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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아후라 마즈다는 이란민중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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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끊임없는 대결

페르시아 신화·베스타 S. 커티스 지음·임 웅 옮김·범우사 펴냄

지난 9월8일, 우리 정부는 이란 멜라트 은행 한국지점에 대해 사실상 페쇄조치를 내렸다.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이란 제재안에 미국 오바마 정부는 즉각적인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이란 제재 근거로 '유엔안보리 결의'를 들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미국 중심의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가 현정권임을 감안할 때 독자적인 이란 제재안이라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수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미국이 만들고 있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동참하려는 우리 정부의 태도에서 주권국가라는 현실이 무색해 질 뿐이다. 신의 영역마저 침범하고 있는 미국의 오만함과 그 오만함에 편승하려는 우리 정부는 이란민중의 시각에서 볼 때 악의 축(?)은 아닐런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보유한 핵무기는 세계평화를 지켜주고 이란  등 약소국들이 가진 핵무기는 평화를 파괴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는 과연 어느 신의 작품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란과 이란민중들의 삶과 정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제쳐두고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과 선입견에 너무도 쉽게 우리의 자존심을 팔고 있는 건 아닐까? 신화, 특히 페르시아 신화는 이란민중들의 세계관을 알게 해 주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그들이 창조한 신들의 행적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이란에 대한 무지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란은 아랍권 문화가 아니다

지금의 이란과 그 주변부는 고대 페르시아의 주무대였다. 1935년 이후에 지금의 이란이란 국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이란에 대한 상식 중 하나는 이란을 아랍 문화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조상은 인도 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아리아인이다. 아라비아인이 아니다.

7세기에 이슬람 문화권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언어도 파르시(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있고 다른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이 사용하는 히잡 대신 이란 여성들은 차도르를 착용한다. 조로아스터교였던 종교도 7세기 이후 다른 아랍권 국가들이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반면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몇 년전 대히트했던 영화 [300]에서는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인들이 괴물처럼 묘사돼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페르시아는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다.

아후라 마즈다 Vs 안그라 마이뉴

페르시아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를 선과 악의 끊임없는 대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의 창조 행위와 안그라 마이뉴(Angra Mainyu, 아리만 Ahriman)의 파괴 행위가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삶의 이분법적 투쟁은 이후 창조된 신과 동물들도 아후라 마즈다와 안그라 마이뉴를 중심으로 재편되게 된다. 아후라 마즈다의 창조 행위를 돕는 신으로는 아르드비 수라 아나히타(물의 여신), 베레트라그나(전사의 신), 미트라(계약의 신), 바유(바람의 신), 티시트랴(비의 신), 아타르(불의 신), 하오마(풍요의 신) 등이 있다.

안그라 마이뉴의 파괴 행위를 돕는 신으로는 디브와 나우시 등이 있다. 또 카라라는 물고기와 당나귀, 올빼미, 참루시라는 새 등이 선의 편이라면 개구리와 도마뱀, 개미, 거북, 거미 등은 악을 대표하는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지금 페르시안 고양이라고 하면 아주 고가의 애완동물로 알려졌지만 페르시아 신화에서 고양이는 혐오의 대상이었단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신화에서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먼저 신화에서 황소는 최초의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또 이 황소가 안그라 마이뉴에게 살해된 후 그 정액이 모든 식물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또 황소와 함께 가요마르탄(Gayomartan)이 있었는데 가요마르탄 또한 안그라 마이뉴에게 살해된다. 태양이 가요마르탄의 정액을 정화시켜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탄생하게 되는데 마시야(Mashya)와 마시야나그(Mashyanag)가 그들이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들은 안그라 마이뉴를 창조주로 잘못 믿음으로써 최초의 죄를 저지르게 된다.

정복자 알렉산더, 페르시아의 신화가 되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가장 특이하고 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정복자 알렉산더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알렉산더는 헬레니즘 문화의 전파에 최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페르시아의 신화가 되었을까?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의 신화에 편입된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페르시아 신화 어디에도 직접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방인 알렉산더가 이미 페르시아 신화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현실에서 그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문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와 시인 피르다우시가 1010년경에 완성한 서사시인<샤나메> 등에서 알렉산더를 페르시아 왕조의 후손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알렉산더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머리 양쪽에 달린 뿔이 알렉산더를 신의 선택을 받은 신성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고 페르시아인들도 이를 믿었을지도 모른다.

살펴본대로 이란민중들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는 페르시안 신화는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생각하고 있다. 또 이방인 알렉산더가 그들 신화의 영웅으로 등장하고 있다. 페르시아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메타포가 아닐 수 없다.

이란민중들의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은 미국이 구축하려는 선과 악의 세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끊임없는 충돌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또 이방인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신화의 영웅이 되었다는 점도 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

페르시아 신화는 7세기 아랍 문화에 편입된 이후에도 긴 생명력으로 여전히 이란민중들의 정신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노력이 없다면 이란민중들에게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위협하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르시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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