국 우리가 메이저를 지향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 극장을 시작으로 서울 강남 지역에 체인망을 구상중이다. 극장을 사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영화의 유통 배급망을 갖지 못하면 경쟁력이나 영향력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의 극장 유통상황을 보라. 영화 제작자는 객이지 주인이 아니다. 일정 부분 유통분야에서 영향력을 갖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창구를 봉쇄당한다고 본다.

이건 외국 직배사와의 경쟁관계를 생각할 때도 유효한 얘기다. 일본영화산업이 아무리 기울고 있다고 해도 연평균 객석점유율을 30%선에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쇼치쿠나 도에이같은 메이저들이 유통망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브라질같은 남미 상황은 배급권한을 90% 이상 내줬기 때문에 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가 메이저영화사를 지향하고 있는 시점에서 기존 극장의 인수와 운영을 맡은 것은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는 강제규필름의 영화제작 능력이다.

“우리가 제작에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지 라인업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결코 영화제작에 소홀히 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단전비연수>가 있다. 마지막 촬영중인데 11월 10일경 개봉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시나리오를 완성한 작품으로는 <베사메무쵸>가 있다. 곧 촬영에 들어간다. 이 작품과 동시에 코미디로 <펠레스코아>가 준비중이다. 시나리오가 거의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영화도 만든다. <야다>란 작품이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아들 3대가 나오는 코미디 영화가 한편 더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해피 버스데이>도 있고 무엇보다 <쉬리> 속편을 준비중이다. 내가 직접 감독할 작품은 조금 규모가 크다. 지금 공개할 수는 없지만 곧 모든 일정을 밝힐 예정이다. 외부 투자자본으로부터 지원받아 3,4편 정도의 영화도 더 만들 생각이다. 이 모든 것이 지금부터 시작해 앞으로 1년간 그러니까 내년 중반기까지 대부분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들이다.”

당신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앞으로 향후 5년내에 세계 영화계 판도는 크게 변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할리우드가 모든 것을 휘어잡고 불평등한 지배를 하는 시대가 아닐 것이다. 바로 중국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열리면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영화시장의 상당 영역이 아시아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고 그 변화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한국이 주도할 공산이 크다. 아시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대표적 회사가 세계를 대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내 목표는 바로 그것, 아시아의 대표선수가 되는 것이다. 세계 영화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하고 싶다."
2000-08-15 17:2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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