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간의 필리버스터는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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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근본, 그리고 잠들어 있던 시민을 깨운 야당의 필리버스터


 국내외에 화제가 되었던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차례로 막을 내렸다. 비록 많은 시민이 바란 끝까지 싸우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8일간 지속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우리 사회와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남겼다. 과거 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8일은 정말 치열했다.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시작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많은 시민이 정치 이야기에 눈을 향하고, 귀 기울이게 했다.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우리는 대 테러방지법이 어떻게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국정원의 잘못과 함께 여전히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대통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마치 쇼를 하는 것처럼 하루 이틀로 막을 내릴 것 같았던 필리버스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이 국회로 향하게 했다.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부모님의 아이와 함께 국회 방청을 오기도 했고, 국회 연단에 서서 진실한 자질을 보여준 의원들은 빛났다.


 비록 필리버스터 막바지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지지를 호소한 의원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번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숨어있는 진주' 같은 의원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제대로 역할을 못 했던 야당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도 제법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기회가 되었다.


김광진 의원 필리버스터 장면


 이렇게 잠자는 시민의식을 깨워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필리버스터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우리는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진실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또박또박 근거를 제시하며 '테러방지법'을 반박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에서 꺼질 것 같았던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필리버스터의 시작은 지연전술이었습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을 비켜서 오솔길로 가다 보니까 뜻밖에 거기서 국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를 미워하는 줄만 알았는데 정치에 대한, 정치와의 소통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가 국민께서 국회에 대한 노여움을 씻어내시고, 정치 무관심의 빗장을 푸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중략) 민주주의를 행한 행진은 이것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입니다.

길이 끝난 곳에 새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길은 내비게이션 안내도 안 나오지만 무한한 도전으로 저희가 새 길을 개척해나가며 민주주의 역사를 전진시키겠습니다."


 윗글은 이석현 부의장의 말이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단순히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우리가 다시금 멀어진 정치를 가까이서 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 이후 급속히 후퇴하는 민주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시민은 언제나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우리는 필리버스터를 8일간 이어간 의원들을 통해 테러방지법이 왜 문제가 있는 법안인지 알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정치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와 불통에 답답해했는지 8일간의 필리버스터가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필리버스터는 무엇을 남겼나, ⓒJTBC 앵커브리핑


 손석희 앵커는 지난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수구 언론이 해내지 못한 역할을 작은 언론들(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아프리카TV)이 해냈다고 말한다. 수구 언론은 저질스러운 네거티브 공세로 필리버스터 가치를 폄하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그곳에서 벗어나 소통하며 진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테러방지법은 결국 통과되었다. 다시 한 번 더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아이폰으로 이동하는 사이버 망명이 불어닥칠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개인 정보가 보호되지 못함에 걱정할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런 걱정 없이 우리 한국의 냄비 본성 그대로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밤새 움직였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현장을 보기 위해서 국회를 찾았다. 이러한 태도를 우리가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면, 언제나 남 탓과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들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의 저자 다니엘 튜더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 순간을 한 달 후에 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살아있는 정치, 소통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강하게 시민들의 깊은 의식 속에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4.13 총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여당과 야당 모두 이번 필리버스터를 선거 공세에서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좋든, 싫든 그 결과는 다음 달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볼 수 있게 된다. 오늘 글의 마지막은 심상정 의원의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권력이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 행위는 잠정적으로만 유효합니다. 이 테러방지법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2년 남았습니다. 총선 결과에 따라 이 테러방지법도 달라질 것입니다. 필리버스터에 모였던 관심이 투표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리버스터, 선거운동 아니냐? 모든 정치는 선거운동입니다. 그것을 왜 부정해야 합니까. 제가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없다는 거 알면서 이 자리에 온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말을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장의 투표용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선거는 더구나 객관식입니다. 정부도 야당도 경제도 정책 후보 다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비유 드리고 싶습니다."

"선거는 교차로에 선 차와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단호히 경고하는 신호등 불을 켜 주십시오. 그것이 얼마 후 통과될 테러방지법의 대안입니다. 선거는 교차로 신호등입니다. 무슨 색을 골라야 하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위태롭습니다."

"국민에게 솔직하고 겸허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이 무엇보다 야당을 적으로 생각하는 대결적 정치관을 바꾸기를 주문합니다."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제도개혁만큼 우리가 되찾아야 할 정치적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행착오를 줄이며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국정원의 잘못만이라도 인정한다면 대화와 타협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라서 졌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국민은 불의와 불평등에 지쳤습니다."

"원래부터 불의한 것은 없습니다. 불평등과의 대결은 우리의 전제조건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 자리에서 다시 싸울 것입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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