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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교통

우리나라 길은 왜 서민에 대한 배려가 없을까?

by 이윤기 201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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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블로거 달그리메님이 쓴 '우리나라 길은 서민에 대한 배려가 없다'를 읽다가 저도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글을 적어봅니다.

달그리메님은 우리나라가 사통팔달로 길이 잘 뚫려있지만 자동차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달그리메님이 블로그에 쓴 글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다보면 우리나라 길 정말 잘 나 있구나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통팔달 뚫리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강이 있으면 다리를 놓고 꾸불꾸불 한 길은 다림질을 해서 쭉쭉 폅니다. 이게 정말 국도가 맞나 싶을만큼 고속도로 같은 국도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길들이 대부분 자가용 중심으로 나 있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길입니다. 자가용이 없으면 평생 한번도 다녀보지 못할 길도 많습니다." (달그리메님 블로그 우리나라 길은 서민에 대한 배려가 없다' 중에서)

고급승용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20년 가까이 자동차를 타고 다닌 저는 미처 이런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제 차가 없으면 남의 차를 빌리거나 혹은 그도저도 안 되면 렌트카라도 빌려서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길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해 봤습니다.

승용차가 없어야 대중교통의 불편을 깨달을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차가 없으면?'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가끔 승용차를 세워놓고 일부러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고, 혹은 장거리 출장을 갈 때는 반드시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지만, 시내 중심가에 사는 덕분에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큰 불편함을 경험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진짜 이유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할 때는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승용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네요.

최근 블로거 '실비단안개님'이 창원시 버스 환승시스템의 문제점을 부산과 비교하여 적은 글 '우리동네도 교통카드 시대 활짝 그러나' 같은 글도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은 좀 처럼 느낄 수 없는 불편을 지적한 글이지요.


▲대한민국을 그물망처럼 엮어놓은 편리(?)한 고속도로



자동차 문화는 어떻게 자리잡았나?

최근 제가 읽은 책에 지금과 같은 자동차 문화가 자리잡게 된 원인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내용이 있어서 한 번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긴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은 환경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이면서 정치학자인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가 쓴 책인데요. 


2004년에 읽었던  책인데, 얼마 전에 오키나와에 가서 저자인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어서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미국로스앤젤레스가 어떻게 자동차 도시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우 유명한 일입니다만, 1920년대까지 로스앤젤레스는 세계에서도 유수한 통근전차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것을 자동차 회사가 사들였습니다. 그들은 차츰 전차를 줄여가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다가 마침내 적자라며 전차운행을 모두 중지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 안의 철도나 노면전차 회사를 매수하여 자동차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매우 폭력적인 역사입니다. 자유시장 속에서 자동차 문화가 성립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승용차)가 대중교통인 통근전차와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하여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더 많은 자동차를 팔아먹기 위하여, 전차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중교통 체계를 파괴하고 자동차 중심으로 교통체계를 재편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동차회사가 도로 건설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면?

오늘날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자동차(승용차)가 대중교통인 철도나 노면전차 보다 더 편리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매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중교통 체계를 무너뜨리고 만들어낸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 역시 자동차 산업이 철도나 노면전차 중심의 대중교통을 체계를 흔들어 놓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정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자동차 산업을 지원했습니다. 1950년대에 아이젠하워는 정책으로서 미국 전역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공사업을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미국 문화의 기본이 되어 있습니다. '패스트 푸드'나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이 나라 안 어디에나 생겼습니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전국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결국 자동차 회사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오늘날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음식을 구입할 수 있는 식당이 생긴 것은 모두 자동차 중심의 정부 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에서도 옛 국철은 적자로 세금만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을 당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일본의 자동차 회사가 도로를 전부 만들고 관리했다면 자동차 한 대가 얼마나 비싸졌을까요? 차가 편리하기 때문에 자연히 자동차 사회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정책으로서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차가 편리하기 때문에 자동차 중심사회가 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차가 가진 편리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차가 더 편리하다는 것만으로는 자동차 중심사회가 될 수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정부의 정책이 철도나 노면전차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교통 체계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과 같은 자동차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이 자동차를 많이 이용하도록 만들었다.

해방 후 미국 문화를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미국의 경제정책, 도시정책을 고스란히 베껴온 우리나라 역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동차, 그중에서도 승용차가 중심이 되는 교통정책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승용차로 도저히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일부 대도시에는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체계를 도입하였지만, 대부분의 중소도시는 모두 자동차를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몇 년전, 금융위기로 인하여 경기가 침체되었을 때는 정부가 세금을 깍아주면서까지 새 차를 구입하도록 국민들에게 권장(?)하였지요. 불과 1년 전까지만 하여도 새 차를 구입하면 수백 만원씩 세금을 깍아주었지요.

개인적으로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창원과 같은 중소도시에 노면전차와 같은 도시철도를 만들겠다는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정부(혹은 지방장부)가 기본적으로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와 문화를 바꾸지 않고, 승객이 없는 도시철도를 만드는 것은 세금만 낭비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통을 앞둔 부산-김해 경전철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창원 도시철도를 반대하는 이유?

대중교통 활성화는 버스 노선을 늘리고, 전용차로를 만들고, 도시철도와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승용차 이용하는 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불편하게 그냥 내버려두는 교통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승용차가 빠르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창원-마산을 연결하는 다리도 놓고, 터널을 새로 뚫으면서, 도시철도만 도입한다고해서,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해서 저절로 도시철도가 활성화되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도시철도나 시내버스보다 승용차가 더 빨리 갈 수 있는데도,  승용차를 세워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이 많아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10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녹색평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