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균 (1921~1996) - 일제강점기엔 일본 군인, 해방 후엔 대한민국 포병의 아버지?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 '추적' 특별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nmb/index.aspx)

☞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이장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함께 하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7052)

일본 육사 출신이자 30년 넘게 일본 군인으로 복무한 친일파 신태영의 장남으로 1921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1940년 2월 스무살 나이에 일본 육사 53기를 졸업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가 발발하자 일본군 장교로 참전했다.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는 "신응균은 독립 중포병 제100대대 중 일부를 직접 지휘하면서 종전까지 일본군의 오키나와 방어전에 직접 참여해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응균이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해 활약했을 당시?오키나와에는 1만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끌려와 비행장 구축 등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해방 후엔 미군에 투항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육군본부 병기감, 포병연대장을 거쳤다. 한국전쟁 땐 야전포병사령관으로 활동, 대한민국 국군은 지금도 그를 ‘한국 포병의 아버지’로 부른다.

ⓒ김종훈 | 2020.03.26 09:57

댓글

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이 기자의 최신영상