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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머리 묶은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전시회




머리 묶은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전시회
<찻그릇과 달항아리 김원주 도예전>

지난 주말 남원에 다녀왔습니다. 아는 형의 전시회 때문이었죠. 그는 화가이자 도예가인 김원주 씨입니다. 전시회는 남원 시내의 선원사 '갤러리 선'에서 열렸습니다. 그와 여행자는 '달빛파' 조직원입니다. 조직원 이래야 단 세 명뿐이고 간혹 스님이나 주위 지인들이 함께하곤 합니다. 주요 임무는 술 마시면서 달을 따는 것입니다.


전시회가 열린 선원사는 예부터 '남원팔경'으로 불리던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해질녘에 은은히 들려오는 종소리가 아름다워 '선원모종'이라 불리며 남원팔경 중의 5경을 이룹니다. 선원사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는 다음에 따로 풀어야겠습니다.
 


전시회는 지난 6일 토요일 2시에 개관을 하였습니다. '찻그릇과 달항아리 김원주 도예전'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던 그가 도자기 전시회를 연 건 수십 차례, 개인전은 2007년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연 찻그릇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찻그릇과 달항아리가 주요한 작품전 주제입니다. 원래는 달항아리전을 하려고 했는데 전시회가 선원사라는 사찰에서 열리게 되어 찻그릇도 함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원의 지역 인사들이 와서 전시회를 더욱 빛내주었습니다. 여행자는 사진만 찍었는데, 전시회에 관한 글들은 다른 분들이 더 상세히 쓸 것 같습니다. 저는 가볍게 전시회 분위기만 전달할까 합니다.


김원주 화가입니다. 예전에도 두어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달빛파' 조직원답게 카리스마가 철철 넘칩니다. 웃지 않으면 다소 매서운 인상이라 오늘은 웃는 모습만 골라서 올립니다.


달항아리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찻그릇도 틈틈이 제 역할을 하고 있고요.


달항아리를 처음 보면 ‘이거 뭥미’ 할지도 모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제법 문자를 섞어 이야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가끔은 소박하지만 그냥 자신의 느낌대로 보는 것도 좋습니다.


여행자는 무얼 보았을까요? 그냥 뚫어지게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자기와 빛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도자기들을 보았습니다. 무채색의 항아리 선이 한 번, 두 번, 세 번 둥근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달무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번에는 손으로 달항아리를 잡아 보았습니다. 조금 그런가요? 비싼 달항아리에 웬 장난이냐고요? 그래도 느낌이 조금 다르지 않나요?

뭐라고 할까요. 달항아리를 보면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저 평온함 그리고 정적. 그러니 계속 쳐다볼 수밖에요. 이번에는 잔잔함이 느껴집니다. 마치 고요한 호수에 잔물결이 이는 듯합니다.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제법 세차게 움직이는 듯합니다. 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지고 끝없이 물결이 파장을 일으킵니다. 항아리는 마침내 자신의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비틀더니 하늘로 올라갑니다. 靜한 가운데이 있고 대칭인 듯 비대칭이 아닐까요. 그제야 '순백의 비대칭 미학'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항아리 안에 달이 떴네요. 둥근 보름달이 말입니다.


아, 이번에는 반달이 떴습니다. 보름달은 희미하게 그 잔영만 남기었군요.


때론 이런 거침이 좋습니다. 고움도 거침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작은 거친 것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서서히 아름다워지는 과정에서 나온 정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늘 밝은 곳에 있는 이들이 조명을 받지만 어두움이 있기에 밝음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는 늘 잊고 살게 마련입니다.


전시회에 오면 다들 진지해집니다. 말을 줄이고 눈과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젖힙니다.


때론 색의 변화를 통해 또 하나의 세상을 봅니다.


질끈 묶은 긴 머리와 수염이 잘 어울리는 그는, 그의 말대로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그와의 첫 만남도 사진발 좋은 도예가가 있다는 하 선생님의 소개로 이루어졌지요. 정작 사진은 못 찍고 첫 만남에 주거니 받거니 밤새 술만 마시다 마지막에 달을 따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헤어졌답니다.


달항아리 잠시 감상....


찻사발도 덤으로 감상....


그러고 있는데 머리 묶은 남자들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옵니다. 이게 뭔 일이다냐. 예전 김원주 화가가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 오래 머물면서 벽화를 그린 적이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삼성궁에 동행을 했었지요. 그래서 삼성궁에서 왔나 보다 여겼는데 아니라고 하더군요. 머리 묶은 사내들의 모습이 전시회와 퍽이나 어울립니다.


"야 이거 머리 짧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어색한데." 누군가 한 마디 합니다. 그 순간은 머리 짧은 이들이 더 적었습니다. 대략난감입니다.

왜 예술인들은 대개 머리를 기를까요? 폼 나서요? 가끔 드는 의문입니다. 저도 장기간 여행할 때에는 수염을 깎지 않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군요. 여행 다니는 데에는 관리에 편한 짧은 머리가 최고이지요.

아마 자유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연스러움, 글쎄요. 대체 왜 머리를 기른다요?


<찻그릇과 달항아리 김원주 도예전>은 8월 15일까지 합니다. 주말 남원 인근을 지나실 일이 있으면 한 번쯤 들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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